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22일 독일 연방 하원이 자유민주주의의 근본 원칙을 훼손하는 정당에 대한 국고 지원을 중단하는 헌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독일에서는 헌법을 개정하려면 연방의회에서 3분의 2 이상의 찬성표를 받아야 한다. 일단 연방 하원에서 찬성 502표, 반대 57표, 기권 20표로 통과되었다. 다음 단계로 독일 16개 주의 대표들이 모인 연방 상원에서 3분의 2 이상의 찬성표를 얻으면 헌법 개정이 완료된다. 연방 상원까지 헌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극우 정당인 국가민주당(NPD)에 국고 지원을 중단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독일 헌법 제21조는 헌법재판소에서 자유민주주의 근본 원칙에 반하는 정당의 활동 금지를 결정할 수 있다고 명시해놓았다. 이번 개정안은 여기에 반헌법적 정당에 대한 재정 지원을 차단할 수 있다는 내용을 추가했다. 재정 지원 중단도 정당 해산 절차와 똑같다. 연방 하원, 연방 상원, 연방 정부가 재소하면 헌법재판소가 최종 판단한다.

이번 개정안 통과는 올해 초에 있었던 헌법재판소의 국가민주당 해산 심판 사건에 대한 보완 성격이 강하다. 지난 1월 독일 헌법재판소는 연방 상원이 2013년 말에 청원한 국가민주당의 정당 활동 금지 사건을 기각했다. 헌법재판소는 국가민주당이 추구하는 목표가 나치 이데올로기와 유사하며 반인권적·반인종주의적이라는 점을 인정했다. 하지만 국가민주당의 당세가 이미 크게 기울어 독일 정치권과 사회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기 어렵다고 보았다. 헌법재판소는 결정문에서 “국가민주당의 행위가 성공할 것이라고 판단할 만한 구체적 근거가 없다”라고 기각 사유를 밝혔다. 대신 헌법재판소는 위헌적인 정당에 재정 지원을 중단하는 방향으로 헌법을 개정하면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즉, 정당의 강제 해산보다는 ‘돈줄’을 막으면 사실상 정당 활동이 금지되는 것 아니냐는 대안을 제시한 셈이다.

ⓒEPA독일 극우 정당, 국가민주당(NPD) 지지자 뒤에 보이는 당 깃발 모습.

헌법재판소는 2003년에도 국가민주당의 정당 활동 금지를 위한 청원을 기각한 바 있다. 당시에는 극우주의자가 외국인과 유대인을 상대로 저지르는 테러가 빈번히 일어났다. 특히 작센안할트 주의 데사우에서 극우주의자들이 모잠비크인을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정당 활동 금지 청원 운동이 힘을 받았다. 하지만 당시 국내 정보 수집을 담당하던 독일 연방헌법보호청이 국가민주당 수뇌부를 비밀리에 조사한 것이 빌미가 되어 청원은 기각되었다(연방헌법보호청은 한국의 국가정보원과 유사한 정보기구이다).


“민주주의에 불길한 징표”라는 반대 의견도

국가민주당은 지난 연방의회 선거에서 득표율 1.3%를 얻는 데 그쳐 의회 진입에 실패했다. 다만 유럽의회 1석과 몇몇 지방의회 의석을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2016년에만 국고 지원으로 114만 유로(약 15억원)를 받았다. 헌법 개정에 앞서 사회민주당 소속인 하이코 마스 법무장관은 “세금으로 국가민주당을 지원하는 건 국가가 극우 선동에 직접 투자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기독민주당 원내대표인 슈테판 하바트도 “개헌안이 효력을 발휘하면 철저히 준비해 국가민주당에 대한 국고 지원을 중단시키는 청원에 들어갈 것이다”라고 말했다.

헌법 개정에 비판적인 시선도 있다. 녹색당 정치인인 레나테 퀴나스트는 이번 개헌 시도를 가리켜 “민주주의에 불길한 징표”라고 비판했다. 좌파당 연방 의원인 울라 옐프케는 “이번 개헌안은 평등한 정당 활동의 기회를 침범한 것이다”라고 비판했다. 국가민주당처럼 영향력이 없는 특정 정당을 막기 위해 국가의 근간이 되는 헌법을 수정하는 게 헌법 취지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가장 큰 우려는 국고 지원 중단이 훗날 국가민주당 이외 정당까지 적용될 수 있다는 점이다. 향후 정부가 손쉽게 특정 정당의 활동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기자명 프랑크푸르트∙김인건 통신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