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13일, 국회 본관 223호 정의당 당대표·원내대표실에서 이·취임식이 열렸다. 신임 당 대표가 경선 기간 내세웠던 슬로건 ‘얼굴 있는 민주주의’ ‘집권을 꿈꾸는 유력 정당’이라는 문구가 적힌 노란색 플래카드가 벽 한 면을 꽉 채웠다. 3기 당 대표를 맡았던 심상정 의원과 4기 당 대표가 되는 이정미 의원이 포옹하자 카메라 플래시가 터졌다. 국회 본관도 아닌 의원회관에서 조촐하게 이·취임식을 열었던 2년 전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심상정 전 대표는 “저보다 좀 더 많은 것을 남기시기 바란다. 저는 당의 생존을 위해 온몸으로 이리저리 뛸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누구도 정의당의 존망을 걱정하지 않는다. 담대한 포부를 가지고 거침없는 실천을 할 때다”라고 말했다.

심 전 대표가 이정미 신임 대표에게 정의당 당기를 전달했다. 당기를 받아 든 이 대표는 잠시 휘청거렸지만 곧 깃발을 좌우로 흔들었다. 얼굴 가득 띤 미소에 긴장이 묻어났다. 이 대표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당기가 예상보다 무거웠다. 알았으면 힘을 딱 주었을 텐데(웃음). 내 책임을 무겁게 받아들이고 있다. 그래도 웃으면서 가보려 한다”라고 말했다.

ⓒ시사IN 신선영이정미 신임 정의당 대표(왼쪽)는 “실수는 할 수 있지만, 실패하지 않는 당 대표가 되겠다. 물음표를 느낌표로 바꾸겠다”라고 말했다.

지난 5월 대선에서 정의당은 득표율 6.2%로 진보 정당 사상 최고 성과를 냈다. 심상정 후보가 텔레비전 토론과 선거운동에서 강한 인상을 남기며 정의당은 전국적 인지도를 얻었다. 통합진보당 분당 사태를 거치며 진보 정치에 덧씌워진 불신도 어느 정도 씻어냈다. 당원 수는 3만6000여 명으로 늘어났다. 이정미 대표가 이끌 정의당은 여러모로 과거보다 유리한 출발선에서 시작한다.

그러나 정의당은 태생부터 함께한 오래된 의문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 당은 살아남을 수 있을까?’ ‘군소 정당에서 유력 정당으로 성장할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을 극복했다고 보기는 여전히 어렵다. 지난 대선 동안 정의당에 쏟아진 관심 뒤에 가려졌지만, 심상정 후보가 텔레비전 토론에 나가기 전까지만 해도 정의당은 지지율 정체로 고심했다. 당이 보유한 역량과 국회에서의 위치도 여전하다. 정의당은 원내 6석의 비교섭단체다.

대선에서 정의당은 새로운 지지층을 포착했다. 여성, 청년, 성 소수자, 비조직 노동자 등 기존 지지층과 결이 다른 유권자들이 심상정 후보를 주목했다. 강상구 전 정의당 교육연수원 부원장은 심상정 후보의 득표 결과를 여러 잣대로 분석한 결과를 들려줬다. “우리는 20대에서 40대까지 6~8%대 득표를 했다. 그런데 20대 여성 득표율은 16.8%였다. 전국에서 정의당 득표율이 제일 높게 나온 지역이 파주시 월롱면이다. 확인해보니 거기에 대기업 LCD 공장 기숙사가 있었다. 20대 여성 노동자가 모여 사는 곳이었다.”

전통적으로 진보 정당의 뿌리 구실을 했던 민주노총과 전국농민회는 정의당과 배타적인 지지 관계로 연결돼 있지 않다. 연대는 유지하고 있지만 과거처럼 일사불란한 지지와 지원은 없다. 정의당이 대선에서 새로 발굴한 표는 조직표가 아니라 산발적으로 흩어져 있다. 당의 눈에는 손에 잡히거나 눈으로 확인되는 표 덩어리가 아니다. 이 “얼굴 없는 유권자”들을 정당의 기반으로 다져야 한다는 공감대가 당내에 있다. 이정미 대표는 취임사에서 이 포부를 분명히 했다. “유령처럼 살아가는 노동자, 여성, 청년, 농민, 소수자 등 정치 바깥으로 밀려난 시민들이 대표되는 ‘얼굴 있는 민주주의’를 시작하겠다. 그것이 유력 정당으로 성장하는 유일한 길이다.”

