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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숨 담보 삼아 달리는 광역버스

2017년 08월 07일(월) 제516호
조소진 (<시사IN> 교육생) webmast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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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월9일 광역버스 기사의 교통사고가 일어난 이후, 버스 기사들의 노동 실태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한 광역버스 운전기사를 15시간 동행했다. 이들은 하루 평균 17~18시간씩 일했다.

지난 7월9일 광역버스 기사의 졸음운전 사고 이후 버스 기사들의 열악한 노동환경을 바꾸자는 목소리가 높다. 7월19일 서울과 경기를 왕복 5회 오가는 경기도 지역의 ○○여객 소속 20년차 버스 기사 김덕수씨(가명)의 15시간을 동행했다.

오전 8시 김덕수씨가 차고지 식당에서 아침을 먹고 간단한 스트레칭을 마친 뒤 광역버스(직행좌석형 시내버스)에 올랐다. 출발 직전 김씨는 늘 기도를 한다. “실수할 수도 있다. 실수가 사고로 이어지는 것은 운이다. 그래서 이게 운수업이라고 우리들끼리 이야기한다.” 경기도 남부지역에서 서울역으로 향하는 버스에 승객이 하나둘 올라탔다. 김씨는 틈틈이 팔을 쭉 뻗어 어깨를 풀었다. 신호를 기다릴 때는 허리를 곧추세운 뒤 두 손으로 머리를 두들기기도 했다. 그러던 그가 수원-신갈 간 고속도로에 진입하며 ‘졸음 방지용’이라고 적힌 통에서 껌 2개를 꺼냈다. 이날의 첫 껌이었다. 두 시간 뒤 한남대교 남단 교차로를 지나며 김씨는 졸음방지용 껌을 또 입에 밀어넣었다.

ⓒ시사IN 윤무영

낮 12시 종점 근처 아파트 단지 옆 갓길에 버스를 세웠다. 운전 4시간 만에 첫 휴식시간 30분이 주어졌다. 김씨는 점심을 먹지 않았다. 아파트 상가 식당에서 동료들과 잠시 이야기를 나누다 커피를 사들고 다시 버스에 올랐다. 열흘 전 사고가 난 양재나들목 인근을 지났다. 김씨는 근무하는 날 이곳을 다섯 번 지난다. 그는 “졸음이 쏟아지기 시작하면 누구도 못 말린다. 허벅지를 찌르고 노래도 부르고 껌을 씹어도 진짜 졸리면 나도 모르게 존다. 눈 뜨고 멍하게 간다”라고 말했다. 서울역을 돌아 다시 종점을 향하던 오후 2시5분, 화장실 문제로 물을 거의 마시지 않던 김씨가 커피를 거푸 마셨다.

오후 3시 차고지로 복귀한 김씨가 구내식당에서 늦은 점심을 먹었다. 무국에 밥을 말아 그냥 넘겼다. 식사 시간은 10분도 걸리지 않았다. 다시 운전대를 잡아야 하는 3시40분까지 남은 20분 동안 그는 단층 조립식 건물 안에 마련된 휴게실에서 눈을 붙였다. 김씨가 쪽잠을 자는 동안 종점으로 들어오는 다른 버스 기사들에게 말을 걸어봤다. 돌아오는 대답은 한결같았다. “미안해요. 지금 잠을 자야 해서요.”

김씨가 속한 회사의 기사들은 하루 평균 17~18시간씩 일한다. 경기도에 따르면 경기도 시내버스 기사들의 일일 평균 노동시간은 16시간30분이다. 근로기준법에는 근로시간이 하루 8시간, 주 40시간이며 노사가 합의하면 주 12시간까지 연장근로가 가능하다고 되어 있다. 하지만 버스 기사는 노사가 합의하면 이를 초과하고도 얼마든지 근무할 수 있다. 운수업은 근로기준법 제59조에 따라 예외적으로 적용하기 때문이다. 시민의 안전을 위해 일일 버스 기사 운전 시간을 9~10시간으로 제한하는 외국과 대비된다.

ⓒ조소진 교육생
7월28일 한 광역버스가 서울역 버스 회차 지점을 지나고 있다(왼쪽). 버스 기사가 30분 남짓한 휴식시간에 차에서 쪽잠을 자는 모습(위).

오후 6시 김씨는 이따금 하품을 했다. 같은 회사 소속 버스 기사들이 지나가면서 손 인사를 했다. 편도 운행(약 30㎞) 한 차례에 12번씩, 출퇴근 시간에는 13~15번씩 김씨는 창밖으로 손을 내밀어 흔들었다. 다른 기사들도 김씨에게 손을 흔들었다. 손 인사는 안전하게 잘 다니라는 기사들끼리의 신호다. 서로에게 건네는 응원이자 각자 졸음을 쫓으려는 요령이다.


