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갑습니다. 제 이름은 허은선입니다. 한국인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달달 외운 중국어가 막상 현지에선 별 쓸모가 없었다. 자기소개만이라도 유창하게 하고픈 중국어 꿈나무의 마음도 몰라주는 대륙이 야속했다.

실전은 달랐다. “내가 네 걸 스캔할게.” 처음 만난 사람 입에서 어려운 어휘부터 튀어나왔다. ‘스캔하다’는 아직 배우지 않은 동사입니다만…. 속으로 투덜대는 사이 다음 질문이 날아왔다. “아니면 네가 내 걸 스캔할래?” 상대가 자기 휴대전화를 꺼내 위챗 메신저 QR 코드를 보여줬다. 내 휴대전화로 QR 코드를 스캔하자 상대에게 위챗 친구 신청이 전송됐다. 상대가 수락 버튼을 눌렀다.

방에 돌아와 그 친구의 위챗 모멘트를 봤다. 카카오톡으로 치면 카카오스토리 같은 거다. 게시물에 댓글이 하나도 없었다. 당황스러웠다. 외로운 아이인가 보다. 잘해줘야겠다. 아니다. 중국인들은 공개적인 곳에 댓글을 잘 안 남기나 보다. 나도 주의해야겠어.

이유는 며칠 뒤 알 수 있었다. 내 위챗 모멘트 게시물에 한 한국인이 내 개인 정보가 가득 담긴 댓글을 ‘공개적으로’ 달아놓은 것이다. 댓글을 지워달라고 항의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뒤늦게 깨달았다. 알고 보니 위챗은 관계를 맺지 않은 사람이 남긴 ‘좋아요’와 댓글을 보여주지 않는 메신저였다. 댓글을 많이 달았던 한국인과 나 사이엔 위챗 공통 친구가 없었다. 중국 유학을 오래 한 그 한국인은 이 점을 잘 알고 댓글 창을 채팅 창처럼 활용한 것이었다. 카카오톡의 친구 추가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나는 금세 위챗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Xinhua위챗 메신저에는 실생활과 밀접한 기능이 다 있다.

중국에 살다 보니 위챗은 단순한 채팅 도구가 아니었다. 앞서 말한 카카오스토리 기능 외에도 카카오톡 플러스친구, 네이버 스토어팜, 인스타그램 마켓, 전자지갑 등 실생활과 밀접한 기능이 위챗이라는 메신저 안에 다 있었다. 관광지에서도 표지판의 QR 코드를 위챗으로 스캔하면 문화재 해설이 튀어나왔다. 교문 앞 노점상에서 과일을 살 때도, 동네 구멍가게에서 생수 한 병을 살 때도 지갑을 열 필요가 없었다. 노점 수레에, 냉장고에 붙어 있는 QR 코드를 스캔하면 결제가 끝났다. 상인들은 오히려 현금을 귀찮아했다.


중국 친구들은 ‘썸’ 탈 상대도 위챗에서 찾았다. 위챗 안에 데이트 앱 같은 기능이 있어서 가능했다. 주변 친구 찾기 기능을 켜면 몇m 반경에 같은 기능을 켜놓은 사용자들이 뜬다. 야오이야오(摇一摇·흔들기)라는 기능도 있었다. 휴대전화를 가볍게 흔들면 동시에 같은 동작을 한 위챗 사용자와 랜덤으로 연결되었다.

현금 대신 위챗에 든 돈 확인하고 중국 출장길 나서

가장 마음에 드는 기능은 유리병에 메시지를 담아 던지는 기능이었다. 유리병을 열어본 사용자와 친구를 맺어준다는 발상 자체가 낭만적이었다. 하지만 나는 이 기능을 다른 용도로 썼다. 좋아하는 드라마 대사도 읊고, 먹고 싶은 음식 리스트도 읊고, 모국어로 ‘아무말 대잔치’를 한 뒤 유리병에 담아 던지곤 했다. 병을 열어본 상대방은 황당했을 것 같다.

요즘도 중국에 출장 갈 때는 위챗과 알리페이에 돈이 얼마 있는지부터 확인한다. 실제 위안화는 비상금만 챙겨서 간다. 한국에 오면 신용카드와 현금을 지갑에 다시 채워넣는 게 일이다. 휴대전화 홈 화면에선 한국의 각종 페이 앱들이 전쟁 중이지만 내 마음속 승자는 중국 위챗이다.

기자명 허은선 (캐리어를끄는소녀 대표)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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