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날로그의 반격
데이비드 색스 지음, 박상현·이승연 옮김, 어크로스 펴냄

“디지털 업계는 그 누구보다 아날로그를 소중히 여긴다.”

매력적인 책이다. 수시로 바뀌는 디지털 트렌드에 지친 사람들이 아날로그에 열광하다니. 종이 매체를 만드는 처지에서 이보다 더 솔깃한 이야기가 있을까. 캐나다 출신 저널리스트 데이비드 색스는 독립 잡지, 오프라인 서점, 필름, 바이닐(LP판), 보드게임 등이 새롭게 급부상하는 모습을 포착하며, 아날로그 산업이 디지털 사회에서 어떻게 반등했는지 분석한다.
석연찮은 뒷맛도 있다. 저자가 분석 대상으로 삼은 ‘아이템’은 여전히 한국에서 ‘힙한 트렌드’의 대상이다. 힙스터를 겨냥한 비즈니스의 일반적인 ‘코드’를 끄집어낸 것에 가깝다. 자연스럽게 “사람들은 무엇에 지갑을 여는가” “어떤 비즈니스가 열리고 있나”에 함몰된다. 약간 아쉬움이 남는, 훌륭한 마케팅 서적이다.


미국의 성장은 끝났는가
로버트 J. 고든 지음, 이경남 옮김, 생각의힘 펴냄

“경제성장은 꾸준히 지속적으로 이어지는 현상이 아니다.”
 
최근 가장 뜨거운 이슈 중의 하나는 인공지능, 로봇 등으로 상징되는 제4차 산업혁명이다. 그러나 이런 ‘엄청난’ 기술혁신에도 불구하고 생산성 상승이 보잘것없다는 사실은 의외로 알려져 있지 않다. 경제학계에서도 논쟁 중이다. 이 책의 저자는 급격한 경제성장이 이뤄진 1870~1970년의 100년이 인류 역사에서 오히려 예외적인 시기였다고 주장한다. 그 100년 동안의 혁신(철도·자동차·전화·가전제품 등)으로 이뤄진 변화에 비하면 인공지능이나 로봇 등으로 기대할 수 있는 생산성 상승의 폭은 비교 불가능할 정도로 미미하다는 것이다. ‘인터넷보다 세탁기가 훨씬 혁신적’이다.
저자는 ‘생산성 지체’의 역풍을 퇴치하기 위한 정책 변화를 모색한다.


차이나 모델, 중국의 정치 지도자들은 왜 유능한가
대니얼 A. 벨 지음, 김기협 옮김, 서해문집 펴냄

“현능주의가 민주주의보다 나은 실적을 계속해서 보여준다면 이야기가 달라질 수 있다.”

민주주의란 근대 서구에서 잠깐 발흥한 아주 특수한 유행일 뿐, 민주주의보다 능력주의(메리토크라시. 이 책은 현능주의라고 번역) 모델이 더 나은 정치 지도자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도발적인 주장을 담았다.
이 주장은 정치철학의 고전적 주제인 ‘민주주의 대 철인통치 논쟁’을 떠올리게 한다. 현명하고 탁월하며 덕성 있는 지도자를 민주주의보다 더 잘 골라낼 방법이 있다면, 그 시스템이 더 나은 정치체제는 아닐까? 우리가 꼭 민주주의에 집착할 필요가 있을까? 플라톤 이후 정치철학을 지배하다시피 한 이 거대한 질문을, 저자는 21세기 중국이라는 신무기로 다시 제기한다. 당신이 민주주의자라면, 최대의 경쟁자 철인통치론을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읽을 가치가 있다.


여공 문학
루스 베러클러프 지음, 김원·노지승 옮김, 후마니타스 펴냄

“부천에서 나는 내 또래의 십대 여공들을 만났다. 그들은 언젠가는 책을 쓰고 싶어 했다.”

민주화운동의 열기가 뜨겁게 남아 있던 때였다. 1989년 여름, 오스트레일리아의 한 학생이 한 기독교단체의 초청으로 한국을 방문했다. 대학생과 농민과 젊은 노동자를 만났다. 그중에서도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자기 또래의 여공들이었다. 그들이 보여준 문학과 작가에 대한 열정은 놀라웠다. 여공들이 쓴 시와 소설 낭독회가 있던 어느 밤, 이 책이 ‘태어났다’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급속한 산업화를 이룬 사회가 공유한 한 가지 비밀이 있다면 바로 성폭력이었다. 여공의 문학적 열정에 매료된 저자는 오스트레일리아로 돌아가 식민지 시기부터 1990년대까지 이른바 ‘여공’의 수기와 일기, 자전적 소설을 촘촘히 분석한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 책은 그 논문을 발전시킨 결과물이다.


죽음은 어떻게 정치가 되는가
강정인 지음, 책세상 펴냄

“먹으로 쓴 거짓이 피로 쓴 진실을 가릴 수는 없다.”

죽음과 정치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2400년 전, 진실을 놓고 논쟁하던 소크라테스가 독배를 들고 죽음을 맞은 이후 ‘정치-죽음-진실’은 정치철학의 핵심 주제였다. 폭력적인 현대사를 경험한 한국 역시 마찬가지다. 6·25 전쟁의 기억이 여전히 한국 정치를 짓누르는 것은 당시 수백만 동포의 죽음 때문이다. 민주화운동 역시 피를 먹고 자랐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도 304명의 죽음을 부른 세월호 참사와 무관하지 않았다. 죽음의 ‘진실’을 둘러싼 각 투쟁은 곧 정치가 된다.
저자 강정인은 이 문제를 다뤘다. ‘유서 대필 사건’이 24년 만에 조작으로 판명 나고 2017년에서야 강기훈씨가 국가배상을 받는 지금, 정치와 죽음 그리고 진실과 역사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만드는 책이다.


강남 만들기, 강남 따라 하기
박배균·장진범·이영민·이향아 외 지음, 동녘 펴냄

“‘강남 살아요’라는 말은 일종의 중·상류층의 기호로서 사용된다.”

출판사는 이 책을 지리학과 사회학 두 가지로 분류했다. 실제로 제목의 ‘강남 만들기’는 두 분야를 포괄한다. 서울 강남이라는 공간이 어떤 목적으로 만들어졌는지 다루는 한편, 강남 문화는 어떻게 탄생했는지도 쓴다. 그런데 저자는 머리말 첫 문장에 “이 책은 강남에 대한 연구서가 아니다”라고 적었다. “강남이라는 표상으로 한국의 도시 전체를 관통하는 도시화 메커니즘을 이해하려는 시도”여서다. 방점은 ‘강남 따라 하기’에 찍혔다는 말로 들린다.
강남 주민들의 인터뷰가 특히 흥미롭다. ‘주민들이 공유하는 강남 문화란 없다’고 하면서 동시에 ‘강남은 심리적 고향이다’라며 애착을 보인다. ‘제2의 강남’이라는 표어 아래 형성된 신도시 개발 또한 생각해볼 구석이 많다.

기자명 시사IN 편집국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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