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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미술 생태계 최상위에는 ‘이것’이 있다

2017년 08월 11일(금) 제516호
이상원 기자 prode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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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인도> 논란을 바로 읽으려면 미술 시장 생태계라는 시스템을 파악해야 한다. 작품을 감정하는 ‘전문가’들은 ‘심판’이 아니라 여러 이해관계로 묶인 ‘선수’이기 때문이다.

“자기 자식인지 아닌지 모르는 부모가 어디 있습니까?” 1991년 처음 위작 논란이 불거졌을 때 천경자 화백이 <미인도>를 두고 했던 말이다. 예순일곱 살 천 화백은 호소했지만, 미술계 의견은 달랐다. 1991년 이래 작품을 소장 중인 국립현대미술관과 다수 미술계 인사들이 <미인도>가 진품이라고 주장했다. 지난해 12월19일 검찰도 진품이라는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하지만 위작 논란의 불씨는 여전하다.

다른 작가들이 위작 시비에 휘말릴 때도 천 화백의 호소는 종종 인용됐다. 이런 ‘작가’와 ‘전문가’의 분석이 맞부딪치는 지점이 미술품 감정이라는 ‘전선’이다. ‘작가(유족)와 전문가의 작품 감정권 다툼’이라는 프레임으로 위작 시비를 가리기에는 국내 미술 시장 생태계가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전문가들은 ‘심판’이 아니라, 여러 이해관계로 묶인 ‘선수’이기 때문이다.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미인도> 논란을 바로 읽으려면, 미술 시장 생태계라는 시스템을 파악해야 한다.

ⓒ연합뉴스
천경자 화백은 “자기 자식인지 아닌지 모르는 부모가 어디 있느냐”라며 <미인도>가 위작이라고 주장했다.
위는 1985년 3월, 천 화백의 생전 모습.

한국 미술 거래 생태계의 최상위에는 화랑(갤러리)이 있다. 화랑의 본래 소임은 유통이다. 작품을 구매자에게 팔고, 대금은 보통 작가와 절반씩 나눈다. 국내 화랑은 그림을 구매자에게 바로 파는 데에 그치지 않고, 경매도 도맡는다. 이른바 양대 경매사인 서울옥션과 케이옥션은 각각 가나아트갤러리와 갤러리현대의 자회사다. 두 회사는 미술품 경매시장의 80% 이상을 점유하고 있다. 이 밖에 작가와 화랑들이 각자 부스를 빌려 미술품을 판매하는 아트페어(art fair·미술 장터) 또한 한국화랑협회에서 주관한다. 말하자면 화랑은, ‘작가→화랑→구매자’로 이어지는 1차 시장뿐만 아니라 경매사와 아트페어를 거치는 2차 시장까지 영향력을 행사한다.

세계적으로 화랑이 미술품 시장 전체에 영향력을 크게 행사하는 사례는 드물다. 해외 유명 경매사들은 대부분 독립된 회사이며, 화랑과는 상호 견제를 한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화랑이 유통뿐만 아니라 감정도 독과점한다. 한국에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처럼 ‘이해관계가 없는 제3의’ 감정 기구가 존재하지 않는다. 공인 미술품 감정 자격 제도가 있어서 전문성이 보장된 인력이 나오는 것도 아니다. 이론적으로는 누구나 감정을 하고 감정서를 발부할 수 있는 시장이지만, 절대적 점유율(약 80%)은 한국미술품감정평가원(감정평가원)이 갖고 있다. 이곳도 사실은 화랑 10여 곳 대표가 만든 사설 단체이다.

같은 조직을 둘로 쪼개 ‘업무 제휴’?


감정평가원 홈페이지에는 ‘한국미술품 감정협회(감정협회)와 감정 업무를 제휴하고 있다’고 적혀 있다. 감정협회와 감정평가원은 어떤 관계일까? 감정협회는 비영리단체이고, 감정평가원은 주식회사다. 그런데 양 단체는 주소와 전화번호가 같다. 실질적으로 같은 조직을 둘로 쪼갠 뒤 ‘업무 제휴’라는 이름으로 다시 묶은 것이다.

