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작비 115억원이 들었다. ‘한류 스타’ 김수현이 MBC 〈무한도전〉에 출연해 분위기를 띄웠다. 아이돌 가수 출신 설리가 전신 노출을 불사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메가폰을 잡은 이사랑 감독이 김수현과 가족 관계라는 사실이 알려지며 더욱 화제를 불러 모았다.

놀랍게도 6월28일 개봉한 〈리얼〉은 흥행과 작품성 두 마리 토끼를 서슴없이 방생했다. 흥행 면에서는 ‘쪽박’을 찼다. 7월6일 기준으로 관객 43만2000여 명이 들었는데 상영관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줄고 있다. 손익분기점으로 알려진 330만 관객 달성은 불가능에 가깝다. 평단의 반응도 최악이다. ‘대체 어떻기에, 하는 심정으로 봤다가… 레알(이동진)’ ‘배우의 환상이 빚은 거대한 실패(이용철)’라는 평가가 나왔다. 몇몇 영화평론가들은 〈시사IN〉의 평가 요청에 대해 “아예 관람을 하지 않았다”라고 답하기도 했다. 박평식 영화평론가는 “코멘트할 가치도 없는 영화다. 활자 낭비하지 마시길 바란다”라고 답을 보내왔다.

영화 〈리얼〉의 주인공 김수현(장태영 역)은 내내 비장하지만 우스꽝스럽다.

〈리얼〉에 대한 야유는 양상이 조금 색다르다. 단순히 만듦새가 모자란 ‘졸작’이 아니라, ‘괴작’이라는 평가다.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2002), 〈클레멘타인〉(2004), 〈7광구〉(2011)와 함께 ‘21세기 4대 괴작’이라는 이야기가 돈다. 네 작품 모두 막대한 비용을 들였지만 최악의 평가를 받았다. 관객들이 〈리얼〉을 보고 십몇 년 전 영화들까지 떠올린 까닭은 뭘까? 〈리얼(REAL)〉이 이 영화들과 공유하는 4가지 코드를 꼽아봤다.


Ridiculous (우스꽝스러운 연출)

〈리얼〉은 액션·누아르 영화를 표방한다. 영화 분위기는 내내 음울하며, 주인공 김수현(장태영 역)의 표정은 비장하기 그지없다. 그런데 본격적 액션이 시작되는 장면부터 객석에서는 헛웃음이 터져 나온다. ‘리얼’하지 않아서다. 건장한 폭력배 수십명이 김수현의 주먹 한 방에 나가떨어진다. 그가 주먹을 휘두를 때마다 영화관에는 ‘펑’ 하는 폭탄 소리가 울려 퍼진다. 압권은 영화 마지막 5분가량 이어지는 ‘일 대 다’ 격투 장면이다. 새빨간 정장을 입은 김수현이 괴한들과 싸우는데, 격투라기보다는 춤에 더 가깝다. 일명 ‘트리플악셀’이라고 불리는 이 장면에서 관객 대부분은 박장대소한다.

‘의도치 않은 우스꽝스러움’이야말로 〈리얼〉을 괴작의 반열에 올린 가장 핵심적인 요소다. 〈클레멘타인〉이 거론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클레멘타인〉의 클라이맥스 장면은 이동준(김승현 역)과 스티븐 시걸(잭 밀러 역)의 결투다. 그러나 두 사람의 결투가 너무 짧고 어설픈 데다, 딸 역을 맡은 배우가 내내 “아빠! 일어나!”를 울부짖는 바람에 몰입이 전혀 되지 않는다. 주인공과 주인공의 가족들이 눈물을 흘리는 이 장면은 황당한 연출 때문에 오랫동안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클레멘타인〉이 그랬듯 〈리얼〉도 세월이 흐르면 ‘컬트’로 기억될 여지가 있다.

Expensive (막대한 제작비)

저예산 영화 중에서는 엉성하고 황당한 작품이 꽤 있다. 〈리얼〉을 비롯한 괴작들이 비난받는 이유는 천문학적 비용에 전혀 걸맞지 않는 영화여서다. 〈리얼〉 관객 다수는 막대한 제작비가 대체 어디에 쓰였는지 의문을 제기한다.

