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문제 오류가 아닌, 시험의 의도 자체에 대해 학생들이 교무실로 찾아가 불만을 터뜨리는 일은 흔치 않다. 하지만 학원에서는 뒷담화가 가능하다. 학교의 평가가 끝날 때마다 이런 일을 거듭 경험한다. 학생들은 학원에 와서 학교 시험문제에 대해 온갖 하소연을 한다. 최근에는 한 학교의 수행평가 채점 결과 때문에 한바탕 홍역을 치렀다.

학생들의 수행평가를 위해 교사는 ‘잘 알려지지 않은 현대시 두 편에 대해 창의적으로 해석을 해오라’는 과제를 냈다. 인터넷 검색 금지, 다른 서적 참조도 금지였다. 오로지 학생들의 자유로운 상상력을 보겠다고 교사는 강조했다. 아이들은 정말 ‘자유롭게’ 과제를 해갔다. 채점 결과는 예상과 달랐다. ‘정본 해설’과는 다른 학생들의 점수가 모조리 깎였다. 아이들은 “처음부터 시의 내용을 ‘정답대로’ 해석하라고 했어야지 왜 자유롭게 해석하라고 해요?” “저의 창의성이 틀렸다는 거죠”라며 불만을 표출했다. 출제 의도와 채점 기준이 맞지 않는다는 항의였다.

ⓒ김보경 그림

학생들의 이런 항의를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한편으로 교사의 고충도 이해된다. 교사는 교육 목표뿐 아니라 평가 기준도 충족시켜야 한다. 누구나 받아들일 수 있는 기준을 세우고 그 기준을 동일하게 적용해야 뒷말이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이 수행평가 소동을 보더라도 본질적인 문제는 따로 있다. 교사의 목표와 학생의 목표가 충돌하면 갈등이 발생한다는 점이다. 그 지점에는 늘 수능(대입)이 자리 잡고 있다.


‘수능식’ 출제 아니면 실력 의심받는 교사

중간고사가 끝난 직후였다. 한 여학생이 찾아와 “수필을 배웠는데, 제가 왜 정약용이 어디로 귀양 갔는지까지 외워야 해요? 본문 외워서 쓰라고 하면 그게 왜 국어 시험이에요?”라며 하소연했다. 문제를 출제한 교사의 의도가 따로 있었을 것이라고 아이를 달래서 보냈다. 아이의 표정은 심상치 않았다. 사달이 났다. 아이는 다음 날 시험지를 들고 교무실을 찾아갔다. 당돌하게 교사들에게 이렇게 물었다고 한다. “이런 식으로 문제를 낸 것은 저희에게 국어를 배우는 게 아니라 암기를 시키시려는 거 아닙니까. 이런 문제를 풀면 수능 문제를 잘 풀 수 있겠습니까?” 내신 점수가 대학 입시에서 중요하다 보니, 말이 날카롭게 나갔을 것이다. 감정적인 문제는 교사와 학생이 풀면 된다.

앞서 말했지만 이러한 갈등의 본질은 대입과 수능에 있다. 교사가 수업 시간에 어떤 교육 목표를 제시하든 수능과 무관하다고 생각되면 학생들은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이런 학생의 관점은 학원 강사인 내 마음도 편치 않게 한다. 오로지 수능만을 목적으로 가르쳐야만 신뢰받는 현실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고학년으로 올라갈수록 수능 외의 교육은 가치가 없는 것으로 치부된다. 학생들은 교사가 지필 평가에서 ‘수능식’ 문제를 내지 않으면 실력을 의심한다. 학교는 다양한 교육 목표를 제시하고 실천해야 한다. 하지만 그런 목표는 대입이라는 현실 앞에서 무력해진다. 이 틈새에서 입시만을 목적으로 하는 학원이 학생들에게 ‘필요하고 가치 있게’ 받아들여진다.

몇 해 전부터 나는 학교 시험이 끝날 때마다 학부모들한테 이상한 전화를 받는다. 논란의 여지가 없는 시험문제에 대해서도 “우리 아이가 학교 문제를 틀렸다고 하는데, 이 문제가 이상한 이유를 정리해서 학부모방에 올려주세요”라는 식의 요구이다. 교사의 권한을 존중하고 신뢰할 의지조차 없는 수요자들을 볼 때마다 마음이 여러 가지로 복잡해진다.

기자명 해달 (필명·대입 학원 강사)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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