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11일 감사원의 감사 결과, 2015년 면세점 사업자를 선정한 이른바 면세점 ‘1차 대전’(2015년 7월10일)과 ‘2차 대전’(2015년 11월14일)에서 부당한 특혜와 비리가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또한 ‘면세점 사업자 선정 추진실태’ 감사 결과에 따르면, 2016년에 관세청이 서울 지역 시내면세점 특허 4개를 추가 발급하기로 하면서 청와대·기획재정부(기재부)의 뜻에 따라 관련 자료를 왜곡한 것으로 밝혀졌다.

ⓒ연합뉴스7월11일 전광춘 감사원 대변인(오른쪽)이 2015년 7월10일과 11월14일 이루어진 면세점 사업자 선정 과정에 대한 감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시사IN〉이 입수한 ‘안종범 업무수첩’ 57권에는 면세점과 관련한 기록이 13차례나 등장한다. 이 업무수첩과 감사원 감사 보고서, ‘박근혜·최순실 법정’ 증언 등을 종합해 ‘면세점 게이트’를 재구성했다(당시 직책으로 표기했다).


■면세점 1차 대전 시기(2015년 1~7월)

면세점은 관세법에 따라 일정한 자격을 갖춘 개인 또는 법인이 관할 세관장의 ‘특허’를 받아야 설치·운영할 수 있는 관허(官許) 사업이다. 2015년 1월15일 관세청·기재부 등 관계 부처는 합동으로 마련한 ‘관광인프라 및 기업혁신투자 중심의 투자활성화 대책’을 발표했다. 2015년 7월에 서울 지역 시내면세점 신규 특허를 발급하고, 이후에 추가 특허 발급 여부는 외국인 관광객 수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2년마다 검토하기로 한다는 내용이었다. 2000년 제주롯데면세점 이후 15년 만에 2015년 7월10일 서울(대기업 2개, 중소·중견기업 1개)과 제주(중소·중견기업 1개)에 시내면세점 특허를 신규 발급하기로 한 것이다. 당시 면세점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에 비유되었고, 여러 대기업이 면세점 사업을 탐냈다.

2015년 2월2일 관세청이 서울 지역 시내면세점 신규 특허 신청에 관한 사항을 공고했다. 그로부터 한 달여 뒤인 3월18일 안종범 업무수첩에는 이런 메모가 적힌다. ‘3-18-15 차은택 본부장’(〈그림 1〉)이라고 상단에 적혔고, ‘면세점 신규 허가 3군데’라는 메모가 나온다. 안종범 전 수석은 수첩의 상단에 발언자나 만난 사람을 기록하는 습관이 있다. 발언자가 박근혜 대통령이면 ‘VIP’라고 기록하는 식이다. 안 수석은 면세점과 아무 상관이 없는 차 본부장과 왜 면세점 이야기를 나누었을까. 의문이 따른다. 

‘5-16-15 VIP’라고 적힌 메모에는 ‘8. 면세점 9, 규제개혁 장관회의 대책’(〈그림 2〉)이라는 대목이 나온다. 신규 면세점까지 포함해 2015년 말 현재 서울 지역의 시내면세점은 9군데였다.

2015년 6월1일, 21개 업체(대기업 7개, 중소·중견기업 14개)가 특허 신청서를 제출했다. 서울세관에서 기업이 제출한 서류가 요건에 부합한지 현장 점검을 하고 세관장 검토 의견서를 작성해 6월15일에 관세청으로 제출했다. 감사 보고서에 따르면, 이즈음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면세점 특허 심사에서 매장 면적 규모가 클수록 유리했다. 계단·에스컬레이터·화장실·사무실 등 공용 면적은 매장 면적에서 제외하도록 했다. 서울세관 담당자는 한화가 제출한 사업계획서 중 매장 면적에 공용 면적이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을 6월4일 현장 방문에서 확인했다. 하지만 그는 아예 공용 면적 칸을 삭제했다. 다른 6개 업체는 공용 면적과 매장 면적을 분리해 작성했다. 한화만 공용 면적을 매장 면적에 포함한 것이다.

