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 대표가 공개적으로 국민의당이 조직적인 범죄를 저지른 집단이라는 극언을 했다(김동철 국민의당 원내대표).” “승자로서 국민의당 죽이기 차원의 공작이다(박주선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

국회에 난데없는 전선이 등장했다. 7월7일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회의. 당 지도부는 더불어민주당과 추미애 대표를 향해 날선 발언을 쏟아냈다. 전날 7월6일 추 대표는 라디오 시사 프로그램에 출연해 국민의당 대선 제보 조작 사건을 두고 “(이유미씨의) 단독 범행이라고 믿는 국민은 거의 없다. 자체 진상조사로 단독 범행이라고 꼬리 자르기를 했지만 박지원 대표, 안철수 전 의원이 몰랐다는 것은 머리 자르기다”라고 말했다. 이 발언을 빌미로 국민의당은 집중포화에 나섰다. 국회 일정 전면 보이콧을 선언하고, 7월7일에는 국민의당 의원 전원이 추미애 대표의 사과와 대표직 사퇴를 촉구하는 결의문을 발표했다.

국민의당의 강경 기조는 고개를 갸웃거리게 한다. 어쨌거나 조작된 제보로 허위 공세를 유포했다는 사건의 본질은 변한 게 없는데, 사고 친 당사자가 오히려 목소리를 높였다. 여론은 싸늘하다. 국민의당 국회 보이콧을 전하는 기사에는 “피해자 코스프레” “적반하장이다” “양심 어디?” 따위의 부정적 댓글이 줄줄이 달렸다. 한국갤럽이 발표한 7월 첫째 주 여론조사에서 국민의당 지지율은 4%로, 창당 이후 최저치를 찍었던 지난주보다 1%포인트 더 떨어졌다. 국민의당의 거센 반발은 그저 수세에 몰린 한 정당의 발버둥에 불과할까.

ⓒ연합뉴스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국민의당 진상조사 결과를 ‘머리 자르기’라고 비판했다.

지난 6월26일 문준용씨 취업 특혜 제보가 조작이었다는 사실이 발표된 이후 국민의당은 이 사건을 ‘단독 범행이냐, 조직적 개입이냐’의 문제로 끌어오는 데 매달렸다. 공당이 흑색선전을 공표했다는 본질은 필사적으로 가리는 대신, 이번 사태의 본질을 ‘당원의 개인 일탈이냐, 조직적인 개입이냐’로 전선을 재구성하려고 한 것이다. 6월27일 김동철 원내대표는 “젊은 사회 초년생들이 대통령 선거 증거를 조작해 무언가를 얻어보겠다는 끔찍한 발상”이라고 말했다. 6월30일 박주선 비대위원장은 이 사건을 ‘이유미씨의 가짜 제보 조작 사건’이라고 재규정했다. 7월2일 기자간담회에서 박 비대위원장이 한 발언은 국민의당이 바라는 구도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유미씨 가짜 제보 사건에 국민도 속고 국민의당도 속았다.”


울고 싶은 국민의당 뺨 때려준 추미애

사건이 터지고 10여 일이 지났을 무렵, 국민의당의 한 보좌관은 수수께끼 같은 말을 했다. “박지원 전 대표는 일을 키우고 싶어 할 수도 있다.” 이게 무슨 말일까?

국민의당 진상조사단은 7월3일 대선 제보 조작을 ‘이유미씨 단독 범행’이라고 발표했다. 조사를 시작한 지 6일 만에 내놓은 결과다. 당 차원의 진상조사는 오히려 의혹을 부채질했다. 조사 과정에서 5월1일 이준서 전 최고위원이 박지원 의원에게 전화를 걸어 통화한 사실이 밝혀졌지만, 진상조사단은 5월5일 캠프가 문준용 취업특혜 증거를 공식 발표할 때까지 이 사건을 알지 못했다는 박 의원의 주장을 그대로 고수했다. 국민의당 진상조사 결과는 깔끔한 해명과는 거리가 있다. “단독 범행이라고 믿는 국민이 거의 없다”라는 추미애 대표의 인터뷰는 과장이 아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단독 범행이라고 믿는 국민이 거의 없는’ 이 상황 자체를 국민의당의 승부수로도 해석할 수 있다. 검찰 수사에서 윗선이나 당 차원의 조직적 개입이 드러난다면 어차피 파국은 피할 수 없다. 그렇다면 전선 자체를 ‘조직적 개입 여부’로 끌어들여서, 검찰 수사에서 이유미씨 개인의 단독 범행으로 결론 날 가능성에 당의 운명을 걸어볼 수 있다.