그 자체로 어려운 과제다. 더욱이 이를 해낸다고 해도 문제는 남는다. 다가올 2018년 지방선거와 2020년 총선은 대통령 선거와는 성격이 다른 게임이다. 넓게 흩뿌려진 지지율이 후보 한 명에게 모이는 대선과 달리, 지방선거와 총선에서는 전국에 흩어진 표가 지역구별로 쪼개 계산된다. 현행 선거제도가 바뀌지 않으면 지역에서 1등을 배출하지 못한 표는 사실상 버려진다. 정의당의 전·현직 지도부가 일관되게 선거제도 개혁을 당의 생사가 걸린 과제로 꼽는 이유다. 정의당은 전체 득표가 거의 그대로 의석에 반영되는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당의 생존 전략으로 본다.

이정미 체제에서 이 의제는 더욱 시급한 과제다. 문재인 대통령이 내년 지방선거에서 개헌에 대한 국민투표를 약속하며 개헌 논의가 곧 분출할 조건이 갖춰졌다. 개헌 논의와 선거제도 개편 논의는 속성상 맞물려 돌아간다. 헌법상 권력구조를 개편할 경우 국회의원 선거제도가 그에 맞게 변해야 하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도 5월19일 5당 원내대표와 만난 자리에서 “정치권의 개헌 논의 과정에 국민 의견을 충실히 수렴해 반영하고 선거제도 개편도 함께 논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라고 의견을 제시했다. 정의당의 한 관계자는 “이번 적기를 놓치면 또 30년을 기다려야 한다. 선거제도를 개혁하지 않으면 정의당은 미래가 없다”라고 말했다. 이정미 대표도 취임사에서 “새로운 정당 질서는 불합리한 선거제도 개혁 없이는 펼쳐질 수 없다”라고 말했다.

의석이 6석인 정의당으로서는 선거제도 개편에서 자기 목소리를 반영하기 위해서라도 다른 정당과 긴밀히 협조할 필요가 있다.

“문재인 정부의 성공은 정의당의 책임이기도”

7월13일 취임식 이후 이정미 대표는 4당 당 대표와 정세균 국회의장, 전병헌 청와대 정무수석을 잇달아 만났다. 일련의 예방에서 이 대표는 선거제도 개혁 문제에 공을 들였다. 이 대표는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만나 “인사 문제는 인사대로, 추경은 추경대로 별도로 다루겠다”라며 협력을 다짐했다. 전병헌 청와대 정무수석을 만난 자리에서는 “문재인 정부는 새로운 대한민국의 첫 번째 정부, 촛불정부다. 그 정부를 만들어낸 주요한 역할을 정의당도 했기에 이 정부의 성공은 정의당의 책임이기도 하다”라고 말했다.

신임 이정미 대표는 진보 정당의 생존 기반을 만드는 도전 과제를 받아들었다. 동시에 이 대표 개인은 역대 당 대표들(노회찬·천호선·심상정)보다 중량감과 인지도가 떨어진다는 부담도 돌파해야 한다.

정의당 당 대표 경선 캠프의 한 참모는 이정미 리더십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민주노동당에서 시작해 진보 정당 활동을 한 지 17년이 되었다. 권영길·노회찬·심상정·천호선 등 스타들이 당을 이끌 때 최고위원과 부대표로 일했다. 이들이 당을 알리고 외연을 확장하는 동안 이정미는 당의 내실을 다졌다.” 이정미 대표는 취임사에서 “실수는 할 수 있지만, 실패하지 않는 당 대표가 되겠다. 물음표를 느낌표로 바꾸겠다”라고 말했다.

기자명 김연희 기자 다른기사 보기 un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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