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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속으로 들어가 다른 목소리를 들었다”

2017년 08월 04일(금) 제515호
변진경 기자 alm242@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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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천석 행복한아이연구소 소장은 문재인 정부 국민인수위원회에 참여해 소통위원을 맡았다. 소통이 막혀 어려움을 겪는 정부와 국민 사이에, 그는 다리를 놓았다.

서천석(47) 행복한아이연구소 소장은 소아정신과 의사다. 진료실에서 아이와 부모를 만나 이야기를 듣는다. 진료실은 때로 밖으로 확장된다. 페이스북, 트위터, 팟캐스트, 방송, 책, 강연을 통해 또 숱한 부모와 아이들을 만나왔다. 그들의 마음을 연구하고 마음에 평화가 깃들 수 있도록 돕는다. 서 소장이 마주한 부모와 아이 사이 갈등은 ‘소통’이 문제인 경우가 많다. 서 소장은 조언한다. “소통은 대화보다 더 어렵다. 소통은 막힌 것을 터서 통하게 한다는 의미다. 어떤 막힌 것을 터야 할까? 내 관점, 내 선입견을 튼다는 것이다. 그걸 터서 상대를 받아들이겠다는 것이다(2016년 4월26일 트위터).”

이번에 서 소장은 또 하나의 소통을 도왔다. 문재인 정부 국민인수위원회에 참여해 소통위원을 맡았다. 향후 5년 국정 운영 계획에 국민의 목소리가 반영될 수 있게끔 온·오프라인 정책 제안 공간 ‘광화문 1번가’를 홍보하고 열린 포럼 등 행사가 있을 때마다 사회자로 나섰다. 부모와 아이 관계처럼, 소통이 막혀 어려움을 겪는 정부와 국민 사이에서 다리를 놓았다. 정부와 국민 사이에 막힌 것이 트여 서로 통했을까? 한여름 내내 가장 뜨거운 ‘소통’ 현장의 한가운데에 서 있었던 서 소장을 7월20일 서울 종로구 계동 한 카페에서 만났다.

ⓒ시사IN 조남진
서천석 소장은 “‘내가 요구를 하면 정부가 듣고 소통을 하더라’는 경험과 믿음이 쌓이면 국민이 앞으로 목소리를 더 많이 낼 수 있다”라고 말했다.


50일간 국민인수위 소통위원으로서 활동했는데?

예상보다도 국민 참여가 많아 놀랐다. 관료들이 책상 앞에서 생각하는 것보다 더 생생한 현실을 반영하는 제안이 많이 나왔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해단식을 할 때 현장 부스를 지키던 공무원들이 했던 이야기다. 그들은 현재 작동하는 법령이나 시스템 아래에서 국민들이 낸 제안이 실제 반영되기는 쉽지 않다고 했다. 한 공무원은 “정책 제안하신 분들에게 나중에 피드백을 받을 때 제발 50%라도 만족도가 나왔으면 좋겠다”라고 말하더라. 국민이 느끼는 모순이나 문제점을, 현재의 법령이나 행정은 충분히 반영하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을 공무원들이 국민 목소리를 직접 듣다 보니 알게 된 것이다. “현장과 동떨어진 행정을 하고 있었다” “국민들의 정당한 주장이 반영될 방법이 없다” “국민의 삶을 나아지게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 등등. 공무원들의 이런 말이 인상적이었다(지난 5월25일부터 50일간 광화문 1번가를 통해 22만여 건의 국민 제안이 접수됐다. 이 가운데 99건 제안은 국정기획자문위원회의 100대 국정과제에 반영되었다).

공무원들의 깨달음이 광화문 1번가의 가장 큰 소득일 수 있겠다.

그럴 수 있다. 행정의 기본은 국민의 문제를 해결하는 거다. 공무원이 만나야 할 사람은 전문가, 기자 또는 이익집단이 아니라 진짜 현장에 숨어 있던 사람들이다. 공무원들이 광화문 1번가를 통해 국민 속으로 들어가면서 다른 목소리, 다른 요구가 있다는 것을 느꼈을 것이다.  

앞으로 5년 동안 문재인 정부가 국민과 소통하는 기반을 마련한 자리로 평가할 수 있을까?

