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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북한 캐릭터가 밋밋한 이유

2017년 07월 17일(월) 제513호
이승한 (칼럼니스트) webmast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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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락적 기능을 강조할수록 북한을 다루는 데 진지한 고민을 지우기 쉽다. 북한을 수복해서 남한의 이익을 위해 활용해야 한다는 세계관이 강조된다.

강우석의 <실미도>(2003)와 강제규의 <태극기 휘날리며>(2004)는 거대 예산을 들여 주인공들이 처한 고난이 얼마나 참혹한지를 강조한다. 맨몸으로 눈밭을 헤치며 폭발을 피해 훈련을 하는 특수부대원들의 육체, 전쟁 중에 팔다리가 잘려 나가는 젊은 병사들의 얼굴은 자주 클로즈업 대상이 된다. 참혹함의 클로즈업이 거두는 효과는 선명하다. 한국전쟁에서 국군과 인민군으로 나뉘었던 이들 중 다수가 이념보다 어느 군대로 먼저 징집되었는가로 편이 갈렸다는 걸 강조한 <태극기 휘날리며>의 세계에서 신체 훼손은, 전쟁의 허망함을 고발한다. 북한과 대치 중이라는 상황을 빌미로 국가가 국민에게 끊임없는 희생을 강요했던 역사를 다룬 <실미도>에서 주인공들이 겪는 고난은 체제가 얼마나 폭력적이었는지 상기시킨다. 그러나 이런 참혹한 스펙터클은 영화가 관객에게 내세우는 주된 볼거리이기도 했다. “전쟁은 이와 같이 참혹한 것입니다”라고 말하는 동시에 “그런데 방금 그 장면 참 끝내주지 않습니까?”라고 물어야 하는 딜레마는, 그 이후 등장한 북한 소재 영화들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국가가 국민에게 끊임없는 희생을 강요했던 역사를 그린 <실미도>(위)와 학도병의 실화를 영화로 옮긴 <포화 속으로>.

이를테면 포항을 사수해야 했던 학도병들의 실화를 영화로 옮긴 이재한의 <포화 속으로>(2010)를 생각해보자. <포화 속으로>는 앞서 언급한 딜레마에서 후자의 질문만 과대 대표된 경우다. 영화의 홍보 과정에서 주인공 오장범(최승현)이나 구갑조(권상우), 북한군 지휘관 박무랑(차승원)만큼이나 부각된 건 국군 강석대(김승우) 대위가 웅장한 폭발을 후경으로 깔며 비장한 걸음걸이로 다리를 건너는 장면이다. 북한군의 남하를 저지하려는 국군이 다리를 건너려는 피란민들을 가로막아가며 다리를 폭파하는 대목이지만, 이 초라한 순간은 영화 속에서 비장미 넘치게 묘사된다. <포화 속으로>는 피란민들의 울부짖음과 무너져 내리는 다리 같은 광경을 오로지 명령에 따라 내키지 않는 선택을 해야 하는 ‘선한 국군’ 강석대의 고뇌를 부각하는 스펙터클로만 소비한다. 후반부 본격적인 전쟁 시퀀스가 펼쳐질 때에도, 수류탄을 들고 북한군 전차로 돌진하는 병사들의 육체는 자신들이 희생해야 하는 이유나 의미를 묻지 않는다. 찢어지고 산화하는 그들의 육체는 작품이 추구하는 비장미를 완성하기 위해 소모품처럼 취급받는다. 결국 <포화 속으로>가 전달하는 메시지는 간명하다. “이처럼 깊은 고뇌(어떤 고뇌인지는 말하지 않지만)와 처절한 희생(의 의미가 무엇인지 숙고하진 않지만)을 해서 지켜낸 나라다. 당신도 나라를 위해 충성하라.”

스펙터클한 오락적 기능이 강조될수록, 북한을 다룬 텍스트에서 진지한 고민을 지우는 것은 더 쉬워진다. 2010년 개봉한 장훈의 <의형제>는 남북한의 전직 정보요원들에게 경제적 문제 및 가족과의 생이별이라는 공통점을 부여했다. 둘 다 국가가 부여한 이념적 목표를 배반하고 서로에게 동지애를 느끼는 지점으로 끌고 와 체제 경쟁의 허망함을 이야기했다. 