이뿐만 아니다. 특허 심사에서는 중소기업 제품 매장 설치 비율을 살펴본다. 전체 매장 면적에서 중소 매장 면적이 어느 정도인지 그 비율을 본다. 그런데 롯데의 경우 중소 매장 면적이 아니라 (매장 면적에서 고객 이동에 필요한 통로구역을 제외한) 중소 영업 면적을 사용해 비율을 구했다. 경쟁자들과 다른 기준을 적용해 롯데는 특허 심사에서 손해를 보았다. ‘법규 준수도’ 항목에서도 특혜가 있었다. 이렇게 세 가지 항목에서 다른 기준이 적용되면서 한화는 정상적으로 심사했을 때를 기준으로 총점 240점을 더 얻었고, 롯데는 정상 평가보다 190점을 덜 받았다. 당시 관세청(김낙회 청장, 이돈현 차장)은 관세청 간부급 직원 전체에게 ‘금번 시내면세점 특허에 각계각층의 관심이 집중되어 있으며 사업자 선정 결과에 따라 탈락 업체의 불만 및 의혹 제기가 예상되므로 특히 심사가 공정하고 투명하게 마무리되어야 한다’는 서신을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관세청 간부 누구도 잘못된 항목 평가를 바로잡지 않았다.

결국 2015년 7월10일 서울 시내면세점 사업자로 호텔신라와 현대산업개발의 합작법인인 HDC신라면세점과 한화그룹 계열의 한화갤러리아(타임월드)가 선정되었다. 한화가 롯데보다 159점이 많아 사업자로 선정되었다. 정상적으로 심사를 했다면 롯데가 한화보다 271점이 많아 롯데가 사업자로 선정되었어야 했다.

1차 면세점 특허는 박근혜 대통령의 관심 사안이었다. 면세점 사업자가 결정된 7월10일 안종범 업무수첩에는 상단에 ‘7-10-15 VIP’(〈그림 3〉)라고, 중간에 ‘3. 면세점’이라고 적혀 있다. 면세점에 밑줄이 두 개 그어져 있었다. 7월17일자 업무수첩에도 ‘1. 면세점’(〈그림 4〉)이라고 적혀 있다.


■면세점 2차 대전 시기(2015년 7~11월)

2015년 7월10일 면세점 1차 대전이 끝났지만 면세점 2차 대전은 여전히 진행 중이었다. 2015년 12월31일에 특허가 만료되는 서울 지역 시내면세점 3곳이 있었기 때문이다. SK워커힐, 롯데면세점 소공점, 롯데면세점 월드타워점 등이다. 1차 면세점 대전에서 탈락한 롯데와, 면세점 특허 심사를 앞둔 SK 처지에서는 2차 면세점 대전에 예민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2015년 7월24일 박근혜 대통령은 김창근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과 독대했다. 안종범 업무수첩에 따르면, 이날 박근혜 대통령은 SK와 관련해 안종범 경제수석에게 ‘워커힐 100억 적자, 중국 매수 희망, 관광공사, 면세점, 고급(7-24-15 VIP-②)’(〈그림 5〉)을 언급한다. 독대 다음 날에도 ‘1. 워커힐 100억 적자 중국 매수 지양→면세점?(7-25-15 VIP)’(〈그림 6〉)라고 적혀 있다. 7월24~25일 박근혜 대통령은 대기업 회장들을 연쇄적으로 만난다. 미르·K스포츠재단 설립과 관련해 이야기를 나눴다.

감사 보고서에 따르면, 2015년 8월께 김낙회 관세청장은 ‘면세점 독과점 대기업에 대해 단기간 규제할 수 있는 방안 강구’ 등 면세점에 대한 박근혜 대통령의 우려를 전달받고 검토 문서를 작성했다. 또 2015년 9월3일부터 기재부·관세청·공정위 등 관련 부처 실무자들이 참여하는 ‘면세점 제도 TF’가 운영되었다. 4차례 회의를 가졌다. 2015년 10월7일에는 공정위가 2차 면세점 특허 심사와 관련해 ‘시내면세점 시장의 경우 독과점 구조가 심화되고 있으므로 실질적인 경쟁이 일어날 수 있도록 신규 특허사업자 선정 시 고려해달라’는 공문을 관세청에 보냈다. 서울 지역 시내면세점 업체별 매출액을 기준으로 롯데의 시장점유율은 60.5%였다. ‘면세점 독과점’에 대한 대통령의 우려와 관세청에 전달된 공정위 공문은 롯데에게 불리한 환경을 만든 셈이었다.

ⓒ연합뉴스우리 정부가 요청한 사드(THAAD) 보복 조치 철회 요구를 중국 측이 사실상 거부하면서 관광 규제가 계속되고 있다. 사진은 서울 중구 롯데면세점의 한산한 모습.

2015년 11월14일 특허 만료되는 3곳 면세점 후속 사업자가 결정되었다. 롯데면세점 소공점은 호텔롯데가 유지하게 되었지만, 롯데면세점 월드타워점은 문을 닫고 사업권이 두산으로 넘어갔다. SK워커힐 면세점도 사업권을 잃고 신규 사업자로 신세계DF가 선정되었다.


