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19일 오전, 서울 마포구 중동에 있는 한국택시협동조합의 차고지. 택시회사 마당에 서 있는 택시가 서너 대뿐이었다. 한 대는 정비 중이었다. 다른 한 대도 운행을 위해 금세 ‘출격’했다. 택시회사 차고지에 택시가 거의 없다는 것. 좋은 신호다. 그만큼 가동률이 높다는 뜻이다. 저임금 노동으로 택시 운전사를 구하기 어렵고, 운전사를 구하지 못하면 택시를 세워둘 수밖에 없어서 가동률이 떨어진다. 이런 택시업계의 악순환에서 벗어난 것이다. 한국택시협동조합의 월평균 가동률은 80~85%. 업계 상위권이다. 2년 전 법인택시 시절(옛 서기운수)에는 48% 수준이었다. 2015년 7월, 노란색 ‘쿱(COOP)택시’가 시동을 건 지 2년 만의 변화다.

이야기는 2012년 5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협동조합기본법이 통과(2011년 12월 말)되고 나서 박계동씨(현 한국택시협동조합 이사장)는 협동조합에 관심을 둔 지인들과 한국협동조합연대를 준비했다. 협동조합 인큐베이팅 구실을 하는 사회적 협동조합이다. 그는 정치권의 법 제정 논의를 지켜보면서 협동조합의 가능성을 엿보았고, 협동조합 형태로 사업을 할 수 있는 여러 업종을 검토했다. 그중에서 제일 먼저 찾은 업종이 택시였다. 그는 2000년 국회의원 선거에서 낙선한 후에 1년가량 택시운전사로 일한 경험도 있다. 그때 택시업계 현실에 눈을 떴다. “택시는 현금 장사다. 가동률 50%대를 넘으면 흑자가 가능해 보였다. 협동조합 형태로 충분히 수익을 올릴 수 있었고, 지속 가능하다고 판단했다.”

ⓒ시사IN 윤무영박계동 한국택시협동조합 이사장(오른쪽)은 2000년 국회의원 선거에서 낙선한 후 1년가량 택시운전사로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택시협동조합을 설립했다.

택시협동조합을 설립하는 데 가장 어려운 것은 자금 조달 문제였다. 전국의 택시는 25만4000여 대, 서울의 택시는 7만2000여 대다. ‘사업구역별 택시총량제’를 실시하고 있다. 법인택시회사 간 거래가 대부분이어서 택시를 구하기 어려웠다. 결국 기존 택시회사를 인수해야만 했다. 때마침 서기운수가 ‘법정매각’ 매물로 나왔다. 2015년 1월 한국협동조합연대가 입찰에 참여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었다. 문제는 40억원에 이르는 인수 자금이었다. 계약금 4억원은 박계동 이사장이 집을 처분해 마련했다. 잔금 36억원을 구하기 위해 거의 모든 금융기관을 찾아가 사업성이 있다고 설득했지만 거절당했다. 결국 사채까지 이용하며 인수 대금을 지불했다. 그렇게 영업용 택시 71대를 인수했다. 

택시회사를 인수한 이후에 조합원을 모집했다. 출자금은 2500만원. 또 다른 문제는 조합원으로 가입하려는 택시 운전사들의 신용 상태였다. 출자금 2500만원을 낼 수 있는 이가 많지 않았고, 대출을 받자니 신용도가 떨어졌다. 결국 서울보증보험-하나은행-한국택시협동조합의 3자 협약으로 문제를 풀어갔다. 서울보증보험이 지급보증을 하고 하나은행에서 개인당 2500만원 대출을 하고 택시협동조합에서 월급에서 원천징수해 갚는 방식이었다. 은행권 대출이 안 되는, 신용 등급이 낮은 조합원은 서울시와 관련 있는 (재)한국사회투자의 융자를 이용했다. (재)한국사회투자에서 10억원을 택시협동조합에 융자하고, 협동조합이 저신용 조합원에게 다시 대출해주는 방식이었다. 이렇게 모인 한국택시협동조합의 조합원 수는 173명(7월12일 현재). 출자금으로 처음에 사채 등을 통해 조달했던 인수 자금을 갈음했다. 박계동 이사장은 “협동조합 택시 하면서 초창기 자금 조달이 가장 어려웠다. 협동조합을 지원하는 금융 제도가 바뀔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협동조합 택시는 일반 법인택시와 무엇이 다를까. 통상 법인택시는 사납금제를 택한다. 택시회사는 사납금(오전 12만5000원, 오후 14만5000원)을 받고 일정량의 연료를 지급한다. 운전사는 사납금 기준으로 고정 급여를 받고 사납금을 초과하는 금액을 추가로 받는다. 회사에서 지급하는 연료 이상을 쓰면 운전사 개인이 부담한다. 그런데 사납금을 내고 나면 남는 운송수익금이 별로 없기 때문에 운전자는 저임금에 시달릴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었다. 택시협동조합은 전액관리제를 도입했다. 운송수입금 전액을 회사에 납부하고 운전자는 기본 급여와 잉여배당금을 추가로 받도록 했다.