ⓒ시사IN 이정현

제작비는 영화가 아니라 ‘김수현 영상’을 만드는 데에 쓰였다. 영화의 시나리오·세트·특수효과·음악은 모두 김수현의 매력을 과시하는 데에만 복무한다. 제작진이 자랑한 ‘네이티브 돌비 애트모스 믹싱’ 기술은 김수현의 주먹에서 나는 폭탄 소리에 쓰인다. 김수현의 춤사위를 강조하기 위해 초대형 수족관을 깨부수고, 폴란드의 유명 발레 퍼포먼스팀을 병풍으로 세웠다. 중국 시장을 겨냥한 붉은 배경과 누런 소품이 김수현 주위를 지킨다.


‘제작비 증발 현상’은 괴작들의 공통된 특징이다. 티켓 파워가 큰 배우를 데려오고 그들을 돋보이게 하는 데에만 공을 들인 나머지 작품성을 등한시한다. 영화 〈클레멘타인〉은 제작비 30억원을 들였는데, 그 가운데 12억원이 스티븐 시걸을 섭외하는 데 투입됐다.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은 무려 110억원이 들었다. TTL 광고로 인기가 최고조였던 배우 임은경을 전면에 내세웠다. 그녀가 흰 원피스를 입고 무표정하게 총기를 난사하는 장면은 김수현의 춤에 필적할 만큼 기이하다. 130억원이 든 〈7광구〉는 괴물이 주인공이다. 컴퓨터그래픽으로 만든 괴물은 그럴듯하지만 서사가 엉망이다. 하지원·안성기 등 유명 배우들은 전에 없던 ‘발연기’를 보인다.

Abrupt (갑작스러운 전개)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말은 〈리얼〉 관람평 치고 꽤 관대한 편에 속한다. 배우 김수현은 한 인터뷰에서 “영화가 미로처럼 되어버렸다”라고 자평했다. 〈리얼〉의 전개는 갑작스럽고 작위적이다. ‘인물’이 아니라 ‘배우’를 중심으로 진행되기 때문이다. ‘김수현은 멋있어야 한다’는 대명제가 극 전체를 지배한다.

군 입대를 앞둔 김수현은 갖가지 모습을 보여준다. 껌 씹는 김수현, 쌍욕하는 김수현, 사람 때리는 김수현, 벌거벗은 김수현, 춤추는 김수현, 미친 사람처럼 웃는 김수현…. 숨 가삐 김수현 쇼케이스를 전개하기 위해 서사는 엉망진창으로 굴러간다. 다른 인물의 캐릭터는 표현할 겨를이 없다.

이유는 저마다 다르지만, 갑작스러운 서사 전개 또한 괴작의 조건이다. 전직 태권도 챔피언이 편파 판정으로 패배하고, 지하 세계의 도박 격투기로 연명하다가, 강력계 형사가 되는 과정을 설명하는 데 10분도 걸리지 않는다(〈클레멘타인〉). 괴물과 한참 싸우던 주인공은 애인이 죽고 난 뒤에야, 왜 시추선에 달려 있는지 알 수 없는 자폭 버튼을 누르고 오토바이로 바다에 뛰어들며 살아난다(〈7광구〉).

Lengthy (긴 상영 시간)

길고 지루하다. 〈리얼〉을 보는 내내 가장 직관적으로 느끼는 감정이다. 상영 시간은 137분이지만 체감하기에는 그 두 배 정도 된다. 영화는 ‘탄생’ ‘대결’ ‘리얼’ 세 챕터로 나뉘는데 챕터가 바뀔 때마다 객석에서는 한숨이 나왔다.

137분이 절대적으로 긴 시간은 아니다. 국내 최초로 관객 1000만을 넘긴 〈실미도〉는 135분이며, 263분에 달하는 〈반지의 제왕:왕의 귀환〉 역시 600만명이 봤다. 괴작들이 유독 길게 느껴지는 까닭은 불필요한 장면들이 몰입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김수현이 ‘이달의 기자상’을 받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7광구〉에서는 ‘오토바이 장면’이 악명 높다. 시추선 안에서 하지원과 오지호가 오토바이 경주를 하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두 캐릭터를 드러내는 장면도 아니고 서사 전개에 도움을 주지도 못한다.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은 지나치게 많은 조연이 긴장감을 해친다. 정체를 파악하기 어려운 각종 인물이 5분마다 등장해 영화의 주제의식을 흐린다. 〈클레멘타인〉은 거의 모든 장면이 몰입을 방해하지만, 상영 시간은 100분으로 가장 짧다. ‘〈클레멘타인〉 100분’과 ‘〈리얼〉 137분’이 난형난제인 이유다.

기자명 이상원 기자 다른기사 보기 prode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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