시작이다. 국민들이 자신이 낸 정책이 반영되는 경험을 하면 자기 효능감이 높아진다. 내가 하는 행위가 어떤 실제적인 변화나 결과로 이뤄진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노력하면 뭐해? 어차피 바뀌는 것도 없고 헬조선인데”라고 체념하고 있던 국민들이 “이건 너무 심하다” 싶어 촛불집회에 나섰더니 진짜 정권이 바뀌는 변화가 일어났다. 이처럼 일상의 정책 변화에서도, 내가 요구를 하면 정부가 듣고 소통을 하더라는 경험과 믿음이 쌓이면 국민이 앞으로 목소리를 더 많이 낼 수 있다.

광화문 1번가 상설화 이야기도 나오는데?

이번 국민인수위 정책 제안 중에도 굉장히 많이 나온 것 가운데 하나가 광화문 1번가 상설화였다. 이제는 국민이 국가정책에 대해 “나는 선거만 하면 끝이고 나머지는 알아서 하는 거지”라고 뒤에 머물러 있지만은 않을 것이다.

육아·교육 분야에서도 참여가 많았다.

육아 정책에서 당사자 참여는 특히 중요하다. 이제껏 저출산위원회에 30대 엄마가 있었나? 아마 앞으로도 30대, 40대 아이를 키우는 엄마, 혹은 아이 낳을 가능성 있는 20대가 위원으로 들어가기 어려울 것이다. 제대로 육아를 해본 적도 없거나 했어도 너무 오래 전 일인 사람들이 모여서 출산이나 육아 이야기를 나누면 거기서 제대로 된 정책이 나오기 어렵다.

선의를 가져도 어려운 일인가?

생각의 기반이 다르기 때문에 어느 나이 이상인 분들은 지금 젊은 부모를 이해하기가 어렵다. 꽤 올바른 방향으로 생각하다가도 삐끗한다. 현실을 모르기 때문이다. 마음은 도와주고 싶어도 실제 내가 하는 것과는 다르다. 예를 들어 기성세대들은 흔히 (젊은 세대가) 돈 없고 집 없어서 애를 안 낳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젊은 여성들에겐 자기 인생에서 아이가 어떤 의미가 있을지를 고민한다. 문제도 다르게 보고, 감각도 다르다. 감각이 다르니 저번에 크게 논란이 된 ‘여성 출산지도’ 같은 사건이 생기지 않나? 가임 연령 세대들이 가진 고민과 감각을 반영하는 정책이 나오려면 어떤 식으로든 당사자가 적극 참여하고 소통해야 한다.

ⓒ연합뉴스
7월12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 1번가’에서 열린 해단식에 참석한 김진표 국정기획자문위원장, 김부겸 행정자치부 장관, 서천석 소장(앞줄 왼쪽 세 번째부터).

지난 대선 때 “야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에 대한 후보들의 답을 보고 투표하겠다고 페이스북에 썼다. 부모의 노동시간을 줄여주는 것으로 보육 문제를 풀 수 있을까?

풀 수 있을 것 같다. 최저임금의 상승도 결국 노동시간을 줄이는 효과를 낼 것이다. 함부로 야근시키기가 점점 어려워지니까. 근무시간이 줄기 시작하면 결국 아이와 있는 시간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아이와 오래 같이 있다 보면 이야기를 듣게 되고, 이야기를 듣다 보면 아이가 하는 말을 존중할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면 아이의 의견이 반영되면서 지금의 육아가 많이 변할 거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 부모들은 짧은 시간 안에 효율적으로 육아를 하려고 하면서, 정작 육아 대상인 아이의 목소리는 잘 듣지 못한다.

평소 정신과 의사로서 교육에 관해서도 의견을 많이 내는데?

공부가 아이들의 삶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 크다. 물고기가 병이 들면 어항에서 꺼내 치료한 다음 다시 어항에 집어넣어야 하는데, 어항이 엉망이면 물고기를 치료해도 소용이 없다. 정신과 의사는 사회적 관심이 있을 수밖에 없고, 특히 소아청소년정신과 의사는 아이들이 겪고 있는 교육 문제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대학 입시가 근본 문제일까?