‘민주적 운영, 투명 경영, 공정한 분배’

ⓒ서울시 제공한국택시협동조합은 수익금을 기사에게 배당하는 방식으로 운영한다. 위는 2015년 7월14일 서울광장에서 열린 ‘한국택시협동조합’ 출범식 모습.

무슨 차이가 있을까 싶지만 제도 운영에 따라 결과는 확연히 달랐다. 택시협동조합은 ‘민주적 운영, 투명 경영, 공정한 분배’를 원칙으로 삼았다. 조합원 열 명당 한 명꼴로 대의원을 선출해 대의원회를 구성했다. 선출된 대의원들이 사고처리위원회, 인사관리위원회, 교육복지위원회 등을 구성해 회사 운영 전반에 참여한다. 매달 5일에 전표를 모두 외부 회계법인에 보내고, 8일에 대의원들이 모여 회계결산보고서를 받아 회의를 한다. 매출·가동률이 어떤지 질의응답하고 이런 과정을 통해 성과를 어떻게 분배할지 결정한다. 보통 협동조합 안에서 다른 조합원에 비해 일을 덜하는 ‘무임승차’ 문제가 생기곤 한다. ‘누구는 일을 더 하고, 누구는 덜 일하는데 보상을 어떻게 할 것인가’, 이런 문제도 택시협동조합 대의원 회의에서 스스로 결정한다.


한국택시협동조합의 설명에 따르면, 일반 법인택시는 매출액의 35%가량이 인건비로 지출되는데 택시협동조합은 65%를 인건비로 지급한다. 운전 조합원의 평균 월급이 일반 택시회사 소속 운전자보다 수십만원 더 많다. 옛 서기운수 시절과 비교하면 그 성과가 도드라진다. 서기운수 시절 매출액이 연 28억원 수준이었는데 지금은 연 65억원 수준으로 늘어났다. 직원 수가 두 배 넘게 증가했다. 이경식 한국택시협동조합 본부장은 “협동조합 2년 동안 악성 일자리에서 양성 일자리로 바뀌었다”라고 말했다.

외부 평가도 좋다. 지난 4월 한국택시협동조합은 2017년 우수택시회사 인증업체로 선정되었다. 서울시가 경영 및 서비스를 평가해 상위 10%인 택시회사 25개를 선정했다. 전면 유리창에 ‘최우수(AAA)’ 인증마크를 부착했다. AAA는 운수 종사자 처우 A, 택시 서비스 A, 경영관리 A를 뜻한다.

한국택시협동조합 사례가 알려지면서 다른 지역에서도 택시협동조합이 늘어났다. 포항·경주·대구·광주에 택시협동조합이 생겨났다. 구미에서도 준비 중이다. 한국협동조합연대가 이들 지역 택시협동조합의 출범을 도왔다. 박계동 이사장은 “택시협동조합 회사가 10개 이상이 모이면 공제형 보험, 상조형 금융이 가능해진다. 그렇게 되면 보험료도 내려갈 거고, 조합원 혜택도 늘어난다”라고 말했다.

기자명 차형석 기자 다른기사 보기 ch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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