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일곱 살. 사람이라면 한창 싱싱 발랄하게 세상을 헤치며 돌아다닐 나이. 하지만 자동차라면 쿨럭거리다 이내 잠잠해지는 엔진소리가 떠오르는, 소멸의 나이. 제목에서는 열일곱과 자동차라는 단어의 조합이 묘한 이질감을 준다. 표지에서는 벗겨지고 녹슨 몸이지만 푸른 하늘과 흰 구름을 한껏 머금은 듯한 자동차와 자동차 지붕에 올라앉아 바람을 만끽하는 사내아이 얼굴이 흐뭇한 조화를 이룬다.

이야기는 자동차의 시점으로 전개된다. 시작은 갓 태어난 자동차가 갓 태어난 아기를 데리고 집으로 온다. 폐차장 굴착기 손에 들린 채 열일곱 사내아이를 내려다보는 장면은 이야기의 끝이다. 그러니까 이건 이 자동차의 일대기이다. 스무 장면 남짓한 그림책에서 일대기라고 해봐야 뭘 얼마나 담아낼까 싶겠지만 그렇지 않다. 인간 못지않은, 아니 그보다 더한 굴곡과 희로애락의 시간이 먹먹하게 펼쳐진다.

〈열일곱 살 자동차〉 김혜형 글, 김효은 그림, 낮은산 펴냄

작고 보드라운 아기가 조심스러워 살금살금 집으로 오는 자동차. 처음 학교에 데려다준 아이를 수많은 꼬마들 속에서 뒷모습만으로도 찾아낼 정도로 눈에 담고, ‘나무 대문 앞에 붙박이처럼 앉아’ 날마다 기다릴 정도로 마음에 담는다. 차와 함께 목청껏 토실토실 아기 돼지를 부르던 아이는 ‘이어폰을 귀에 꽂고 알 수 없는 노래만 흥얼’거린다. 소음기가 고장 나 시끄러운 고물차가 되자 손가락질하는 친구들 앞에서 얼굴이 벌게져 뒷좌석에 숨듯이 구겨져 앉는다. 도시로 가는 버스 정류장에 도착하자마자 차에서 내려 고개를 반대 방향으로 휙 돌린다. 아이가 자신을 부끄러워하고 한심해한다고 자동차는 담담하게 읊조리지만 그 나직하고 쓸쓸한 어조에 마음이 싸해지지 않을 도리가 없다.


도움이 된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자동차인들 그렇게 한심해지고 싶었겠는가. 시간은 흐르고, 흙탕물이 엔진에 들어가기도 하고, 뒤차에게 받히기도 하고, 산길 커다란 돌멩이에 배가 긁히기도 하면서 고물이 되어가는 것을 어쩌겠는가. 그러나 자동차는 식구가 다치지 않은 것만도 천만다행이라 여긴다. 그들에게 ‘도움이 된다는 게 얼마나 뿌듯하고 행복한 일인지’ 모른다. 나중에 다른 차의 일부가 되거나 의자, 자전거, 호미나 꽃삽이 될 수 있으니 슬퍼할 것도 없다. 차가 떠나기 전날 아이가 가만히 들어오더니 ‘방석도 없는 썰렁한 자리’에 앉아 계기판을 한참 들여다본다. ‘함께 달린 거리, 함께 보낸 시간’을 아이도 추억하며 차를 위로하니 오히려 따뜻하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

제 자신을 온통 내어주지만 자신을 내세우는 게 아니라 함께한 사람들, 그들과의 시간들을 전 생애의 보람과 행복으로 알고 떠난 차의 일생이 뭉클하다. 제 잇속만 챙기느라 가족 간에도 전쟁을 벌이는 인간보다 낫지 싶다가 아니지, 이게 결국 인간의 시각이지, 정신을 차린다. 


굴곡진 서사를 정갈하게 이끌면서 깊은 울림을 담아내는 글, 부드러운 선과 색으로도 생생한 캐릭터와 역동적인 사건을 그려내는 그림. 두 작가가 이 자동차를 이렇게 따뜻하고 너그러운 인격으로 살려낸 것이다. 자동차 ‘숯검댕이’와 함께 작가들에게 조용한 박수를 보낸다.

기자명 김서정 (동화작가∙평론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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