수능이냐 학생부종합전형이냐, 이런 게 우리 사회에 대단한 변화를 이끌어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고등학교 교육은 초·중학교 교육을 망가트리지 않는 시스템이면 된다. 나는 오히려 초등학교·중학교 교육에 변화를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초·중학교 시절은 아무래도 입시와 좀 떨어져 있으니까 부모도 마음의 여유를 갖고 바라볼 수 있다. 아이들이 학교 가는 게 행복하고 수업이 즐겁고 그 속에서 성장하고 배울 수 있도록 우리가 만들 수 있다. 우리가 돈이 없나, 교사의 질이 떨어지나? 초·중학교에서 ‘이게 바로 배우는 거다’라는 느낌이 들게 아이들을 성장시키는 게 중요하다.

아이가 배움의 기쁨을 체득하는 경험이 교육을 변화시킬 수 있나?

아이 키우는 사람들은 그게 최고라는 걸 다 알고 있다. 학교에 애를 보냈는데 애가 학교 갔다 와서 재미있다고 하면 정말 행복한 거 아니겠나. 초·중학교까지 그런 배움의 즐거움을 체득하고 난 아이들은 고등학교 가서도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다. 단순하게 외우고 입시 준비하고 이게 무슨 의미가 있냐고. 그러면 고등학교 교육도 변할 수 있다. 지금은 초·중학교 때부터 공부를 잘하고 성적이 좋지 않으면 행복하지 않다. 공부 잘하는 20%를 제외한 나머지 80%는 뭔가? 이 아이들을 그냥 ‘쩌리(겉돌거나 존재감이 없는 사람)’로 만드는 시스템이다.

자사고 등 최근 주요한 교육 이슈들은 거의 상위 20% 아이들에 관한 것이다.

특정 지역에 살거나 자녀를 특정 학교에 보내는 학부모들의 목소리가 과대 대표됐다. 사실 그들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20% 아이들은 안 시켜도 공부하고 그 부모는 어떻게든 경쟁하고 알아서 한다. 나머지 80%의 아이들이 학교에서 행복감과 성장한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게 해야 한다. 그 아이들 부모도 똑같이 세금을 낸다. 학교에서 보내는 8시간이 나에게 의미 있도록 만들어달라고 아이들은 당연히 요구할 수 있고 국가는 그걸 채워줘야 한다.

교육을 계층 이동의 사다리로 보는 사람이 아직도 많다.

위로 올라가는 ‘사다리론’을 부모들이 이제 별로 공감하지 않는다. 오히려 지금은 내 아이가 계층 유지가 안 될 거라는 불안감이 더 크다. 내가 사는 만큼이라도 우리 아이가 살아줬으면, 더 밀려나서 최악의 상황은 안 됐으면 한다. 불확실성이 심화된 세상에서 아이들이 어떻게 성장하고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걱정이 높아졌다. 과거의 욕망에 비해서는 엄청나게 축소됐다.

누군가를 인터뷰한다면 꼭 ‘당신의 마음에는 평화가 있습니까’라는 질문을 던지고 싶다고 했다. 왜인가?

늘 내 아이들에게 말한다. 첫째, 자기 앞가림을 하고, 둘째,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통해 앞가림을 하면 더 좋고, 셋째, 남들에게 도움이 되는 삶을 살길 바란다고. 인생은 그 정도면 잘사는 거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많은 걸 얻었지만 마음이 평화롭지 못한 사람들을 많이 만난다. 이런 분들에게 “당신은 왜 그곳에 올라가고 싶었느냐”라고 물어보면 “그냥 평화로운 삶, 안정적인 삶을 살고 싶었다”라고 말하는 이들이 많다. 지금은 가능성이 넓게 열린 시대이다. 노숙자가 삽시간에 부자가 되기도 하고, 대단하던 사람이 어느 순간 재판에 끌려 다니기도 한다. 엄청난 욕망과 불안과 변화가 상존하는 세상 속에서 나를 잘 지켜가는 것, 내 마음의 평화를 잘 지켜가는 게 결국은 제일 중요한 행복이라는 생각을 했다.

자신의 마음에는 평화가 있나?


나는 괜찮은 것 같다. 약간 삐끗할 때가 있지만 제정신을 곧 차린다(웃음).

녹취 도움:최진렬 <시사IN> 교육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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