여기서도 롯데는 불이익을 당했다. 관세청은 영업이익 대비 기부금 비율, 매장 규모 등 기준을 달리 적용했다. 가령 특허 신청 전 5년간의 기부 실적을 적용해야 하는데 2년간 실적을 적용했다. 기준 변경으로 롯데에 불이익이 갔다. 또 2개 이상 면세점 특허 공고가 나고 중복해 신청한 업체가 있을 경우에 이 업체가 앞선 공고에서 선정되면 뒤의 심사에서는 배제해야 했다. 신세계DF가 앞선 공고에서 선정되었기 때문에 뒤의 심사에서는 신세계DF를 제외하고 평가했어야 했다. 하지만 신세계DF를 평가 대상에 또 넣었다. 상대평가였고, 신세계DF를 넣으면서 평가 결과가 달라졌다. SK는 8점, 롯데는 6점, 두산은 4점이 적게 부여되었다.

심사장에서 특이한 일도 벌어졌다. 2차 면세점 특허 심사위원장으로 참석한 이돈현 관세청 차장이 김낙회 관세청장의 지시에 따라 앞서 말했던 공정위 공문을 심사위원들 앞에서 낭독한 것이다. 사실상 롯데의 면세점 시장 참여를 제한하자는 취지의 공문이었다. 심사위원 사이에 롯데에 불리한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심사 자리에서 ‘롯데에 교훈을 주어야 한다’는 말이 나왔다.

이런 심사 과정을 통해 롯데는 애초 받았어야 할 점수보다 총점 191점을 적게, 두산은 총점 48점을 적게 받았다. 심사를 제대로 했다면 롯데가 38.5점 차이로 사업권을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도 이상한 평가로 순위가 바뀌었고, 두산이 면세점 사업권을 획득했다. 롯데보다 104.5점이 많았다.

■갑자기 늘어난 면세점 특허 4개
(2015년 12월~2016년 12월)

감사원 보고서에 따르면 2015년 12월 말께 박근혜 대통령은 경제수석실에 서울 지역 시내면세점 특허를 2015년에 이어 2016년에도 발급하고, 면세점 제도 개선을 위한 관련 법령 개정을 19대 국회 임기(2016년 5월29일) 안에 처리하라고 지시했다. 1월3일에 적힌 안종범 업무수첩(1-3-16 VIP-1)에는 ‘면세점→정부 주도→입법예○’(〈그림 7〉)라고 적혀 있다(읽기 어려운 글자는 ○로 처리했다-편집자 주).


경제수석실은 ‘추가 발급’을 기재부에 지시했고, 1월6일 기재부는 특허 신청 공고 요건에 부합하는지를 검토하지 않은 채 추가 발급하는 것으로 경제수석실에 보고했다. 1월31일 최상목 기재부 1차관은 2016년에 서울시내에 면세점 5~6개를 추가한다는 내용의 ‘면세점 제도 개선 추진’ 문서를 경제수석실에 보고했다. 그리고 기재부는 ‘대통령이 특허를 가급적 많이 발급하기 원한다’는 사유로 관세청에 특허 4개를 발급하도록 사후 통보했다.

관세청은 1차 면세점 신규 특허 발급 이후에 추가 발급을 검토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기재부의 통보를 받고서 2016년 2월18일 김낙회 관세청장은 안종범 경제수석에게 연초 업무보고에서 ‘용역 결과 서울에 3개 특허 추가 발급을 할 수 있다’고 보고했다. 안종범 경제수석은 특허 수 결정과 산정 방식을 기재부와 협의하도록 김낙회 관세청장에게 지시했다.

이후 4월까지 안종범 업무수첩에는 면세점 관련 내용이 다섯 차례 등장한다. ‘1-30 -16 VIP’ 메모에는 ‘9. 면세점 3월까지’(〈그림 8〉)라고 적혀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2월15~17일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최태원 SK 회장, 김승연 한화 회장을 독대했다. 또 3월14일에는 신동빈 롯데 회장을 독대했다. 그 직후 안종범 업무수첩에는 ‘1. 면세점(3-16-16 VIP)’(〈그림 9〉)이라는 메모가 나왔다. 밑줄이 그어져 있었다. 4월에는 ‘2. 20대 국회 ○○○○ -면세점, 구조조정, 원격의료(4-14-16 VIP)’(〈그림 10〉), ‘5. 면세점-탈락 업체(4-20-16 VIP-①)’(〈그림 11〉), ‘5. 면세점. -일자리 창출 효과 홍보 -허용 요건 관광객(밑줄이 그어짐-편집자 주) 통계 정확성 -관광공사 ○○ -지자체 -리베이트(4-26-16 VIP-③)’(〈그림 12〉)라는 메모가 잇달아 보인다.


