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대학교에서 테러로 추정되는 폭발.’ 스마트폰으로 기사들을 검색해본 동료가 말했다. “교수 연구실이라는데?” 순간 그 자리에 있던 다섯 명의 시선이 ‘오복성 패스’처럼 교차했다. 감히 누구도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지만, 모두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대학원생이네.’ ‘대학원생이군.’ ‘대학원생이야.’ ‘대학원생일걸.’ ‘대학원생이다.’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예상대로 범인은 폭발로 화상을 입은 교수의 소속 학과 대학원생이었다. 범행 동기 또한 예상을 한 치도 벗어나지 않았다. 논문을 쓰는 과정에서 교수와의 갈등이 심했다는 것이다. 그는 인터넷 검색도 필요 없이 스스로의 지식만으로 사제 폭탄을 만들어낼 정도의 영리함, 택배 상자로 위장한 폭탄을 연구실 문고리에 걸어놓는 과감함, 자신이 결코 붙잡히지 않을 거라 믿는 아둔함을 함께 갖고 있었다. “그야말로 대학원이 만든 괴물이네.” 불어터진 짜장면을 우물거리며 그 자리에 있던 누군가가 말했다.

ⓒ김보경 그림


2014년, 군대에서 일어난 두 개의 사건이 온 나라를 뒤집어놓았다. 선임들한테 구타와 가혹행위를 당한 끝에 숨진 윤 일병 사건과 부대 내 따돌림을 견디지 못하고 동료들에게 총기를 난사한 임 병장 사건이다. 한동안 유행했던 말이 ‘참으면 윤 일병, 못 참으면 임 병장’이었다. 일방적 피해자였던 윤 일병은 제쳐놓더라도, 다섯 명이나 숨지게 한 가해자였던 임 병장에 대해 동정 여론이 만만치 않았던 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군대’라는 조직이 그만큼 부조리하고 불합리하다는 공통의 인식 때문일 것이다. 군대가 부조리하고 불합리한 이유는? 무조건적 상명하복의 조직 문화와 특유의 폐쇄성 때문이다.

사제 폭탄과 똥과 팔만대장경이 말하는 것

대학원이라는 조직 또한 어떤 점에선 군대와 비슷하다. 거기에는 ‘교수 연구실에서 폭탄이 폭발했다’는 사실만으로 ‘분노한 대학원생’을 떠올리게 하는 구조가 존재한다. ‘임 병장’의 자리에 폭탄을 터트린 Y대 대학원생을 대입한다면, ‘윤 일병’의 자리에는 ‘인분 교수’ 사건의 피해자였던 대학원생이 놓일 수 있을 것이다. 그는 교수가 설립한 업체에서 일하는 동안 제대로 된 대우는커녕, 야구방망이로 구타당하고 인분(똥)을 먹는 등 실로 잔혹한 꼴을 당해야만 했다. 바깥 사회의 상식으로는 그깟 대학원 당장 때려치우고 경찰에 신고해버리면 그만 아니냐 싶겠지만, 그가 쉬이 그러지 못했던 나름의 이유가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가 뒤늦게 사건을 공론화시킨 것만도 대단한 용기를 쥐어짜낸 결과였다. 교수는 대학원생의 미래를 쥐고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 S대의 한 교수는 대학원생 4명에게 1년 동안 A4 용지 8만 쪽이 넘는 문서를 스캔하도록 지시한 것으로 드러났다. ‘S대 팔만대장경 사건’으로 명명된 사건의 해당 교수는 대학 내 인권센터를 통해 인권교육을 이수하는 정도의 가벼운 처벌만 받았다고 한다. 단언컨대, 그 대학원생들의 노동에 대해 정당한 대가가 지불되었다면 이와 같은 반발도 없었을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많은 대학원생들이 ‘교육’을 빙자한 ‘도제식 노동’에 시달리고 있다. 대학원생의 노동 착취와 인권 문제에 관해서는 대학이나 정부 당국도 손 놓고 바라만 보는 실정이다. ‘대학-대학원-학계(또는 관련 업계)’로 연결되는 폐쇄적 구조, 교수와의 관계가 미래를 좌우하는 기형적 시스템이 ‘인분 교수’ 같은 괴물이 서식하기 적합한 환경을 제공한다.

“한동안 교수들은 택배로 물건 안 받겠네, 무서워서.” 내가 말했다. “왜? 조교가 먼저 열어보게 하면 되지.” 동료가 장난스럽게 받았다. 우리는 잠시 낄낄대다가 곧 딱딱하게 얼굴을 굳히고 자리를 떠났다.

기자명 홍덕구 (인문학협동조합 조합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