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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인간이 흥미로운 사건을 만든다”

2017년 07월 06일(목) 제511호
임지영 기자 tot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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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생>의 윤태호 작가가 최근 웹툰·웹소설 플랫폼 ‘저스툰’에서 교양만화 연재를 시작했다. 제목은 <오리진>. 100권짜리 책 출판을 목표로 한 10년 단위 프로젝트다.

<시사IN>과의 마지막 인터뷰는 4년 전이었다. 모자와 티셔츠 차림, 아무렇게나 돋은 수염이 어제 만난 것처럼 그대로였다. 그사이 수식어가 필요 없게 되었다. <이끼>와 <미생>의 윤태호가 아니라 ‘윤태호 작가’라는 소개로 충분하다. 윤 작가는 1993년 <비상착륙>으로 데뷔한 뒤, 이야기 구성에 한계를 느껴 연재를 중단했다. 다시 문하생으로 들어가 시나리오 필사 등 작법에 몰입했다. 1998년,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를 소재로 한 <야후>로 강렬한 인상을 남긴 그가 대중에게 결정적으로 각인된 건 2007년 <이끼>를 통해서였다. 그로부터 10년, 일만 하고 살았다. 줄일 법도 한데 더 벌이기만 했다. 스스로 ‘산업화 시대의 아버지’ 틀을 못 버렸다는 설명이다. 다음 웹툰에서 <미생 2>를 연재 중인 그가 최근에는 웹툰·웹소설 전문 플랫폼 ‘저스툰’에서 교양만화 연재를 시작했다. 제목은 <오리진>. 미래에서 온 로봇이 21세기를 경험하며 ‘세상 모든 것의 기원’을 습득하는 내용이다. ‘만화로 팟캐스트를 하고 싶었다’는 그를 6월20일 서울 동교동 사무실에서 만났다.

ⓒ시사IN 신선영
작가 윤태호(사진)는 올해 초 한국만화가협회 회장으로 선출돼 젊은 작가들의 어려움을 해소할 방법을 모색 중이다.

요즘은 인터뷰 말고 강연을 안 하는 것 같다.


그간 강연을 150번 넘게 했다. 하다 보니 말이 정돈되면서 본의 아니게 거짓말을 하게 됐다. 같은 말을 반복하니까 윤색이 되는 거다. 디테일을 삭제하다 보면 사실에서 살짝 벗어나는데 나도 그 말을 믿게 되더라. 안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무한도전>에 출연한 뒤 인생 강연을 해달라는 요청이 많다. 내가 뭘 안다고(웃음).

인터뷰를 마다하지 않는 건 마케팅 때문인가.

그렇다. <이끼> 때 정말 감사했던 게 강우석 감독이 맡았다는 거다. 영화판에서 가장 주목받는 감독이 맡아줘서 이름도 없던 나를 뭔가로 만들어줬다. 그때 인터뷰를 정말 많이 한 건 브랜드가 되지 않으면 대체되겠구나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내 작품으로 뭔가 만들겠다는 분들이 고맙기도 하다. 시나리오를 보내주는데 그쪽 전문가가 아니니까 안 본다. 대신 열심히 홍보한다.

잠은 여전히 못 자겠다.

이틀에 2~3시간 정도 자는 것 같다. ‘바삐 사니까 잘되는 빈도가 높은 게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낚싯대가 10개 있을 때보다 100개 있을 때 낚을 확률이 더 높지 않나.

올해 초 한국만화가협회 회장으로 선출됐다. 출마의 변은 뭐였나?

전임 이충호 회장이 일을 많이 벌여놨다. 새로운 일보다 전임 회장이 벌여놓은 일을 마무리하겠다고 했는데 내가 나서서 계속 일을 벌이고 있다(웃음). 한국만화가협회 안에 한국웹툰작가협회를 만들었다. 회장이 조석 작가다. ‘자율 규제’ 이슈도 있는데 규제보다는 긍정적인 표현을 고민 중이다. 만화가 중요한 매체가 되면서 작가들이 연예인이 겪는 질환에 노출되어 있어 그와 관련해서도 노력을 기울인다.

