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과 육지 사이에 다리가 놓였다. 연륙교다. 손에 잡힐 듯 가깝지만 차를 멈추고 승선권을 끊고 갑판으로 올라야 비로소 닿을 수 있었던 섬이 다리로 속속 연결되고 있다. 선착장에 울리던 뱃고동 소리도 갈매기에게 과자를 던져주던 풍경도 사라졌다. 섬은 이제 육지가 되어가고 있다.

석모도는 강화도 서쪽 편에 있는 섬이다. 그 전에는 강화도 외포리 연안여객터미널에서 뱃삯 2000원을 내고 10분 남짓 배를 타고 가야 했다. 갈매기에게 과자를 던져주는 풍습이 이 석모도 배편에서 생겨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사랑받는 섬 여행지였다. 그러나 지난 6월28일 1540m 길이 석모대교가 개통되면서 옛일이 되었다. 다리가 놓인 지 이틀 만인 6월30일 외포리-석모도 간 배편은 역사 속으로 자취를 감췄다.

ⓒ시사IN 이명익6월28일 강화도와 석모도를 잇는 길이 1540m·폭 12m의 석모대교가 개통되었다.

7월11일 강화도 외포리를 찾았다. 여름이면 늘 여행자로 북적이던 외포리는 한산했다. 연안여객터미널 주차장은 폐쇄됐고, 대합실은 아예 문을 걸어 잠갔다. 다리가 이어지면서 배를 타는 선착장은 인적이 끊겼다. 당연한 풍경인데, 몹시 낯설었다. 

석모도 배편을 운행했던 해운사는 삼보해운이다. 1987년부터 석모도 배편을 운영해왔다. 연간 승선객이 80만명에 이를 정도로 짭짤한 노선이었다. 한때 50여 명이 해운사에서 일했지만 지금은 30명이 안 된다. 여객터미널에서 만난 삼보해운 측 관계자는 “석모대교가 개통되면서 나이 많은 직원 10여 명이 일자리를 잃었다”라고 말했다. 삼보해운 측은 7월12일부터 외포리에서 취항하는 ‘외포리-볼음도-주문도’ 노선이 활성화되기를 바라고 있지만, 석모도의 영광을 되찾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볼음도와 주문도는 석모도 넓이의 3분의 1에 불과한 작은 섬이다. 배편으로도 1시간 넘게 걸린다.

석모대교는 외포리 선착장에서 2.5㎞ 떨어진 곳에 있다. 평일임에도 다리를 오가는 차량이 꽤 보였다. 강화군은 다리가 개통된 후 하루 평균 1만 대의 차량이 석모도를 찾았다고 밝혔다. 주말이면 다리를 건너는 데에만 1시간이 넘게 걸린단다. 편도 1차선이라 차가 밀리면 도리가 없다.

진짜 ‘교통 문제’는 석모도에 진입하면서 시작된다. 다리만 놓였을 뿐, 섬 안은 그대로였다. 구불구불한 1차선 길이 계속 이어졌다. 과거 배편으로 하루에 많아야 몇백 대씩 드나들 때는 별 문제가 없는 길이었다.

그러나 하루 1만 대씩 몰리는 차량을 감당할 수 있는 길이 아니었다. 7월 첫 주말 석모도를 반 바퀴 도는 데에만 2시간30분 넘게 걸렸다는 이야기도 들렸다.

석모도에서 가장 유명한 관광지인 보문사에는 관광버스가 빽빽했다. 이곳에서 뜻밖의 풍경을 보았다. ‘국보급 분양 속보-온천을 내 집안에’라는 팸플릿을 나눠주며 분양 홍보전을 펼치고 있었다. 집집마다 온천 배관을 연결한 고급 빌라를 분양한다는 것이었다. 건설 현장은 보문사에서 5㎞ 떨어진 곳에 있었다. 규모가 어마어마했다. 분양되는 빌라만 537채. 주변 땅 52만㎡(약 16만 평)를 매입해 대규모 워터파크 등과 함께 건설한다는 계획이었다. 시행사는 신생 기업이었다. 시행사 관계자는 이미 분양 물량의 70%가 나갔다며 계약을 권했다. 향후 영종도에서 강화도까지 다리가 놓이면 서울에서 석모도까지 1시간에 올 수 있다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지자체에 확인한 결과 영종도-강화도 연륙교 건설은 아직 논의 중이었다.

