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서 동성혼이 합법화되었다. 독일은 동성 결혼이 합법화된 스물세 번째 국가가 되었다. 기존 독일 민법은 부부를 ‘인생의 동반자’로 정의했다. 하지만 새롭게 바뀐 법안은 부부를 ‘이성 또는 동성 간에 맺어진 인생의 동반자’로 정의했다.

독일은 이미 2001년 동성 동거인을 법적인 파트너로 등록할 수 있는 법안을 도입했다. 이후 동성 파트너 관계도 이성 부부와 거의 동일한 사회보장 및 법적 권리를 누렸다. 하지만 이성 부부와 달리 동성 부부는 아이를 입양할 수 없었다. 동성혼 합법화로 동성 부부도 이성 부부와 똑같이 아이를 입양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다만 이미 법적으로 등록된 동성 파트너가 부부로 자동 전환되는 것은 아니다. 부부가 되기를 원하는 동성 커플은 새롭게 관청에 등록해야 한다.

이번 법안 개정은 연방 하원에서 사회민주당(사민당)·녹색당·좌파당이 함께 발의했다. 지난 6월30일 총 623표 중 찬성 393표, 반대 226표, 기권 4표로 하원에서 통과되었다. 오랫동안 동성혼 합법화를 반대했던 기독민주당(기민당)-기독사회당(기사당) 소속 의원 320명 중 최소 75명도 찬성표를 던졌다.

동성혼 합법화는 수년간 연방 하원에서 논란거리였다. 의석수가 가장 많은 메르켈 총리의 기민당-기사당 연합의 반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다. 이번에도 메르켈 총리는 하원 투표에서 반대표를 던졌다. 메르켈은 표결에 앞서 “헌법 제6조가 보장하고 있는 부부는 남자와 여자로 이루어진 부부를 의미한다”라고 연설했다.

7월7일 각 주정부 대표로 구성된 상원에서는 하원과 달리 동성혼 합법화 법안이 압도적인 지지로 통과되었다. 표결에 앞서 한 시간가량 진행된 토론에서는 사민당·녹색당·좌파당 소속 대표들뿐 아니라 기민당 소속 대표들도 지지를 표명했다. 지난 6월 선출된 슐레스비히홀슈타인 주 총리 다니엘 귄터(기민당)는 “결혼을 원하는 사람은 전통적인 가치를 지키는 사람이다. 이제 성별은 결혼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지 않는다. 사랑과 책임감만이 중요할 뿐이다”라고 말했다. 유일하게 비판적인 의견을 표명한 이는 바이에른 주의 법무장관 빈프리트 바우스바크(기사당)였다. 그는 “바이에른 주에서 부부는 남자와 여자의 결합만을 의미할 뿐이다. 결혼제도와 이에 대한 보호를 약화시키는 법안을 바이에른 주는 거부한다”라고 밝혔다.

ⓒEPA6월30일 독일 베를린 브란덴부르크 게이트 앞 광장에서 동성혼 합법화 법안이 통과되기를 기다리는 동성 커플이 무지개 깃발로 몸을 감싸고 있다.

동성혼 합법화와 관련해 지금까지 가장 큰 쟁점은 동성 부부의 아이 입양 문제였다. 2013년 메르켈 총리는 “기민당은 동성 부부의 아이 입양을 찬성하기 어렵다”라고 밝혔다. 독일 공영방송 뉴스 〈타게스샤우〉와 시사 주간지 〈슈피겔〉은 동성혼 합법화를 보도하며 심리학자의 의견을 자세히 소개했다. 독일 언론이 소개한 심리학 연구 결과에 따르면 동성 부부의 자녀도 이성 부부의 자녀와 동일한 수준의 행복감을 느끼며 건강하게 성장한다고 한다. 〈타게스샤우〉는 “동성 부부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이 또래에게 차별을 당하는 경우가 종종 있지만, 동성 부부 가정은 화목한 경우가 많아 이러한 문제가 어느 정도 상쇄된다”라는 연구 결과를 보도했다.

메르켈 총리와 기민당-기사당 연합은 오는 9월 총선 이전에 동성혼 합법화 법안에 대한 표결을 원치 않았다. 여론조사에 따르면 독일인의 60%가량이 동성혼에 찬성하고, 기민당-기사당 정치인 중 상당수도 동성혼에 찬성한다. 반면 전통적인 기민당-기사당 지지자들과 가톨릭교회가 동성혼을 반대하고 있다. 그래서 메르켈 총리와 기민당-기사당 연합은 전략적으로 동성혼 합법화 법안 투표 자체를 총선 이후로 미루려 했다. 이런 전략을 녹색당 한 의원이 깨버렸다. 지난 6월 폴커 벡 의원은 녹색당 회의에서 동성혼 합법화를 연립정부 참여 조건으로 제시하자는 안건을 상정했다. 9월 총선 이후 기민당-기사당과 연립정권 구성을 저울질하던 녹색당 지도부는 벡 의원에게 안건 상정을 철회하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벡 의원은 철회하지 않았고 결국 안건이 통과되었다.

당론에 따라 녹색당이 연립정부 참여 조건으로 동성혼 합법화를 전면에 내세우자, 메르켈 총리와 기민당도 찬반 의사를 명확히 밝히라는 압박을 받았다. 메르켈 총리는 언론 인터뷰에서 의원 개개인의 양심에 따라 결정할 문제라는 ‘모호한’ 견해를 밝혔다. 기민당-기사당의 지도부도 메르켈과 마찬가지로 어정쩡한 의견을 표명했다. 반면 사민당과 좌파당은 녹색당과 적극 손을 잡았다. 동성혼 합법화 법안을 상정하기로 합의한 것이다. 결국 6월30일 상반기 마지막 정기 하원회의에서 통과되었다.

〈슈피겔〉은 동성혼 합법화를 두고 사민당의 승리로 평가했다. 9월 총선을 앞두고 여론조사에서 뒤지고 있는 사민당이 녹색당·좌파당과 함께 정치력을 보여줬다는 것이다. 물론 동성혼 합법화가 기민당-기사당에 불리하지 않을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총선 이후 연립정부 구성을 위해 기민당-기사당이 마주하게 될 문제였는데, 이를 미리 ‘해결’했다는 것이다.

남은 변수는 헌법재판소 제소?

의회에서 동성혼 합법화 법안이 의회를 통과했지만 아직 한 가지 변수가 남아 있다. 바이에른 주가 동성혼 합법화 법안이 위헌이라며 연방 헌법재판소에 판단을 구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2001년 동성 파트너 관계가 법적인 관계로 인정된 이후 헌법재판소는 동성 간 ‘동반자’ 관계가 이성 간 ‘부부’ 관계와 법적으로 똑같다는 판결을 내렸다. 하지만 헌법재판소는 동성혼 합법화를 위해서는 헌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해석을 덧붙였다. 헌법에 명시된 부부관계(제6조)는 헌법이 만들어질 당시 “남성과 여성의 결합 관계”를 의미해, 헌법 개정이 없는 동성혼 합법화는 위헌 소지가 있다는 것이다.

1949년에 제정된 헌법이 현 시점에서 재해석되어야 한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녹색당의 유력 정치인이자 바덴뷔르템베르크 주 총리인 빈프리트 크레치만은 최근 한 인터뷰에서 “1949년 헌법을 만들었던 사람들이 부부를 무엇으로 이해했느냐보다는 2017년 우리가 부부를 어떻게 이해하는가가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기자명 프랑크푸르트∙김인건 통신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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