젊은 작가들이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나.

예전엔 문하생으로 시작해 ‘어느 화실 출신이야’ 이렇게 말했다면 지금은 ‘어느 플랫폼 출신이야’ 이렇게 말한다. 과거엔 어려움이 있으면 찾아갈 사람이 있었다. 사부가 있었다. 지금 젊은 작가들에겐 연대하고 있는 대상이 또래밖에 없다. 상의할 사람이 없다. 또 웹툰 작가는 댓글을 통해 독자와 매우 밀접한 관계를 맺는 창작자다. 그런데 댓글로 작가들이 입는 내상이 상당하다. 심리적 안정을 꾀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협회 차원에서 모색 중이다.

젊은 작가들과 소통은 잘 되나.

웹툰 작가들과 협회 일 때문에 단체 채팅방을 만들었는데 내가 글을 올리면 ‘절취선’의 기능을 하는 것 같다. 내 글이 올라가면 대답이 없다. 한참 뒤에 보면 80개 넘게 글이 올라와 있는데 열심히 따라 읽다가 댓글을 하나 달면 또 절취선이다(웃음).

<오리진>이 100권짜리 책 출판을 목표로 한 10년 단위 프로젝트라고 들었다.

작품 때문에 자료 조사를 하다 보면 배우는 게 많은데 연재가 끝나면 없어졌다. 그게 아까웠다. 초등학교 때 암기법에 관한 책을 팔러 온 아저씨가 <연상기억법>이라는 책을 주었는데, 단어 사이에 서사를 집어넣으면 연속극을 기억하듯이 단어를 기억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서사가 있으면 이해하기 쉬운 건 맞는 것 같다. 또 지적 호기심 자체를 즐기는 문화가 생긴 것 같다. 막무가내식 개그보다 지적 대화에서 나오는 아이러니가 훨씬 재밌게 느껴지는 거다. 굉장히 낯선 언어를 즐겨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팟캐스트를 들어보면 누군가가 임진왜란에 대해 그동안의 시각과 다른 내용으로 교수와 이야기를 나눈다. 친구가 해주는 말 같은데 나보다는 똘똘한 것 같다. 그 사람이 하는 말은 내가 거절하거나 반대해도 괜찮다. 반박하면서 배워나가는 재미가 있다. 교수의 논지를 반박하기엔 권위에 대한 어려움이 있으니까. 옛날에는 작업할 때 YTN을 틀어놨는데 요즘은 팟캐스트를 듣는다.

즐겨 듣는 팟캐스트가 있나.

남들 듣는 거, 순위권에 있는 것들을 듣는다. 누가 하는지도 모르고 에피소드의 제목을 보고 듣는다. 음악을 들을 때도 가수가 아니라 제목이 끌리면 듣는다. (듣다 보면) 스스로 고무된다는 점에서 기분이 좋다. 우린 그 많은 공부를 하고 사회에 나와서 자기 전공이나 재능을 제대로 써먹지도 못한다. 회사에 들어가면 회사의 문법을 다시 배워야 한다. 사적인 영역에서 진짜 자기가 원하는 쪽의 정보를 팟캐스트로 듣는 것 같다. 본인들이 좀 더 나아지고 있는 느낌이랄까. 주체적이고 건강한 행위라고 생각한다. 나도 만화가로서 끼고 싶다. ‘내가 전공자니까 알려드릴게요’가 아니라 ‘엄청난 편집자들이 나를 도와줍니다. 전문적인 글을 읽기 전 단계에서 만화로 진입의 장벽을 낮춰드립니다’ 하는 거다. 내가 무식하기 때문에 나를 설득하면서 그리고 있다.