대통령이 여러 차례 면세점을 주목했다는 점이 특이하다. 그중에서도 ‘허용 요건 관광객’이라는 대목이 눈에 띈다. 이 문구를 이번 감사원 보고서와 연관해보자. 면세점 고시 제7조 제1항에 따르면, 관세청장은 전년도 전체 시내면세점 이용자 수 및 매출액 중 외국인이 차지하는 비율이 각각 50% 이상이고, 해당 광역지자체의 외국인 관광객 방문자 수가 전년 대비 30만명 이상 증가하는 경우에 한해 신규 면세점 추가 설치를 할 수 있다. 그런데 2015년은 중동호흡기증후군(MERS) 사태로 인해 관광객이 급감했다. 관세청은 메르스 때문에 서울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 수가 감소해 신규 특허 신청 요건에 부합하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었다. 하지만 2016년 3월께 기재부가 관세청에 ‘추가 특허 4개’를 검토하도록 요청했고, 관세청은 추가 특허 4개를 도출하기 위해 새로운 산식을 만들어냈다. 이 과정에서 매장당 적정 외국인 구매 고객 수를 축소하는 등 수치를 왜곡했다.

2016년 4월29일 관세청은 2015년 1월15일의 발표와 달리 2015년 신규 특허 발급 이후 9개월여 만에 서울 시내면세점 특허 4개를 추가 발급하기로 발표했다. 전년도 외국인 관광객 통계(2016년 8월 발표 예정)를 발표하기 전인 2016년 4월29일에 ‘신규 특허 발급’ 발표를 한 것이다. 이때 관세청은 기재부가 특허 수 산정에 개입했다는 내용을 삭제했다. 또한 관세청은 2016년 신규 특허 발급 여부를 검토하는 과정에서 관광 통계 보고서가 나오기 전에 신규 특허 신청 공고를 할 수 없다는 점을 검토했지만 이를 관련 보고서에서 삭제하기도 했다. 김낙회 관세청장이 삭제를 지시했다.

2016년 5월8일 안종범 업무수첩에는 ‘15. 관세청장-천홍욱 전 관세청 차장(5-8-16 VIP①)’(〈그림 13〉)이라는 메모가 등장한다. 천홍욱 관세청장은 2016년 5월25일 부임했다. 관세청을 떠나 있다가 청장으로 복귀했다. 그는 취임한 다음 날에 최순실씨를 만나 식사 접대를 하며 ‘실망시키지 않겠다’고 말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천홍욱 관세청장은 이번에 감사원으로부터 고발당했다(공공기록물법 위반 혐의). 천 관세청장은 2016년 국정감사에서 면세점 특허 관련 서류 제출을 요구받았다. 하지만 2016년 10월께 천 관세청장은 국회에 서류를 제출하지 않기 위해 선정 업체 서류를 업체에 반납하고, 탈락 업체의 서류를 모두 파기하도록 했다.

서울 지역 면세점 4개 추가는 계획대로 진행되었다. 2016년 12월13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는 ‘면세점 관련 기업이 제3자 뇌물공여 혐의를 받고 있고 미르·K스포츠재단에 출연금을 기부한 점 등이 탄핵소추안(12월9일 국회 탄핵안 가결)에 포함되었다는 이유를 들어 추가 사업자 선정을 중단해야 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하지만 2016년 12월17일 관세청은 ‘시장의 불확실성을 제거해야 한다’는 이유로 신규 사업자 4곳을 선정했다. 대기업 면세점은 신세계·현대백화점·롯데가 선정되었다. 면세점 특허에 다시 도전했던 SK는 탈락했다.

감사원은 항목을 다르게 기재하거나 평가점수를 잘못 산정한 관련자 4명에 대해 검찰에 수사를 요청했고 사업 계획서를 파기한 천홍욱 관세청장을 검찰에 고발했다. 감사원은 “미르·K스포츠재단에 기부금을 출연한 기업이 출연의 대가로 시내면세점 특허를 발급받은 것인지는 증거와 관련자 진술로는 확인할 수 없었다”라고 밝혔다. 감사원의 수사 의뢰·고발 사건을 배당받은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이원석 부장검사)는 수사에 착수했다. 박근혜·최순실과 관세청, 대기업으로 연결되는 ‘면세점 게이트’로 나아갈지 주목된다. 그 사이에 안종범 업무수첩이 놓여 있다.

기자명 차형석 기자 다른기사 보기 ch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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