‘미모의 북한 간첩’과 ‘선량한 남한 정보기관’

그러나 <의형제>에서 강동원이 구현하는 ‘미모의 북한 간첩’과 ‘북한 특수요원의 격투’라는 시각적 스펙터클만을 집중적으로 강조하면, 영화판 <은밀하게 위대하게>(2013)나 <동창생>(2013) 같은 평면적인 작품이 튀어나온다. <의형제>를 배급했던 쇼박스가 다시 배급을 맡은 이 두 작품은 실로 놀랄 만큼 흡사하다. 남파된 꽃미남 소년 간첩들이, 냉혹한 북한 간부에게 가족의 안위를 맡긴 채 등 떠밀려 의무를 수행하는 동안 남한 사람들과 친해져 감정적 교류를 나누고, 선량한 남한 정보기관 요원들은 이들을 연민하고 전향을 제안한다. 소년 간첩들은 냉혹한 북한 간부와 맞서 싸우다가 꽃처럼 스러져 죽는다. <의형제>에서 남과 북 양측 체제를 공히 비판적으로 바라보던 시선을 거세하고, 그 자리에 나쁜 북한군과 선량한 남한 정보기관이라는 이분법을 넣은 뒤, 꽃미남들이 처절하게 싸우다 죽는다는 비장미 어린 스펙터클만을 강조한
셈이다.

<의형제>(위)는 나쁜 북한군과 선량한 남한 정보기관이라는 이분법, <인천상륙작전>은 북한의 가치를 착취하는 세계관을 보여준다.

이처럼 ‘격투하는 북한 꽃미남’ 공식은 남북한의 문제를 얄팍하게 압축할 뿐 아니라, 동시에 북한을 “아직 자본주의에 물들지 않은, 원초적인 야성을 간직한 한민족의 원형”으로 상상하고 착취하는 부수적 효과를 낳는다. 북에서 내려온 특수요원들은 무장한 상대를 맨손으로 때려눕힐 수 있을 만큼 강건하고, 순박하고 따뜻한 품성을 간직하고 있다. 그 반대편엔 돈을 버는 데 몰두하느라 윤리관이 다소 흐릿해진 남한 사람들이 있다. 극중 남북한 사람들 사이의 화해가 이루어질수록 남한 사람들 또한 한층 더 윤리적이고 몸싸움도 제법 쓸 만한 존재가 되어간다. 이는 2010년대 등장한 종합편성채널의 ‘새터민 미녀’ 예능 프로그램들과 그 맥을 같이한다. “억척스럽지만 순수한 아름다움을 지닌” 젊은 새터민(탈북인) 여성과 한국의 노총각 연예인들이 가상결혼 체험을 한다는 내용의 TV조선 <애정통일 남남북녀>를 보라. 영화와 예능에서 각각 강인하고 올곧은 남성상과 생활력 강하고 순수한 여성상을 강조하는 사이, 사람들은 자연스레 북한을 “언젠가 남한 사회가 다시 획득해야 할 가치가 아직 살아 있는 공간”으로 착취하게 된다. 이는 휴전선 이북을 남한 사회에서는 더 이상 찾아보기 어려운 천연자원과 저렴한 노동력을 마음껏 활용할 수 있는 공간으로 보는, 수복을 꾀하는 ‘실용주의적’ 관점과 일치한다. 엄밀히 말하면 실용주의가 아니라 식민주의에 가깝지만 말이다.


진지한 고민은 사라지고, 스펙터클은 강조되며, 북한을 수복해 남한의 이익을 위해 활용해야 하는 공간으로 파악하는 세계관은 결국 <인천상륙작전>(2016)과 같은 얄팍한 작품으로 이어졌다. 물론 이 작품이 CJ의 제작·배급 리스트의 상단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CJ가 좌파 성향 콘텐츠를 만든다”라며 직접 압박에 나선 박근혜 당시 대통령의 의중이 크게 작용했다. 그랬다 하더라도 선행된 일련의 흐름이 없었다면 이만큼 얄팍하고 노골적인 영화가 나오는 일은 어려웠을 것이다. 결국 애써 성취한 “북한 사람들도 악마가 아니라 사람이었다”는 깨달음을 다시 뒤로 돌린 건 북한 소재를 스펙터클의 재료로만 활용한 제작자들과 그를 엔터테인먼트로만 즐기며 승인해준 대중, 그리고 이런 흐름을 통치의 수단으로 활용하는 데 주저함이 없었던 정권의 합작품이었다.

※이번 호로 ‘TV 데모크라시’ 연재를 마칩니다. 수고해주신 필자와 애독해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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