밤 10시 버스 기사에게 밤 운전은 ‘자기와의 싸움’이다. 김씨는 필사적으로 졸음과 싸웠다. 라디오 노래를 따라 부르고, 복식호흡을 하고, 물로 입을 헹궜다. 껌 3개를 한꺼번에 입에 넣기도 했다. 하지만 그도 졸음을 이기지는 못했다. 버스가 아슬아슬하게 차선을 넘나들곤 했다.

버스 기사들은 보통 하루 일하고 하루 쉬는 격일 근무를 하는데, 이틀 일하고 하루 쉬는 ‘복격일’ 근무를 일주일에 최소 한 번은 한다. 김씨 역시 한 달에 다섯 번 정도 이틀 연속 일한다. 7월9일 사고를 낸 버스 기사가 전날 16시간 넘게 운전하고 8시간도 쉬지 못한 채 출근한 것도 복격일 근무 때문이었다. 심지어는 사흘 일하고 하루 쉬는 ‘복복격일’ 근무도 있다. 이 같은 ‘변형 장시간 노동’은 인건비를 아끼려는 버스업체와 낮은 기본급을 수당으로 채우려는 기사들의 요구가 만난 결과다. 버스 약 500대를 운영하는 김씨 회사의 기사는 모두 630여 명이다. 격일제를 돌리기에도 기사 수는 부족하다. 경기도 시내버스의 대당 기사 수는 평균 1.62명 수준이다.

기형적인 임금구조도 버스 기사들이 장시간 노동을 받아들이게 한다. 버스 기사들은 매달 근무해야 하는 최소 일수인 ‘만근 일수’가 정해져 있다. 김씨 회사의 경우 12일이다. 경기도 지역 운수업계 시급은 7000원 안팎. 기사들이 하루 17시간씩 월 12일 일할 경우 연장·야간·주휴수당을 다 합해 210여만원을 받는다. 이 12일을 초과해 근무해야 ‘초과근로수당’ 등 각종 수당을 받을 수 있다. 낮은 기본급을 각종 수당으로 채우고 초과근로수당 10만원 이상을 받기 위해 김씨를 비롯한 회사 기사들은 한 달에 16일 넘게 일하는 경우가 많다.

ⓒ독자 제공
7월9일 경부고속도로 상행선 양재나들목 인근에서 광역버스가 승용차를 추돌했다.

밤 11시 15시간 운전한 끝에 김씨 버스가 차고지에 도착했다. 원래는 밤 12시20분 마지막 5회차 운행을 하고 오전 1시46분께가 되어서야 차고지에 도착했을 터였다. 이날은 길이 밀려 배차 간격이 벌어지자 회사가 5회차 운행을 취소했다. 이번 사고 이후 생긴 작은 변화다. 이전에는 교통 상황과 관계없이 배차 간격을 지켜야 했다. 정해진 배차 간격을 지키려면 휴식시간을 줄이고 다음 회차 운행에 바로 돌입해야 한다. “진짜 운수 좋은 날이죠. 이렇게 일찍 끝나고, 사고도 안 나고.” 일지와 돈 통을 떼어 회사에 내고 버스 기름을 채워넣은 김씨는 차고지 앞 식당에서 파전을 샀다. 회사에서 김씨 집까지는 40분이 걸린다.


이날 15시간 근무를 마친 김씨는 하루 쉰 뒤 다음 날 새벽 5시30분에 출근했다. 김씨와 똑같이 15시간 근무한 김씨의 한 동료는 8시간30분 만인 다음 날 오전 7시30분 다시 운전대를 잡는 복격일 근무를 했다. 정부는 지난 2월28일 버스 운전 노동자들의 졸음운전을 막는다며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 시행령과 시행규칙을 개정했다. ‘퇴근 후 다음 출근까지 연속 8시간 휴식시간 보장’ 등을 담았다. 하지만 현실에서 이 대책은 복격일이나 복복격일 근무를 막는 데 아무런 기여를 하지 못한다. 오히려 하루 24시간에서 8시간을 뺀 16시간 근무를 용인한 꼴이 되었다.

경기도와 달리 준공영제로 운영하는 서울과 인천 시내버스의 경우 1일 2교대제에 하루 9시간 일한다. 버스 한 대당 운전자 수도 경기도는 1.62명인 반면 서울은 2.24명, 인천은 2.36명이다.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은 7월28일 버스 운전자의 연속 휴식시간을 8시간에서 10시간으로 확대하고 근로기준법을 개정하는 등의 ‘버스·화물 기사 졸음운전 방지대책’을 마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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