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월·화·목·금요일 오전 9시30분, 서울시 서초구 서울지방법원 앞 사거리에 태극기가 펄럭인다. 10명이 채 안 되는 중·노년이다. “대통령을 석방하라! 사기 재판 중단하라!” 뇌물죄 혐의 등 피고인으로 법정에 출석하는 박근혜 전 대통령 지지자들의 외침이다. 김연희·이상원 기자와 박근혜 게이트 재판 취재를 하다 보니 법정 출근길에 매번 이들을 마주친다.
재판이 끝나면 이들을 또 만난다. 법원 출구에서 박 전 대통령을 태운 서울구치소 수감차가 나올 때 이들은 “대통령님 사랑합니다!” “힘내세요!”라며 배웅한다. 여름 땡볕에도 아침부터 그곳에 계속 서 있었던 것일까. 건강이 염려될 지경이다.
비슷한 장면을 다른 장소에서 본 적이 있다. 방송국에서 녹화를 마친 아이돌의 퇴근길을 기다리던 팬들의 모습이다. 법원 앞처럼 음울한 분위기는 아니었지만, 아이돌들이 탄 차량 뒤에서 플래카드를 흔들던 애틋함이 닮았다.
혹자는 “무슨 소리냐. ‘태극기’는 다 돈 받고 나오는 사람들이다”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실제로 탄핵 반대 집회를 주도한 단체에 수상한 돈이 입금됐다는 보도가 나왔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법원 앞에서 태극기를 흔드는 그들의 ‘진정성’을 의심하기 힘들다. 정말로 박근혜 전 대통령을 응원하러 오는 사람들로 보인다. 박 전 대통령을 ‘최애 아이돌’이라고 여기는 ‘박근혜 덕후’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맹목적인 응원과 사랑. 그게 자기 삶을 풍부한 감정으로 물들여주는 문화생활이라면 장려할 만한 일이지만, 한 나라의 대통령으로서 탄핵됐고 뇌물죄 혐의를 받고 있는 이에 대한 미련이라면 그저 비극이다. ‘박근혜 덕후’들은 “탄핵 판결은 무효, 재판은 사기, 검찰은 바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정권이 바뀌었으니 나라가 망했다고 느낀다. 분통을 터뜨리며 법정 안에서나 밖에서나 언제든지 허공에 외친다.
아직도 ‘탈덕’하지 못한 박근혜 덕후들을 보면 경각심마저 든다. 이 또한 한국 정치가 오랜 시간에 걸쳐 생산해낸 현상이다. 다시 이런 현상에 휩쓸리지 않으려면 공적인 존재로서 정치인에 대한 냉정한 판단과 그에 대한 개인적인 호불호·감동·감정이입·사랑 등 사이에는 언제나 최소한의 거리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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