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인의 연애나 결혼 기사는 높은 클릭 수를 담보하는 보증수표다. ‘사적인’ 직업인 연예인을 공인 취급하는 나라의 희극적인 면모랄까. 그러다보니 남녀를 막론하고 아이돌에게 결혼은 조심스러운 이슈가 된다. 결혼 전에는 팬덤에 경사를 ‘잘’ 알리는 문제가, 결혼 후에는 아이돌로서의 커리어보다 유부녀·유부남의 역할만 부여되는 상황을 영리하게 피해가는 일이 중요하다. 활동 기간에 정권이 세 번이나 바뀐, 아이돌 경력 19년차 신화의 리더 에릭에게도 결혼 발표는 쉽지 않았다.

열애설만 나도 난리가 나던 시절을 지나 연예인도 사랑하고 헤어지고 결혼하는 ‘보통 사람’임을 인정하기까지 팬덤의 역사도 시간과 함께 축적돼왔다. 아이돌의 결혼이 낯설었던 몇 년 전만 해도 결혼은 여러 팬덤 내에서 문제를 일으키곤 했다. 결혼으로 인해 그룹 활동이 잠정 중단되거나, 해체되거나, 애써 준비한 컴백이 무산되는 경우도 왕왕 있었다. 팬덤은 결혼 그 자체보다 결혼을 이유로 그룹을 깨고 나가는 무책임한 행동에 책임을 물었다. 하지만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긴 몇몇 아이돌의 태도는 결국 팬의 등을 돌리게 만들었다. 오랜 시간 자신을, 자신이 속한 팀을 지지해온 팬들에게 좀 더 신중할 순 없었던 걸까. 돌이켜보면 여전히 아쉬움이 남는다.

ⓒ이우일 그림

이제는 결혼하는 아이돌이 낯설지 않기에, 팬덤도 어느 정도 기준을 마련하게 됐다. 적어도 어떤 행동이 최악이라는 것쯤은 서로가 공유하게 된 것이다. 결혼 소식은 소속사나 본인 SNS 등을 통해 팬덤에게 먼저 알리기, 팬들과 함께하는 콘서트에서 프러포즈하지 않기, 비공개 결혼을 공언해놓고 협찬 사진 뿌리는 행동 하지 않기 등을 지키는 게 암묵적 룰이 됐다.


여전히 결혼 이후의 삶과 커리어를 꾸려나가는 모습에 대한 선례는 적다. 결혼한 아이돌이 방송 매체에 나와 소비되는 방식은 엇비슷하다. 이들은 먼저 신혼 생활이나 육아 계획에 대한 질문을 받는다. “아내가 밥은 잘 해줘요?” “자녀 계획은 몇이나?” 이 질문도 식상해질 무렵에는 결혼 생활의 불편에 대한 짓궂은 농담으로 유부남의 연대의식을 만든다.

“더 놀다 결혼할걸” “집에 들어가기 싫다” “(불편한 표정을 지으며) 후회하진 않지만, 오늘 회식 안 하나요?” 등. 기존의 예능 프로그램에서 관습적으로 해오던 결혼에 대한 부정적인 농담을 피해갈 수 없다. 기혼자가 된 아이돌은 결혼 생활에서 해방되고 싶다고 호소하거나 이도 아니면 끊임없이 사랑꾼의 면모를 보여야 한다.

팬들은 이들이 ‘기혼’보다 ‘아이돌’이라는 것에 방점을 찍지만 관습으로 굴러가는 방송 환경은 여전히 구시대에 머물러 있는 느낌이다. 결혼한 아이돌이 자기 가족과 결혼 생활을 공개할 수도 있겠지만, 방송에서 요구되는 역할이 ‘그것뿐이라면’ 생각해볼 만한 문제다. 아이돌이던 때를 젊은 시절의 추억으로 묻어두고 가끔 기념 앨범이나 소모하며, 아이돌로서의 다음을 그려내지 못하는 일들이 지금껏 반복돼왔다.

그들이라면 아이돌로서의 정체성을 좀 더 지킬 수 있지 않을까

결혼 후에도 ‘아이돌’로 활동할 수 있는 선례를 이제는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연예인이야말로 은퇴가 빠른 직업이라지만 누구의 남편이나 아내, 누구의 아빠와 엄마를 떠나 자신의 커리어를 이어가는 아이돌도 나올 때가 됐다. 에릭의 결혼 발표 이후 어느 때보다 다른 멤버 다섯 명의 연애와 결혼에 대한 언론의 추궁이 이어지고 있다. 신화는 20대 중반부터 10여 년간 지속돼온 결혼 질문에도 “그건 많이 말했으니 다른 걸 얘기하자”라며 자신들의 앨범 콘셉트와 작품 활동에 대해 설명해오곤 했다. 예능에 나와서도 앨범 활동 이야기에 집중하고 다른 이야기는 슬쩍 눙치며 넘어왔던 그들이라면 아이돌로서의 정체성을 좀 더 지킬 수 있지 않을까.

신화는 ‘5년이면 아이돌 수명은 끝’이라던 고정관념을 깨고 아이돌 그룹으로 가장 오래 활동해 〈기네스북〉에도 등재된 그룹이다. 내년이면 그룹 활동 20주년을 맞는 이들에게 ‘기혼 아이돌’의 새로운 모습을 기대해봄 직하다. 7월1일 에릭의 결혼을 축하하며 신화가 기혼 아이돌의 ‘미래’가 되길 감히 빌어본다.

기자명 중림로 새우젓 (팀명)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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