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병이 없는 사람이 있을까. 얼마 전 한 책방에서 열린 문학 행사의 진행자가 되어 작가와의 만남을 이끌었다. 토요일 오후였고 비도 내려서 참여자가 적었다. 책방 한쪽에 10명이 채 되지 않는 인원이 모여 앉아 있으니 문학 행사라기보다는 문학 모임 같은 분위기가 조성되어서 참여자들에게 자연스레 어디서 왔는지, 어떻게 오게 되었는지 물었다. 서울 응암·종암·망원, 경기도 평촌 등지에서 온 이들 중에는 사춘기 아들, 직장 동료와 함께 온 이도 있었고 정리와 수납의 달인이 되어보고자 하는 부푼 기대를 품은 이도 있었다. 그렇게 대화가 오가던 중에 한 여성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는 마음의 병 때문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생전 처음 보는 이들이고 어지간해선 다시 볼 일도 없을 이들이라 해도 마음에 병이 있다는 한 사람의 고백은 어리둥절한 것이었다. 말하는 이의 얼굴이 어두웠더라면 얘기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겠지만, 그의 표정이 약간은 싱거운 것이어서 작가가 다감하게 대꾸했다. “요즘 마음속에 병 하나쯤은 다 키우잖아요. 저도 병 있어요. 그러니까 병을 너무 병으로 여기지 않으셨으면 해요.” 나 역시 천진하게 거들고 싶었다. ‘저도 마음의 병이 깊어 몸이 아픕니다.’

ⓒ시사IN 조남진서울 용산구 ‘해방촌’에 위치한 마을서점에서 지역 주민들이 열대야를 피해 책을 읽고 있다.

최근 틀어진 골반 때문에 오른쪽 다리가 땅겨 일주일에 한두 번씩 도수 치료를 받으러 다닌다. 두 시간 동안 스트레칭과 도수 치료를 병행하는데 담당 선생님들이 때마다 “좀 어떠셨어요?”라고 물어서 때마다 우물쭈물한다. 괜찮았어요,라고 말하기엔 어딘가 괜찮지 않고 안 괜찮았어요,라고 말하기엔 뭐 그렇게 괜찮지 않은 것도 아니어서다. 몸의 질병 지수를 생각하면 마음의 질병 지수가 걸리고 마음의 질병 지수를 생각하면 몸의 질병 지수가 걸렸다. 며칠 전만 해도 그렇다. 한 살배기 아이를 둔 친구 부부와 집에서 칼국수를 끓여 먹으며 좋은 시간을 보냈으나 마침 짝꿍이 우리에게는 돈도 없고 쉼도 없고 애도 없고 보람도 없나니,라는 말을 해대는 통에 마음의 다리가 무거워졌다. 공연히 마음에 병이 있음을 말하는 사람이 보낸 일상은 어떤 장면의 연속이었을까.


마음에 병이 있다는 여성이 다시 조심스럽게 물어왔다. “작가님, 혹시 말을 잘하는 방법이 있을까요?” 그때 알았다. 저이 마음의 병은 말 때문에 생긴 거였구나. 끝에 그녀에게 책을 조금 읽어달라고 부탁했다. 또박또박 빠르게는 아니나 더듬거리면서도 한 번도 틀리지 않고 글을 읽어내는 것을 보며 그녀가 말의 기술이 부족한 사람이 아니라 꾹꾹 눌러놓는 말이 많은 사람이라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말의 항아리에 돌을 많이 쌓아둔 사람. 그녀는 누구에게 하고 싶은 말을 못하고 또 누구에게서 듣고 싶지 않은 말을 들은 걸까. 입이 가벼워서 마음이 가벼운 사람과 마음이 무거워서 입도 무거워진 사람을 그려보았다.

말은 온전한 소통의 도구일까

마음에 눌러 담아놓은 말과 마음에 눌러 담지 못하는 말 때문에 마음의 병을 얻는 경우가 많다. 그런 건 종종 화병으로 발현해 몸에도 병을 남긴다. 마음에 말이 없는 사람이 있을까. 어떤 말은 말의 기술보다는 말의 기능을 살피게 한다. 포털 검색창에 마음의 병이라고 입력해보았다. ‘직장인 10명 중 8명, 상사 때문에 마음의 병 앓고 있어’가 검색됐다. 직장 상사의 말만큼 말의 미숙을 고민하게 하는 것도 없다. 어쩌면 그녀 역시….

행사가 끝나고 서둘러 자리를 떠나던 사람과 태극기를 흔들며 우리는 반드시 다시 만날 것입니다,라고 외치던 한 무리의 사람들과 25일 만에 8만여 건의 제안이 접수되었다는 ‘광화문 1번가’를 함께 떠올려본다. 말은 과연 온전히 소통의 도구일까. 말하는 자는 있으나 듣는 자가 없는 말과 듣고자 하는 자와 말하고자 하는 자가 만나서 이루게 되는 말의 무게는 얼마나 다른 것일까.

기자명 김현 (시인)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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