ⓒ연합뉴스
영화 <내부자들:디 오리지널>의 우민호 감독(맨 왼쪽)과 배우들이 언론시사회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윤태호 작가(맨 오른쪽)의 웹툰 <내부자들>이 원작이다.

과정은 어떤가.


각 권의 주제가 정해져 있다. 1권이 보온인데 담당 편집자가 할당받은 주제와 관련해 30~40권 정도 책을 읽고 요약본을 만든다. 우리가 원하는 글의 맥락을 만들고 글을 써줄 적절한 사람이 누굴까 찾아 섭외한다. 전문가를 모셔서 강의를 듣고 개선할 부분에 대해 내부 회의를 한다.

스스로 무지에 대한 공포가 있다고 했는데.

연재를 하다 보면 문화 소비에서 가장 멀어진다. 일반 대중은 영화도 보고 책도 많이 읽는데 내가 창작의 기술을 좀 가지고 있다고 해서 더한 통찰이 있다는 전제는 틀린 게 아닐까 생각한다. 예를 들어 <이끼>를 연재할 때 ‘본격 미스터리 스릴러’라고 출판사에서 장르를 달았다. 얼마나 어려운가. 수많은 오덕(오타쿠)들이 와서 댓글을 달았다. 앞으로 나올 내용에 대해 짐작하는 거다. 그게 너무 합리적이었다. 나는 다르게 갈 건데 그걸 지켜야 할지, 이들을 따라가야 할지 고민하게 된다. 그때 알게 된 게 댓글의 기능이다.

댓글의 기능이 뭔가.


미스터리니까 스토리를 많이 꼬아놓을 거 아닌가. 독자들이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 확인하는 게 중요한데, 댓글을 보면 알 수 있다. 또 독자들이 오해하는 경우도 있다. 100컷 정도 그리다 보면 나도 힘이 드니까 눈동자 잘못 찍을 때가 있는데 어느 컷이 의미심장하게 보일 때가 있다. 합리적인 짐작으로 댓글이 달리고 그 댓글에 또 댓글이 달리면서 소설이 써진다. 합리적인 짐작이기 때문에 무시하면 안 된다. 다음 회에서 자연스럽게 제대로 이해할 수 있도록 설득해야 한다. 그러면 ‘예상을 뛰어넘은 반전’ 이런다(웃음). 통찰력이 센 사람들이 있다. <이끼>에서 이영지가 나올 때 ‘이 여자가 키포인트다’라고 벌써 그러더라. 그때부터 그 캐릭터를 하찮게 보이게 하려고 신경 썼다. 그런 댓글의 순기능을 파악하기 전까지 댓글을 보는 게 무서웠다.

플롯보다 캐릭터에 신경을 쓰는 것 같다.


무대 위에 던져진 캐릭터가 모든 이야기의 핵심이다. 이야기의 기본은 ‘흥미로운 인간이 흥미로운 사건을 만든다’에 있다. ‘얘 성격이라면 얘는 절대 안 만날 거 같아. 기를 쓰고라도 피할 거 같아’ 싶은 두 사람이 있을 경우 가장 일상적인 공간에서 가장 피할 수 없는 상황을 만들면 그 자체로 스릴러가 된다.

에니어그램(9가지 성격으로 사람을 분류하는 성격 유형 지표)을 활용하는 걸로 알려져 있다.


문하생 때 야구를 했는데 포수였다. 투수 다음으로 공을 가장 많이 만졌다. 야구를 못하는데 억지로 끌려나온 아이들도 있고 재미있었다. 양영순 작가가 에니어그램 책을 추천했다. 알고 보니 명상 툴이더라. 남을 분석하는 게 아니라 자기 자신을 알아가는 명상 도구였다. 제대로 공부하려면 할 게 많은데 내가 산 책은 요약본이었다. 야구 인원이 9명이니까 갖다 붙이자 해서 인물마다 성격을 부여해봤다. 별자리, 사주, 에니어그램 모두 남들에겐 ‘믿거나 말거나’이지만 캐릭터 구성에 참고가 된다.