문제는 이 건설 현장 인근에 민머루 해변이 있다는 점이다. 민머루 해변은 석모도에서 유일한 해수욕장으로 개펄이 잘 보존된 곳으로 꼽힌다. 한국관광공사에서 생태관광지로 지정하기도 했다. 몇몇 숙박시설과 식당 말고는 시설이랄 것이 없던 한적한 해변이었다. 이런 민머루 해변이 변화에 직면했다. 대규모 빌라 단지만이 아니다. 대기업 소유 콘도가 들어설 예정이고, 18홀 규모 골프장은 이미 터 다지기에 들어갔다. 몇 년 뒤면 민머루 개펄 주위는 완전히 새로운 풍경으로 바뀔 것이다.

석모도 땅값은 이미 들썩거리다 못해 천장을 뚫었다. 몇몇 부동산에 확인한 결과 온천지대의 경우 3.3㎡(1평)당 350만원까지 치솟았다. 강화도 농지에 비해 10배 이상 비싼 금액이다. 땅값이 오른 건 이미 오래 전부터다. 2008년 연륙교 건설 추진이 확정되면서 이미 외지의 ‘큰손’들이 석모도 땅을 사들이기 시작했다. 2013년에는 CJ그룹이 민머루 해변 주위에 땅을 매입해 차명으로 관리해왔다는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되기도 했다.

연륙교 이후 쓰레기와 좀도둑 문제로 골치

석모도처럼 ‘육지가 된 섬’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대개 지역 이해관계자와 언론 등에서는 장밋빛 청사진을 제시한다. 교통이 편리해지고 관광 개발이 활성화되면서 지역 주민의 삶이 한층 나아지리라는 전망이다. 절반은 맞는 이야기다.

ⓒ시사IN 최진렬 교육생석모대교 개통과 함께 대규모 고급 빌라 단지가 조성되면서 분양 홍보도 활발하다.

연륙교를 통해 육지로 나가기 쉬워지면서 병원 등 생활 편의시설에 목말랐던 이들은 환영한다. 대형마트로 쇼핑을 가기도 쉬워졌다. 관광객 역시 폭증한다. 석모도 매음리에서 만난 한 주민은 “배를 타고 갈 때는 강화읍까지 1시간30분은 걸렸는데 이제 1시간이면 충분하다”라며 반겼다. 이제 막 다리가 개통된 석모도 주민 대다수는 환영 일색이었다.


연륙교가 들어선 지 오래된 곳의 상황은 좀 다르다. 연륙교 개통 후 10년 이상 된 전남 지역 섬들에서 이미 아우성이 터져 나오고 있다. 우선 연륙교가 무용지물인 주민이 적지 않다. 섬 지역 노인층의 경우 차량 운전이 어려운 이들이 대다수다. 육지로 나가기 위해서는 버스 등을 이용해야 하지만 다리만 놓였을 뿐 대중교통 환경은 그대로인 곳이 상당수다.

쓰레기와 좀도둑 문제도 골칫거리다. 늘어난 관광객은 육지에서 가져온 쓰레기를 섬에 놔두고 돌아간다. 본디 섬사람들은 보안 개념이 없었다. 한정된 공간에서 늘 보던 사람들과 마주치는 만큼 대문 따위는 없어도 사는 데 별 지장이 없었다. 하지만 다리가 놓이면서 좀도둑이 기승을 부리기 시작했다. 집 앞에 아무렇게나 부리던 농수산물을 집 안으로 들여놓고 대문을 새로 달아야 했다. ‘남’을 경계하며 사는 삶이 시작된 셈이다.

