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관한 책을 쓸 때 그리피스는 발음만이 아니라 정보에서도 완전히 일본 놈들[Japs]의 영향을 받았음.” 1954년 11월25일 이승만 대통령은 임병직 주미 한국대사 앞으로 보낸 서한에서 윌리엄 그리피스(1843~1928년)에 대한 분노를 이렇게 터뜨렸다. 여기 보이는 ‘한국에 관한 책’이 그리피스의 〈은자의 나라 코리아〉(Corea, The Hermit Nation)다.

미국인 그리피스는 1870년부터 1874년까지 일본에 머물며 과학 교사로 일하는 한편, 통신원으로서 미국 언론에 일본과 동아시아 소식을 전하는 글을 썼다. 이 기간에 조선에도 잠깐 다녀간 듯하다. 미국에 돌아간 뒤 1876년 펴낸 〈천황의 제국〉(Mikado’s Empire), 1882년(초판)에 펴낸 〈은자의 나라 코리아〉 두 책은 제2차 대전 전까지, 미국과 유럽에서 가장 많이 팔린 동아시아 관련 단행본으로 꼽힌다.

‘은자의 나라’ 음식 문화에 대한 흥미로운 기록

1889년 출간된 〈은자의 나라 코리아〉 제3판에 실린 삽화.

그리피스에게 서구화 이전의 일본도 은자의 나라(봉건적 전통에 갇힌 나라)이고, 1882년 조미수호통상조약을 맺기 전의 조선도 당연히 은자의 나라이다. 조선의 전통 사회는 오로지 부정적으로 그려지게 마련이었다. 이승만의 분노는 이런 데를 향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은자의 나라 코리아〉는 조선의 음식 문화에 대한 흥미로운 기록으로 가득하다. 그리피스는 황해도 인삼, 충청도와 전라도의 벼농사에 이어, 일본을 압도하는 조선의 목축에 흥미를 느꼈다. 그리피스는 이렇게 설명한다. 조선 사람들이 소고기를 좋아하기 때문에 목축이 흥하고, 또 조선 소고기 맛도 좋다고. 외국인은 조선의 소와 그 고기 맛에 감탄했고 소가죽, 뼈, 뿔은 대일 수출에 중요한 품목이었다. 소시장 자체가 중국과 일본을 압도하니 조선 개항장에 갈 구미인은 조선 소시장에 주목하라고도 했다.


조선인의 밥상에는 어떤 육류든 올라갔다. 일본과는 전혀 다른 밥상이었다. 소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사슴 고기, 생선 외에 사냥해서 잡을 수 있는 날짐승의 고기가 모두 음식이 되었다. 조선인이 한 끼로 먹는 양은 일본인의 곱절이었다. 닭은 통째로 조리되었고, 날개는 물론 대가리, 닭발, 내장을 모두 먹어치웠다. 푸줏간에서는 개고기도 흔히 팔았다. 다른 식료품점은 흔치 않은데 국숫집은 푸줏간만큼 보였다. 조선의 국수사리를 그리피스는 마카로니와 버미첼리로 묘사했다. 아마 올챙이국수에서 실처럼 가늘게 뽑은 녹말 국수 또는 그만큼 가늘게 썬 칼국수를 아우르는 표현일 것이다. 그런 사리를 조선인들은 대부분 국물에 말아 먹었다. 식사를 전부 마친 사람들의 음료는? ‘밥 짓고 끓인 물(The water in which rice has been boiled)’, 곧 숭늉이었다.

동시대의 일본인 후쿠자와 유키치는 서양식 식탁 차림에서 생화 장식에 주목했다. 그런데 그리피스의 눈에는 조선 연회상의 조화가 들어왔다. 이는 의궤에 보이는 상차림용 조화인 ‘상화’ 기록과 맞아떨어진다. 그리고 연회에서도 빠지지 않는 밥은, 아름답기까지 했다. “여인들이 아름답게 익힌 밥은 김으로 뜸을 들여 밥상에 오르고 나서도 낱알의 원래 모습을 그대로 유지했다.”

1876년 개항 이후, 서울 상류층의 식생활에서 ‘퓨전’은 급속도로 진행되었다. 〈은자의 나라 코리아〉 제3판에 실린 글은 조선의 전통적인 유기, 독기, 옹기, 자개상 그리고 중국과 일본에서는 볼 수 없는 조선 특유의 숟가락질 묘사에 할애되었는데 삽화에는 일본, 중국, 서양의 식탁 문화가 뒤섞여 있다. 식생활 변화를 가늠하기 위해서라도 작정하고 깊이 읽어볼 만한 한 장면이다.

기자명 고영 (음식문헌 연구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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