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최근 백악관 공보국장으로 앤서니 스캐러무치(53)를 임명했다. 월가의 유력 헤지펀드 ‘스카이브리지 캐피털’ 사장 출신인 스캐러무치는 지난해 대선 막판에 트럼프와 인연을 맺은, 자칭 ‘절대 충성파’다. 다만 대통령의 국정 의제를 언론에 홍보하는 공보 부문에서는 일한 적이 없다.

트럼프 대통령이 ‘공보 무경험자’인 스캐러무치를 발탁한 이유는 매우 독특하다. 한마디로 표현하면, 백악관 내부 입단속과 정보 유출자 색출이다. 스캐러무치는 7월21일 취임 이후 “누구든 정보를 누설하면 해고될 것이다”라며 연일 ‘협박 행보’를 벌이고 있다. 그의 경고는 일차적으로 공보실 내부를 향했다. 대통령 집무실과 비서진이 포진해 있는 웨스트윙(백악관 서쪽 건물)의 직원 수백명에 대한 선전포고 성격도 짙다.

트럼프 취임 이후 공보국이 몸살을 앓고 있다. 백악관 내부자를 출처로 하는 언론 보도가 연이어 나라 전체를 뒤흔들었기 때문이다. 지난 5월, 백악관 내부자를 취재원으로 한 대형 의혹 보도가 무려 9건이나 나왔다. ‘트럼프가 러시아 외무장관에게 테러조직 이슬람국가(IS) 관련 기밀을 누설했다’라든가 재러드 쿠슈너(트럼프의 사위)와 러시아 대사 간 ‘미국·러시아 비밀채널 구축 논의’ 같은 뉴스들이 ‘백악관 관리’의 말을 인용해서 쏟아져 나온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를 최대 위기로 몰아넣은 ‘제임스 코미 연방수사국(FBI) 국장 메모’ 역시 비슷한 경로로 폭로되었다.

ⓒAFP PHOTO7월25일 트럼프 대통령이 임명한 앤서니 스캐러무치 공보국장이 백악관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에게 불리한 보도를 ‘가짜 뉴스’로 매도하는 한편 ‘정보 누설자들을 찾아내 처벌하라’고 수사 당국에 요구해왔다. 트럼프는 공보국이 언론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다며 분기탱천해 있다.


스캐러무치는 공보국장 취임 직후 언론과 상견례하면서 ‘정례 브리핑의 TV 생중계’ ‘언론과의 관계 재설정’ 등을 언급했으나 자신의 핵심 업무가 ‘정보 유출 방지’란 점을 분명히 밝혔다. 그는 보수 성향 매체 〈폭스 뉴스〉에 나가 “필요하다면 정보 유출을 막기 위해 백악관 공보실 직원을 큰 폭으로 줄이겠다”라고 하더니 CBS 방송에서는 ‘공개 협박’도 서슴지 않았다. “분명히 단언하는데, 정보 유출자는 해고될 것이다.” 공보국장이 ‘국정의제 홍보’라는 본연의 임무를 잊고 ‘대통령에게 불리한 정보 차단’을 자신의 본업으로 인식하는 셈이다.

백악관 내부 정보 누설은 일종의 ‘관행’

과연 스캐러무치의 위협으로 백악관 직원들의 정보 유출이 차단될 수 있을까? 쉽지 않다. 사실 미국에서 백악관이나 행정부 관리들의 정보 유출은, 일종의 관행으로 굳어진 지 오래다. 먼저 언론이 폭로한 정보의 출처 중에는 백악관은 물론 행정부의 고위 관리도 적지 않다. 행정부의 장차관 등 수백명에 이르는 고위 관리는, ‘백악관’ 공보국장인 스캐러무치의 권한 밖에 있다. 현실적으로 막을 방법도 없다. 특히 정보기관의 고위 관리들이 업무 협의 차원에서 중간 간부들과 공유한 정보가 언론에 흘러나갔을 때, 유출자를 추적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정치 전문 매체 〈폴리티코〉는 “정보기관들은 트럼프에게 존경을 바치기는커녕 보상도 바라지 않는다. 트럼프를 타격하는 정보의 누설이 오히려 정보기관의 이익에 부합할 것이다”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사실 백악관 내부의 정보 유출을 통제하기에도 버겁다. 백악관에서 스티브 배넌 수석전략가, 스티븐 밀러 정책국장 등 ‘국수파’와 재러드 쿠슈너 백악관 선임고문, 게리 콘 국가경제위원회 위원장 등 ‘국제파’ 사이의 암투가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음은 이미 알려진 바다(〈시사IN〉 제514호 ‘오락가락 트럼프 그 뒤의 권력투쟁’ 기사 참조). 국수파와 국제파 인사들이 상대방을 견제하고 영향력을 키우려 각축하는 과정에서 정보 유출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뉴욕타임스〉는 “트럼프 행정부는 출범 초기부터 측근들과 선임 고문들이 내부의 불협화음을 언론에 일상적으로 흘리면서 요동쳤고, 그로 인해 대통령 자신은 물론 고위 측근들에 관한 노골적인 내용이 폭로됐다”라고 지적했다. 즉, 트럼프 핵심 측근과 고문들 간의 뿌리 깊은 갈등이 해소되지 않는 한 백악관 직원들에 대한 입단속은 실효를 거두기 힘들다는 지적이다. 게다가 백악관에는 친(親)민주당 성향의 직원도 수두룩하다.

트럼프와 관료들 간의 ‘불통’도 정보 유출의 원인 중 하나다. 백악관 참모들은 트럼프의 심기를 거스를까 봐 그에게 불리한 내용은 보고하길 꺼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명 인터넷 언론 〈복스〉는 트럼프가 〈폭스 뉴스〉 애청자라는 것을 상기시키면서, “관료들이 대통령의 관심을 끌려면 〈폭스 뉴스〉에 방송될 수 있도록 정보를 주면 된다”라고 지적했다. 정보 유출을 차단하려면 스캐러무치의 협박보다 트럼프 자신의 소통 행보가 더 효과적이라는 뜻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7월31일 스캐러무치 공보국장을 전격해임했다. 임명된 지 10일만이었다-편집자 주)

기자명 워싱턴∙정재민 편집위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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