2010년 섬과 섬을 잇는 연도교로 육지화한 전남 신안군 증도는 관광객이 늘면서 홍역을 치렀다. 원래 증도는 2007년 아시아 최초로 ‘슬로시티’로 선정될 만큼 느림의 미학을 간직한 곳이었다. 그러나 다리가 놓이면서 섬은 걷잡을 수 없이 오염되기 시작했다. 주말이면 차량 수천 대가 몰리면서 주민의 경운기조차 빠져나가지 못하는 곳이 되고 말았다. 슬로시티가 아니라 자동차가 판치는 ‘퀵시티’라는 비아냥이 나왔다. 급기야 2013년부터 신안군은 자전거 이용을 활성화하는 등 증도를 ‘자동차 없는 섬’으로 만들기 위한 다양한 시도를 벌이고 있다. 물론 다리 개통 이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다리가 생긴 섬들은 한때 폭증하는 관광객으로 쾌재를 부른 적도 있었지만 잠깐이었다. 다리를 통해 섬으로 들어온 여행자는 당일치기로 잠깐 머물다 다시 섬을 빠져나갔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남은 것은 매연과 쓰레기, 그리고 부쩍 오른 땅값뿐이었다. 주민들이 도시의 마트로 장을 보러 다니기 시작하면서 섬 내 작은 가게들은 문을 닫기도 했다.

고군산군도에 속한 무녀도와 선유도는 원래 군산항에서 배로 1시간30분 정도 걸리는 섬이었다. 특히 ‘신선이 노니는 섬’ 선유도는 풍광이 빼어나기로 이름났다. 그런데 다리가 놓이면서 이곳도 많이 바뀌었다. 정확히 말하면 새만금 건설 이후 신시도-무녀도-선유도-장자도 구간이 다리로 연결되는 과정에서 생긴 일이다. 지난해 7월 신시도에서 무녀도를 잇는 고군산대교가 개통하면서 첫 관문이 뚫렸다. 현재 무녀도에서 선유도를 잇는 도로가 내년 초 완공을 목표로 공사 중이다.

관광객 유치하려 섬 주민끼리 몸싸움도

7월1일 고군산대교를 건너 도착한 무녀도에서는 기이한 풍경이 펼쳐졌다. 무녀도 입구에서 모든 외지 차량은 ‘공사 중 도로 끝’이라는 표지판에 막혀 되돌아가거나 임시 주차장에 차를 세워야 했다. 선유도로 가려면 도보로 1시간 정도를 걷거나 1시간에 2만원짜리 오토바이를 빌려 타야 했다. 그런데 도로 끝 표지판 너머로 많은 차량이 아직 공사 중인 도로를 쌩쌩 달리고 있었다. 무녀도와 선유도 섬 주민 차량도 있었지만, 상당수는 선유도 식당 차량이었다. 이들 차량이 무녀도 입구에서 손님을 실어 선유도로 나르고 있었다. ‘무료’라는 말에 혹해서 탔다가 식당 음식을 먹지 않으면 5000원, 6000원씩 바가지요금을 걷었다. 이처럼 선유도 차량이 손님을 싹쓸이해가자 무녀도 상인들은 분개했다. 일부 무녀도 상인이 선유도 셔틀 차량을 몸으로 막는 일까지 벌어졌다.

섬 주민들 사이에 갈등이 커지자 행정 당국이 최근 공청회를 열었지만 주민들 간 욕설로 끝나고 말았다. 선유도 셔틀버스를 운영하고 있는 한 주민은 “다리가 생기기 전에는 여행자가 섬을 선택하면 그만이었지만, 지금은 전쟁터다. 다른 섬은 물론 같은 섬 주민 사이에도 갈등이 생기고 있다. 다리가 완전 개통한 뒤에도 이런 갈등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 같다”라고 말했다.