그런 다음 캐릭터별 연보를 만드는 건가.


에니어그램으로 기본 형질을 만들고 각각의 히스토리를 넣는다. 인물이 태어난 연도부터 2017년까지 우리나라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적는다. 이 사람들 각자가 박정희를 몇 살에 경험했고 야간 통행금지를 언제 겪었는지 살피는 식이다. 주인공은 두 살 때라 야간 통행금지를 책으로 배웠겠구나 하는 식이다. 만일 그걸 대사에 쓰면 누군가는 체험한 대사를 말하거나 누군가는 드라마나 책에서 타인의 경험으로 이식된 경험을 말해야 한다. 대사의 규격이 생긴다. 캐릭터를 만든다는 건 벽을 만들어주는 일이다. 경험한 것과 경험하지 않은 것에 대해 벽을 만들고 계속해서 한계치를 설정해주는 거다. 제일 재미없는 주인공이 전지전능한 인물이다. 한계치가 잘 만들어진 캐릭터가 매력 있다.

만화가로서 전환점이 된 결정적 순간이 있다면.

데뷔 실패 때다. 스토리가 안 나와서 연재를 끊었다. 스토리 공부가 지옥이었다. 만화책을 버리고 소설과 시나리오를 필사했다. 학창 시절 숙제 검사도 그림으로 받던 사람인데 원고지에 필사하면서 스스로 형벌을 주었다. 드라마 <모래시계>의 시나리오는 그림이 그려지는 지문과 정제된 대사가 좋았다.

<이끼>를 꼽을 줄 알았다.

또 하나, 1997년에 <발칙한 인생>을 연재하면서 처음으로 캐릭터에 인물을 부여했다. ‘너는 너의 고유함을 지켜야 해’라며 임무 부여를 한 거다. 개인적으로 그 작품 전후로 나뉜다. 전에는 펜촉으로 그림을 그렸는데 그때부터 메모용 중성펜으로 일러스트하듯 그렸다. 일본 여행을 갔다가 <핑퐁> 작가 마쓰모토 다이요의 그림을 봤는데 그 영향을 받았다. 그림이나 스토리 면에서나 중요한 작품이다. 웹툰으로 전환할 때도 그 시기의 쇼크만큼은 아니다. <이끼>는 대중작가로서 잊힌 이름을 찾아주었다.

만화가로서의 강점은?


스스로에게 의심이 많고 금방 싫증내는 성격이다. 진짜 빨리 싫증을 낸다. 25년 정도 만화를 해왔으면 주로 쓰는 대사와 캐릭터 종류가 있을 거다. 나도 어리지 않은데 <오리진> 하면서 팀원들에게 검토받는다. 대사를 한 번 정서해주고 왜 정서했는지 의도를 설명해주면 설득이 되고 이 과정에 너무나 쾌감이 있다.

만화가로서의 약점은?


게으르다는 점이다. 정말 파고들어야 할 때, 본질의 문 앞에서 되돌아갈 때가 있다. 내 작품에서 비판적인 의미의 ‘캐주얼함’은 거기서 발생한다.

<미생 2>를 연재 중이다. 시즌 1과 무대가 다른데.


시즌 1 때 ‘원인터내셔널’이라는 가상의 대기업은 사회적 감시도 많이 받고 그들의 내규가 어쨌거나 굉장히 공정하려고 하는 게 있었다. 그래서 회사 문화를 짬뽕으로 섞어도 일정 부분 공감하는 면이 있었는데 중소기업은 다르다. 사람의 인격체가 다른 것처럼. 특정할 수가 없었다. ‘이게 온길이라는 회사만의 사연일까. 철강 쪽을 다루는데 섬유 쪽 중소기업은 공감할까’ 하는 스트레스가 있다. 표준화하기 어렵다.

