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의 취임사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경쟁법의 목적은 경쟁을 보호하는 것이지, 경쟁자를 보호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법언이 있다. 1970년대 이후 미국에서 주류적 흐름으로 자리 잡은 이 명제가 우리나라의 경쟁법 및 그 집행체계 전반의 근저를 이루고 있다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면서도 김 위원장은 다음과 같이 호소한다. “우리 사회가 공정위에 요구하는 바는 상당히 다르다. 경쟁자, 특히 경제사회적 약자를 보호해달라는 것이다. 하도급, 골목상권 등 ‘을의 눈물’을 닦아달라는 것이다.” 그가 주류 공정거래법 해석을 거스르는 방향으로 법을 집행할 것을 선언하는 용기를 보인 것이다. 과연 한국에서 ‘경쟁자’ 보호를 강화하는 것이 주류에 어긋나는 것일까?

공정거래법이 ‘중소기업 영업의 자유보다는 소비자 후생을 증대하는 방식으로 집행되어야 한다’는 주장은 미국 학계에서 유력한 주장이고 실제로 중요한 판례로 남기도 했다. 대법원에 올라갈 정도로 생산자 다양성과 소비자 효용이 예민하게 충돌하는 한계 상황에서 후자에 우세하게 해석한 판례들이 있을 뿐이다. 미국에서 생산자의 다양성은 한국에 비해 훨씬 두텁게 보호된다. 한국에서 쟁점 사안의 문제는 생산자 다양성과 소비자 효용 사이의 선택이 아니다. 어느 쪽으로든 법을 얼마나 강력히 집행할 것인가이다. 어차피 생산자 다양성은 장기적으로 소비자 효용에 도움이 되기에 항상 보호되어야 한다.

 

김 위원장이 독점 규제 우선적용 대상이라고 밝힌 영화계만 보더라도 그렇다. 이미 영화계에서는 CJ와 롯데가 극장산업에서의 과점(스크린 수 기준 CJ 40%, 롯데 30%)을 바탕으로 중소 투자배급사의 이윤을 위축시키고 영화의 다양성을 훼손한다는 우려가 나왔다. 이에 따라 상영·배급 겸영금지 제도 도입을 논의해왔다. 1948년 미국 파라마운트 판결로 확립된 제도다. 국내 몇몇 학자는 “파라마운트 판결은 죽었다”라고 주장한다. 1980년대 이후 이뤄진 메이저 배급사와 극장의 겸영 사례를 예로 든다. 하지만 이들이 간과하는 것이 있다. 바로 파라마운트 판결이 아직도 생생하게 살아 있기 때문에 겸영은 모두 사전 허가를 받아서 예외적으로 허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메이저에 대한 겸영 허가(워너·파라마운트)는 전체 스크린 수의 1% 이상을 차지하지 않는 경우로 한정되어 있다. 판결 이전의 메이저 배급과 메이저 상영의 겸영은 아직도 확실히 금지되고 있다. 한국은 메이저 배급-메이저 겸영 사례(CJ와 롯데가 한국 영화 투자배급 매출 40~60% 점유)이며 이는 시카고학파가 득세한 미국 공정거래법에서도 금기시되었을 상황이다. 

 

ⓒ연합뉴스18일 오전 정부세종청사 공정거래위원회에서 김상조 위원장이 가맹분야 불공정 행위 근절 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2017.7.18


완화할 규제가 없는 상태인데 망 중립성 규제를 완화한다고?

김 위원장이 또 다른 우선적용 대상으로 본 이동통신업계에서도 비슷한 담론이 있다. 최근 트럼프 행정부의 연방통신위원회(FCC) 의장이 2015년 망 중립성 명령을 폐기하겠다고 공언했다. 이를 계기로 국내에서 여러 논자가 망 중립성 규제 완화를 외친다. 이 명령을 폐기한다고 한들 대형 망 사업자의 독점 행위에 대한 규제가 없어질까? 전혀 그렇지 않다. 미국에서도 망 사업자들이 내용에 따라 전파를 차별하는 행위는 계속 규제될 것이다. 특히 ‘자사 콘텐츠 제로레이팅(Zero Rating:통신사의 특정 서비스 데이터 요금 할인 혹은 면제)’은 트럼프 행정부하에서도 여전히 금지될 가능성이 높다.

한국은 어떠한가. 망 중립성 규제를 완화한다고? 제로레이팅을 통해 SK는 11번가를, KT는 지니를 순식간에 업계 최강자 중 하나로 키워놓았다. 미국 기준으로 보면 완화할 규제 자체가 없는 상태다. 한국은 망 중립성 규제를 이제 막 세워야 할 시기이지 ‘트럼프의 FCC발 작은 복고풍’에 민감해할 처지가 아니다.

한국의 정책 담론은 주요 비교 대상국의 제도 변화를 민감하게 벤치마킹한다. 하지만 이는 학자 중심으로 이루어지면서 당대의 외국에서 표면적으로 진행되는 담론에만 천착하는 경우가 많다. 그 기저에서 묵묵하고 의연하게 굴러가는 제도 자체의 목적을 간과한다. 미국에서는 징벌적 손해배상, 검사장 직선제, 소크라테스 교육방식 따위의 제도를 비판하는 논문은 많은데 이런 제도를 지지하는 논문은 많지 않다. 이 제도들은 그 사회에서 공기처럼 이미 정착했기 때문에 굳이 변호할 이유가 없다. 물 위에 출렁이는 파도만 보지 말고 수면 아래 본체인 바다를 보아야 한다.

 

기자명 박경신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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