국토교통부 통계누리와 각 광역단체를 통해 확인한 결과 2017년 현재 전국에 있는 연륙교는 모두 57개다. 올해 석모대교가 개통됐고, 2018년에 경남 하동군과 남해군을 잇는 제2남해대교, 2019년에 전남 여수와 조발도를 잇는 화양대교가 건설될 예정이다. 섬과 섬을 잇는 연도교도 39개나 되고, 건설 예정인 곳도 10여 곳에 이른다. 나라 전체가 섬으로 이루어진 일본 전체 연륙교가 80여 개인 것과 비교해도 적지 않은 숫자다.

맨 처음 생긴 연륙교는 부산 영도교다. 일제강점기인 1934년에 다리가 놓였다. 이후 1969년 강화교, 1970년 안면연륙교 등 꾸준히 숫자를 늘려가던 연륙교는 2000년대 들어 급증했다. 전체 연륙교 57개 가운데 36개가 2000년 이후 건설됐다. 2010년 이후 연륙교 사업비만 따져봤더니 무려 2조4318억원에 달했다. 다리 길이가 점점 길어지면서 사업비도 크게 느는 추세다.

일각에서는 여객선 공영제를 강화하고 섬 주민에게 대중교통 할인쿠폰 등을 발행하는 것이 연륙교 개통보다 낫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여수 금오도처럼 연륙교 건설을 무산시키고 섬의 정체성을 간직하겠다고 나선 곳도 생겨났다. 일부 단체와 전문가들이 움직이고는 있지만, 국가 차원의 논의는 전무한 실정이다. 이제, 질문을 던져야 할 때가 왔다. 이대로 계속 섬을 육지로 만들 것인가?

취재 도움:최진렬 〈시사IN〉 교육생





연륙교로 잃는 것은?


연륙교가 놓이면 섬은 변화하기 시작한다. 우선 법적으로 그렇다. 연륙교가 들어선 지 10년이 지나면 더 이상 섬으로 분류하지 않는다. 도서개발촉진법에 의해 방파제나 교량 등으로 육지와 연결된 지 10년이 지난 섬은 도서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섬 아닌 섬이 되는 셈이다.

ⓒ연합뉴스충남 지역 섬 주민들의 건강 파수꾼 역할을 하는 충남병원선 501호(160t).

연륙교가 생기더라도 보건 분야 지원은 대체로 유지된다. 다리가 놓여도 대다수 섬 지역의 환경이 빠르게 개선되지 않기 때문이다. 예컨대 전국에서 총 5척이 운행 중인 병원선(섬 주민에게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선박)은 그대로 다닌다. 섬 주민 중에서 고령자가 많아 치료를 위해 육지로 나가기보다 찾아오는 병원선을 선호하기도 한다.


대신 중앙정부의 지원은 줄어든다. 연륙교 개통 이후 10년이 지나면 도서개발종합계획 대상에서 제외되기 때문이다. 정부는 도서 지역의 어업·재해 예방·식수 공급 등 기반 시설을 지원하고 마을공동체 운영을 보조하는 데 국고보조금을 지급해왔다. 4차 도서개발종합계획이 시행되는 2018년부터 2027년까지 도서 지역은 총 1조3000억원의 예산을 지원받을 예정이지만, 경남 미륵도와 전남 지죽도 등 전국 45개 섬은 제외됐다. 다리가 연결된 지 10년이 지났기 때문이다. 교육청에서 교부하는 학교운영비 가산금도 사라진다.

지난해 10월 윤영일 국민의당 의원은 연륙 후 20년이 지나야 도서개발종합계획 지원 대상에서 제외되도록 하는 도서개발촉진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기반 시설 마련이나 연륙교 개·보수 비용 등으로 추가 지원이 필요한데 10년이 경과했다고 배제하는 현 방침은 비현실적이라는 이유에서다.







기자명 이오성 기자 다른기사 보기 dodash@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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