취재하는 장면을 보고 싶다.


아주 무식하게 한다. 이것까지 물으면 쪽팔린 거 아닌가 하는 것까지 묻는다. 핸드폰 녹음 기능을 켜놓고 밥 먹고 맥주 마시면서 계속 이야기한다. 질문 목록을 준비하는 게 아니라 ‘요번 에피소드에서 이러이러한 상황을 그리고 싶다’고 상의한다. 가령 <미생>의 장그래가 다른 팀에서 (개인 비리 문제로) 엎기로 한 사업을 다시 하자고 하는 장면을 넣고 싶다고 말했는데, 취재에 응하는 분이 깜짝 놀란다. ‘그럴 수 없다’는 거다. 다른 팀이 실패한 건 덮는 게 관행이라고. 너무너무 하고 싶다고 해도 이건 진짜 안 된다고 한다. 왜 하고 싶으냐고 묻기에 장그래 입장에선 모욕받은 느낌이 들 것 같다고 했다. 취재원이 ‘공채 출신이면 그런 상상을 못할 텐데, 장그래라면 그런 말을 던질 수는 있겠다’고 이해하더라. 대신 나머지 일은 오 과장과 김 대리가 다 했을 거라고 조언했다. 그렇게 취재원을 설득한다. 우린 조력자라고 부른다.

허영만 작가의 문하생이었다. 지금도 조언을 해주나.


항상 해주신다. 선생님이 보기엔 아직도 아이니까. <오리진> 한다니까 나이 먹을수록 정수에 가까워져야지 욕심내지 말라고 하셨다. 영화 <내부자들> 때 뭘 틀어도 네가 나온다며 짜증을 내기도 했다(웃음). 원고 쓰기도 바쁠 텐데 인터뷰가 많다고.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 지지 연설을 했다. 새 정부 한 달에 대한 개인 소감은?


좋다. 지금처럼 뚝심 있게 갔으면 좋겠다.

지지 연설에서 모자 벗은 모습을 처음 봤다.

많은 사람이 처음 봤을 거다. 문 후보를 지지하지 않는 사람도 방송을 볼 거라고 생각했다. 내가 책잡히는 건 문 후보가 책잡히는 거다. 여지를 없애려고 했다. 2012년에도 지지했는데 떨어졌다. ‘내 정성이 부족했구나’ 싶어서 전력을 다하자고 생각했다. 처음엔 안 하려 했다. 자주 나오는 게 도움이 될까 싶었다. 고심 끝에 수락했다.

ⓒ부천타임즈
2012년 윤태호 작가가 문재인 당시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의 부인 김정숙씨(오른쪽)에게 <미생>을 선물하고 기념 촬영을 했다.

실제로 문 대통령을 만난 적이 있나.


2012년 낙선하고 식사를 했다. 직접 뵌 건 처음이었다. 만화계 이슈를 궁금해하고 직접 본 만화도 이야기했다. 나도 처음이니까 사는 얘기를 두런두런 나누는 게 좋나 싶다가도 ‘내가 왜? 내가 뭐라고’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용건을 말하면 ‘내가 왜? 민원 해결하는 장소도 아닌데’ 싶었다. 기껏 한 말이 당시 나온 간장게장을 보고 ‘부산 출신이니 육류보다는 해산물 쪽이?’였다(웃음). 공기의 공백을 깨야 했다.

정치할 생각은 없나.

없다. 왜 하나? 잘 뽑으면 된다.

만화계에서 영향력이 커졌다. 고민의 지점이 달라질 것 같은데.

영향력 자체를 생각하지 않는다. 훨씬 더 많은 독자를 거느린 작가들이 있는데 단지 옛날부터 기자들이 좋아하는 작가이다 보니까 실체보다 더 많이 노출된 거다. 다른 작가들에 비해 발언하는 기회가 많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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