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미사카 유지 지음
주자덕 옮김
아프로스미디어 펴냄
〈전기인간〉이라니, 〈독수리 오형제〉나 〈파워레인저〉 같은 일본산 ‘전대물 (알록달록한 복면으로 무장한 남녀 영웅 여럿이 악당에 맞서 지구를 지킨다는 내용의 특수 촬영물)’을 떠올릴지도 모른다. 책 표지부터 그렇지 않은가? 실제로 읽어보면, 전대물과는 거리가 멀다. 시종일관 으스스한 분위기인데 각 장에 걸쳐 여러 장르를 종횡무진한다. 출판사 측은 ‘SF 미스터리 괴작’으로 규정했지만 ‘괴작’이란 것 말고는 동의하기 힘들다. SF인지도 의문인 데다 ‘전통적 미스터리’와도 거리가 멀다. 오히려 기상천외한 ‘서술트릭’ 쪽에 점수를 주고 싶다.

서술트릭은, 독자와 사회에 대한 작가의 도전이다. 우리는 소설이나 영화가 ‘허구’라는 것을 알면서도 마치 ‘사실’인 것처럼 소비한다. 허구와 사실 사이의 긴장 관계는 일정한 장르적 규범 위에 얹혀 있다. 이 규범은 작가와 독자, 사회 간에 ‘암묵적으로 이루어진 합의’다. 서술트릭의 작가는 이런 합의를 은밀하지만 난폭하게 뒤집어버리는데, 이 ‘불법행위’에 독자가 분노하기보다 미학적 쾌감을 느낄 때 명작이 탄생하는 것이다. 영화 〈식스센스〉에서 주인공인 심리학자(브루스 윌리스)의 시선을 쫓아가다가 최후에 밀어닥치는 쾌감을 맛본 이들은 서술트릭에 대해 결코 ‘사기’라고 말하지 않을 것이다. 어떻게 보면 〈식스센스〉는 영화라는 장르에도 서술트릭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 작품이다.

소설 〈전기인간〉은 ‘그 존재를 말하면 나타나고, 사람의 생각을 읽으며, 도체를 타고 이동하고, 아무런 흔적 없이 사람을 살해할 수 있는’ ‘전기인간’이라는 도시 전설에 대한 이야기다. 스즈키 코지의 〈링〉처럼 진행되다가(수상한 죽음의 연쇄), 도시 괴담 자체에 대한 진지한 담론으로 이어지는데, 끝에서 두 번째 장의 마지막 문장에서 ‘헉’ 하고 탄성을 내뱉게 된다. 범행 동기 역시 유례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독특하다. 그러고 보니, 이 소설의 마지막 장, 마지막 문장은 빼도 박도 못할 전대물이군!

기자명 이종태 기자 다른기사 보기 peek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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