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폭력과 따돌림에 시달리는 한 소녀가 있다. 〈여중생 A〉 (웹툰 연재 완료, 비아북, 2017)의 주인공 장미래의 좌우명은 ‘호사다마’다. 가족과 또래집단이 세상의 전부인 중학생 시절, 양쪽에서 모두 학대당했다. 그는 “행복한 감정에 자연스러워지는 것이 나에겐 주제넘은 일이란 걸 잊으면 안 돼(20화)”라며 가정폭력을 견딘다. 학교에서는 “내가 그 애의 급까지 끌어내릴 것 같으니까(32화)” 좋아하는 아이에게 고백조차 하지 못한다. 버거운 현실 때문에 반 아이들의 사소한 시비에도 다툴 힘이 없다. “그냥 나인 게 잘못인 건가(10화).” “오늘 그 말은 나에겐 거의 사형선고나 다름없는 듯하다(24화).” 열여섯 살 미래는 매일 절망한다.

미래가 안착할 수 있는 공간은 게임 〈원더링 월드〉뿐이다. 그곳은 “현실을 믿고 싶지 않아서 내가 진실로 살아가고 있는 세상은 다른 곳(21화)”이라고 믿고 싶은 공간이다. 자신이 “취해도 탈이 나지 않을 관계(25화)”인 원더피플 길드원이 있는 곳이다. 게임 자체에는 흥미를 잃은 지 오래이다. 하지만 길드 내에서 실질적인 부길마로 인정받고, 운영진에게 게임의 문제를 건의하기도 할 때, 그곳에서만은 자신이 생각보다 괜찮은 인간인 것 같다고 느낀다. 그것은 생리대를 사기 위해 생일 선물로 1000원만 달라는 현실의 미래에게 “네가 태어난 것부터가 실수인데 선물은 무슨 놈의 얼어 죽을 선물이냐?(51화)”라며 구타하던 아버지 곁에서는 결코 얻을 수 없는 자존이었다.

ⓒ이우일 그림

자존감을 지킬 수 있는 곳이 있다면 그곳이 가상세계인들 어떠랴. 무엇이든 애착을 가지고 뿌리내릴 곳이 있을 때 사람은 튼튼하게 살아갈 수 있는 법이다. 미래가 게임에서 얻는 보람과 안정감은 현실로 전혀 전이되지 못한다. 그녀에게 “유일한 진짜”는 〈원더링 월드〉 안에서의 삶이었다. 자신을 게임 속 인물이라고 믿는 것은 현실의 그녀를 더 힘들게 만들었다. “학교에서 겉도는 나” “아빠한테 맞는 나” “다른 사람의 마음을 얻지 못하는 나”(67화) 등 현실의 자신은 어떤 문제도 해결할 수 없다. 모든 고통이 평생 지속될 것이라고 여겨졌을 때 미래는 죽음을 결심한다. 게임에 접속해 작별 인사를 남기려 한다.


그것이 미래를 바꿔놓는 계기가 될지는 본인도 몰랐을 것이다. 그날 길드원 ‘희나쨩’, 현실의 현재희를 실제로 만난다. 미래는 친구와 노는 법을 하나씩 배우게 된다. 재희와 놀이공원을 찾았다가 아이들이 소풍을 기다리는 이유가 “친구와 함께하는 것(61화)”임을 배운다. 또한 친구 관계가 “놀아줘서 고마운” 게 아니라 서로 대등하게 다툴 수 있는 관계임을 깨닫는다. 친구의 상처를 못 본 척하면서도 있는 그대로 존중하는 친구가 미래의 현실에도 드디어 존재하게 된 것이다. 재희와 함께하며 미래는 어둡고 길었던 터널을 빠져나오기 시작한다.

남을 함부로 대한 무례했던 과거를 사과하면서…

“사람이 무너지기 전 지탱해줄 수 있는 사람의 수는 딱 한 명이면 충분하다(85화).” 미래는 현실에 자리 잡기 위해 노력한다. 학교에서도 급우들과 함께하는 조별 과제를 성실히 수행하며 좋은 관계를 만들려고 애쓴다. “걔네가 피하는 건데 내가 눈치 없이 구는 걸 수도(74화)” 있어 불안해하면서도 “의자에 앉으면 엉덩이가 데기라도 하는 것처럼 쉬는 시간마다 부리나케 아이들을 찾아(72화)” 간다. 친구들의 취향이 자신과 달라도 친구가 좋아하는 만화책과 아이돌 가수를 이해하려 노력한다. 남을 함부로 대한 무례했던 과거를 사과하면서 한 발짝씩 나아간다. “내가 다가가지 않으면 아무런 이벤트도 일어나지 않아(83화)” 미래는 친구에게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한다. 자기를 편견 없는 포용으로 받아들이는 또 다른 친구들이 한 명씩 늘어간다.

2016년 7월24일 연재된 76화는 웹툰 〈여중생 A〉의 중요한 장면 중 하나라 할 수 있다. 미래의 담임교사가 ‘학생 기초 조사서’를 꺼내든다. 상담을 마치고 나가는 미래를 교무실 밖에서 기다려주는 친구들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교사는 비어 있는 미래의 ‘친한 친구들’ 칸에 새로 생긴 세 친구의 이름을 적어 넣는다. 미래에게도 드디어 안착할 친구들이 생겼다. 그것은 미래를 죽지 않고 살아남게 하는 첫걸음이었다.

기자명 중림로 새우젓 (팀명)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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