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을 쓰는 시간
김진한 지음, 메디치 펴냄

“헌법은 국가권력을 제약하고 길들여 시민들의 자유를 보장하는 도구로 사용한다는 약속의 규범이다.”


시간표는 나왔다. 내년 6월이다. 유권자들은 내년 지방선거 때 개헌 국민투표도 함께 한다. 흔히 개헌 하면 의원내각제·이원집정부제 등 권력구조 개편만 떠올린다. 정치인들에게만 그 논의를 맡긴다. 저자의 생각은 다르다. 저자는 ‘2016년 가을부터 2017년 봄까지 시민들이 민주주의와 자유의 헌법을 다시 작성했다’고 정의한다. ‘권력자가 함부로 무시했던 헌법을 광장의 바닥에 또렷하게 새겨놓았다’는 것이다. 시민운동가나 재야인사의 주장이 아니다. 헌법재판소에서 12년간 헌법연구관으로 재직한 헌법전문가의 단언이다.
저자는 여섯 개의 기둥으로 권력을 제한하는 헌법의 원칙을 설명한다. 국내뿐 아니라 영국·프랑스·독일·미국 등의 사례를 이해하기 쉽게 소개했다.


상어와 헤엄치기
요리스 라위언데이크 지음, 김홍식 옮김, 열린책들 펴냄

“인간을 제물로 바치는 일이 아주 당연한 것처럼 보이기 시작한다.”

글로벌 금융의 심장부 ‘시티(영국 런던의 금융산업 밀집지)’를 배경으로 오늘날 금융산업의 실상을 서술한 논픽션이다. 국제 전문 기자로 ‘금융’에는 일자무식이었던 기자가, 시티의 상어(은행가다!)들 사이를 누비며 금융의 세계를 조금씩 알아나가는 과정을 경쾌하고 삐딱하게 썼다. 터무니없이 복잡해 보이는 글로벌 금융에 대한 ‘눈높이 설명서’라고 할 수 있다.
세상에서 제일 똑똑한 것으로 알려진 은행가들을 두루 만난 저자의 결론은 의외로 ‘우리의 금융 및 통화 시스템을 완전히 새로운 DNA로 개조해야 한다’는 것이다. 스튜어드십 채택 등 산업의 금융화가 더욱 심화되리라 예상되는 한국 독자들에겐 앞으로의 경제 현실을 좀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 안내서로도 적당하다.


우주에서 살기, 일하기, 생존하기
톰 존스 지음, 승영조 옮김, 북트리거 펴냄

“우주 탐험은 끝이 없는 이야기다.”

영화 〈인터스텔라〉 〈그래비티〉 〈마션〉 등을 보다 보면 마음이 두둥실 뜬다. 우주가 멀게 느껴지지 않아서다. 평범한 사람도 우주여행을 갈 수 있게 될까? 달뜬 마음을 달래줄 책이 나타났다. 나사 우주비행사 출신 톰 존스가 자신의 경험을 살려 우주의 삶을 담았다. 그는 우주비행을 4차례나 하며 53일간 우주에 머무른 ‘우주인’이다.
특히 우주비행사의 ‘먹고 자고 씻고 누는’ 삶이 흥미롭다. 소변은 따로 모아두었다가 정화시켜 물로 마시고, 입었던 옷은 화물선에 실어서 불태워버린다. 우주여행 최고의 흥분은 ‘선명한 빛깔과 파스텔 색조가 쉼 없이 변화하는 지구행성’ 바라보기다. 우주여행을 통해 깨달은 지구의 소중함은 덤이다. 드넓은 우주에서 사는 ‘지구인’이라는 정체성을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아픈 몸을 살다
아서 프랭크 지음, 메이 옮김, 봄날의책 펴냄

“삶이 다시 시작됐다. 물론 나는 삶이 멈춘 적이 없음을 알고 있었다.”

사람으로 북적이는 병원에서 우리는 두렵고 불쾌하고 때때로 외롭다. 몸이 고장 나면 삶도 고장 난다. 아픈 사람만이 아니라 돌보는 사람의 삶 역시 마찬가지다. 공포와 절망 속에서 질문한다. ‘나에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나게 된 거지?’ 삶의 경계에 선 환자는 스스로를 그 어느 때보다 또렷이 마주보게 된다.
질병을 이겨낸 사람은 이야기를 가지고 돌아온다. 의료사회학을 전공하고 대학에서 사회학을 가르치는 촉망받는 학자였던 저자는 서른아홉 살에 달리기를 하다 돌연 쓰러졌다. 심장마비였다. 이듬해에는 고환암 진단을 받았다. 책은 치료와 회복 과정을 담은 에세이다. 단순 질병 수기가 아니다. 경험에 대한 서술을 넘어 사유로 이어지는 아름다운 문장들이 눈길을 붙잡는다.


미를 욕보이다
아서 단토 지음, 김한영 옮김, 바다출판사 펴냄

“아름답지 않아도, 추하고 불쾌해도, 혹은 혐오스러워도 괜찮아, 예술이야.”

현대미술의 핵심 중 하나는 작가가 작품을 설명하는 능력이다. 눈에 보이는 작품의 미추는 중요하지 않다. 그 작품을 얼마나 잘 풀어내느냐가 중요한데, 여기서 핵심은 바로 작품의 맥락이다. 작품의 가치는 오직 맥락 안에서 평가된다. 맥락을 풀어낼 줄 알면 프로이고 그렇지 못하면 아마추어로 머문다.
저자는 현대미술이 스스로의 맥락을 설명하면서 미가 능욕되었다고 본다. 고대 그리스인들이 발명하고 오랫동안 예술과 동일시되었던 미가 왕좌에서 쫓겨나는 모습을 통해 현대미술의 맥락이 형성되는 과정을 설명한다. ‘실물 유사성에 대한 무시’와 ‘미의 명백한 부재’를 기본 축으로 하는 새로운 현대미술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결국 예술의 권좌를 차지했다.


공부 공부
엄기호 지음, 따비 펴냄

“공부란 공부를 하며 기쁨의 관계를 맺는 일이다.”

누구보다 공부를 많이 한 저자에게 위기의식이 생겼다. 이 나라에서 제대로 늙을 수 있을까 하는 공포다. 그만 느낀 공포는 아니다. 이 질문은 좌파와 우파를 가리지 않았고 공부를 많이 했는가 아닌가의 차이도 아니었다. 젊다고 사정이 다르지 않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는 건 많은데 다룰 줄 아는 게 없는’ 상태로 후퇴하고 있었다. 공부하느라 바빠 공부할 틈이 없달까.
공부는 세상을 바꾸는 ‘자유와 해방’의 도구이지만 그에 집중하느라 정작 자기 자신을 돌보는 일을 망각해선 안 된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공부에 치인 사람들에게 공부가 어떤 기쁨과 해방을 줄 수 있는지 다시금 말해주는 책이다. 부제처럼 ‘자기를 돌보는 방법’에 대해서도 배울 수 있다.

기자명 시사IN 편집국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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