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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결문에 담긴 ‘법의 지배’

2017년 07월 31일(월) 제516호
고제규 편집국장 unjus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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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 시절이었다. 취재 중 눈에 확 들어오는 공소장이 있었다. 소설처럼 주요 혐의자들의 말이 따옴표로 처리되었다. 검사는 범의(犯意)까지 꿰뚫고 있었다. 이런 공소장도 가능하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파격 공소장’은 둘 중 하나다. 혐의 입증에 너무 자신이 있거나, 억지로 엮은 무리한 기소이거나. 이 사건을 지휘한 이는, 다단계 업체로부터 뇌물을 받아 수감 중인 김광준 전 부장검사였다. 판결문에는 이런 파격이 허용되지 않는다. 판결문은 논리 정연해야 한다. 논문을 쓸 때 기존 연구를 인용하듯, 판사들은 판례를 충실히 담는다.

‘문화계 블랙리스트’ 관련 1심 선고가 났다. 서울중앙지법 형사30부(재판장 황병헌 부장판사)는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에게 징역 3년을 선고했다. 조윤선 전 문체부 장관에 대해서는 국회에서 위증한 혐의만 유죄로 인정했다. 블랙리스트 혐의는 무죄였다. 당장 법원 판결에 대한 날선 비판이 나왔다. 조 전 장관에 대해서는 특검도 ‘이해할 수 없는 판결’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판결 요지를 담은 법원의 설명 자료를 읽다 보니 그래도 눈에 띄는 부분이 적지 않았다. 재판부는 ‘상관은 하관에 대하여 범죄행위 등 위법한 행위를 하도록 명령할 직권이 없다. 하관은 상관의 적법한 명령에 복종할 의무는 있지만, 불법 명령일 때는 따라야 할 의무가 없다’는 판례를 인용했다. 이 판례에는 법치주의에 대한 정의가 일부 담겨 있다. 흔히 우리 사회에서 법치주의라고 하면 ‘법에 의한 지배(rule by law)’만 강조되어왔다. 시민의 복종을 뜻하는 준법정신으로 포장되었다. 원래 법치주의란 정부, 즉 권력자를 ‘법의 지배(rule of law)’ 아래에 두는 것이다. 시민의 자유와 권리를 침해하지 못하도록 국가권력을 제한하는 것이다. 재판부는 노태강 전 문체부 국장(현 문체부 2차관)에 대한 해임도 위법하다고 명시했다. 이 사건의 주범 격은 피고인 박근혜이다. 변호인단은 ‘공무원에 대한 임면권자는 대통령이다. 공무원에게 사직을 권유하는 것은 권한 범위 내의 행위다’라고 항변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대통령의 지시는 공무원의 신분 보장과 직업공무원 제도를 본질적으로 침해한 위법이다”라고 적시했다. 이 대목 역시 법의 지배 개념을 명확히 했다.

적폐는 단죄하고 청산해야 한다. ‘청산하지 못한 역사가 반복된다’는 실체는 아주 가까이 있다. 국정 농단 관련자들을 제대로 단죄하지 못하면 피고인 박근혜는 전두환이 되어 나타날 것이다. 전씨는 회고록까지 내며 광주 학살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번 호에 ‘진짜 적폐’가 초래한 피해 현장을 커버스토리로 올렸다. 무능한 정부를 둔 대가는 노동자들이 치르고 있었다. 진짜 청산해야 할 적폐가 이뿐만은 아닐 터. <시사IN>이 최선을 다해 취재하고 보도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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