국민의당 인사들의 발언에는 일관되게 이런 승부수가 깔려 있다. 6월28일 박주선 비대위원장은 “만약 조직적인 조작이나, 은폐 기도가 있었다면 당 자체가 존속할 이유도,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 수사에서 그런 상황이 확인되면 제가 앞장서서라도 이 당을 해체할 생각이다”라고 말했다. 박지원 의원은 6월30일 페이스북에 “만약 제가 조작 음모에 가담했다면 추미애 대표에게 제 목을 내놓을 테니 검찰 수사를 지켜보고 제가 관련이 없다면 추미애 대표는 뭘 내놓을 겁니까?”라고 썼다. 모든 책임 소재를 ‘조직적 개입 여부’와 연동시키고 있다.

ⓒ연합뉴스7월7일 박주선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가운데) 등 당 지도부가 의원총회에 앞서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다.

동시에 의혹을 진화하지 않는다. 오히려 관심을 키운다. 여론의 뭇매를 감수하고 ‘단독 범행’이라는 자체 진상조사 결과를 발표한 이유다. 언론은 흘러나오는 의혹을 앞다투어 보도하며, 그 결과로 국민의 의심이 쌓여간다. 그런데 의혹이 부풀어 오를수록 검찰 수사 결과에 따라 반전의 공간도 생긴다. 만약 단독 범행이라는 결과가 나오면 일거에 탈출구가 생길 수도 있다.


이런 구도에서, 국민의당은 추미애 대표의 저격이 차라리 반갑다. 추 대표가 “머리 자르기”라는 표현으로 이번 제보 조작 사건을 ‘조직적 개입 사건’이라고 몰아붙이면서, 국민의당이 원하는 전선으로 들어와 주었다. 당장의 여론 질타는 감수하더라도 반전을 기대하며 검찰 수사 결과에 베팅한다. 그러려면 개인 범죄냐 조직적 개입이냐 논란이 가능한 한 시끄럽고 오래가야 한다. 국민의당이 당력을 집중해 민주당 대표를 집중 공격하며 국회 일정까지 마비시키는 이 기묘한 주객전도는, 국민의당의 생존전략으로 읽을 때 진의가 드러난다.

국민의당은 비슷한 방식으로 위기를 돌파한 경험이 있다. 2016년 총선에서 박선숙·김수민 의원이 리베이트 의혹에 연루돼 공직선거법 위반 등으로 기소됐다. 하지만 1심과 2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당시 이상돈 의원이 단장을 맡았던 진상조사단 역시 핵심 관계자에 대한 면담조사도 하지 않아 흐지부지 끝났다는 비판을 받았다. 무죄 선고 이후 국민의당 유력 정치인들은 리베이트 사건을 “정치 탄압”으로 규정하며 ‘탄압받는 피해자’로 자리 잡는 데 성공했다.

물론 대선 제보 조작 사건은 리베이트 사건과 비교하기 어려운, 허위 사실 공표 자체만으로도 심각한 사건이다. 만약 이유미씨 단독 범행이라는 수사 결과가 나오더라도 국민의당이 ‘탄압받는 피해자’라고 주장하기는 어렵다. 법적 판단에 베팅하는 이 길이 현 상황에서 ‘싸게 막는 길’은 될 수 있다. 국민의당의 한 관계자는 쏟아지는 비난에도 안철수 전 대표가 사과하지 않는 이유를 이렇게 논평했다. “지난해 리베이트 사건 때 안철수 대표와 천정배 대표가 책임을 지고 바로 사퇴했다. 안 전 대표는 그때 너무 빨리 사과했다고 생각한다.”

국민의당이 가장 회피하고 싶어 하는 전선은 이것이다. 국민의당은 과연 공당으로서 자질을 갖췄는가. 조직적 개입이 없었다는 주장을 받아들이더라도, 지난 대선에서 안철수 캠프는 당원 한 명이 동생을 동원해 조작한 허위 사실에 휘둘린 치명적 과오를 저질렀다. 국민의당 혁신위원장을 맡은 김태일 영남대 교수는 7월4일 기자간담회에서 당의 상황을 이렇게 꼬집었다. “각자가 자신의 무고함 증명에만 급급해한다. 당이라는 체계에서 보면 큰 의미가 없는 일이다. 정당은 정치기구다. 정치적 책임을 고민해야 한다.” 

기자명 김연희 기자 다른기사 보기 un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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