이에 대해 감정평가원 관계자는 “감정협회는 감정위원들이 속한 곳이고 감정평가원은 감정서 발부 등 업무 제반을 담당하는 곳이다. 같은 곳에 있지만 다른 조직이라서 업무 제휴를 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한 화랑 대표의 설명은 다르다. “같은 조직을 둘로 분리해서 업무 제휴를 발표한 것도 ‘신의 한 수’다. 정부보조금이나 감정 요청은 비영리조직인 감정협회 이름으로 받고, 그 수익은 주식회사인 감정평가원이 각 화랑에 분배한다. 각 화랑은 감정평가원의 주주들이다.” 천경자 화백의 동양화 같은 경우 진위를 감정하는 비용이 33만원에서 60만원까지 든다. 시가가 얼마인지 감정하려면 10만원에서 500만원까지 추가 비용이 붙는다.

ⓒ연합뉴스
지난해 12월19일 검찰은 <미인도>가 진품이라는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위는 노승권 당시 서울중앙지검 제1차장검사가 <미인도>를 살펴보는 모습.

미술품은 공산품과 달리 일반인이 가치를 측정하기 어렵다. 감정위원들은 마음만 먹으면 우월한 지위를 이용해서 작품의 가치를 매길 수 있다.


이런 구조라면 작가 본인의 주장을 절대적으로 믿어야 할까? 꼭 그렇지도 않다. 작가 본인도 이해관계에서 자유롭지 못한 경우도 있다. 위작 의혹이 제기됐을 때 작가가 눈앞의 이익을 좇는다면 의외로 답은 간단하다. 일단 진품이라고 말한다. 실제로는 위작이라고 여기더라도 그렇다. 위작의 수가 작품 가격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베끼기 쉬운 작품에 천문학적 금액을 퍼부을 사람은 적다. 위작으로 인정해버리면, 이전에 다른 그림을 산 사람들도 재감정을 요구하고, 수년간 수사기관에 불려 다니게 될 수도 있다. 그래서 대부분 위작 시비 앞에 화가 본인과 가족들은 끝까지 진품이라고 주장한다.

천경자의 사례는 특별하다. 문제를 처음 알게 된 1991년부터 2015년 사망하기까지, 천 화백은 단 한 차례도 <미인도>가 자기 작품이라고 말한 적이 없다. 이렇게 오랜 기간 ‘위작 주장’을 펼친 작가는 한국에서 전무했다. 그래서 천 화백과 유족은 자신들의 주장이 이해관계와는 아무 관련이 없다고 항변한다.

화랑 밖 미술계 인사들에게는 ‘<미인도> 진품론’을 지지하는 편이 안전한 선택이다. 화랑이 중심이 된 미술 시장 생태계 때문이다. 익명을 요구한 미술계 관계자는 이렇게 정리했다. “<미인도>가 위작이라고 하는 사람은 전부 천경자 선생 꼴이 난다. 화랑들은 전시나 경매에서 안 다뤄줄 테고, 감정위원들은 ‘정신 나간 놈’이라며 매장시킬 테고. 평론가는 화랑 전시에 서문을 써주면 원고료로 300만~500만원을 받는다. 화랑들 눈 밖에 나면 그 수입이 고스란히 줄어든다. 교수도 자기 작품을 최대한 팔아야 되는 형편이고, 미술관 관장도 평생 하는 건 아니지 않나? 속내는 다를지라도 천 선생 편을 들기는 어려운 판이다.”

미술 시장 생태계를 개선하려는 시도가 없지는 않다. 문화체육관광부는 ‘미술품 유통에 관한 법률(미술품 유통법)’을 준비하고 있다. △국립미술품감정연구원 설립 △경매사의 자사 경매 입찰 금지 △이해관계에 있는 작품 감정 금지 △거래 이력 자체 관리 따위 조항이 들어갔다. 하지만 지난 4월27일 한국화랑협회와 한국미술품감정협회, 서울옥션과 케이옥션은 대선 후보들에게 “업계에 과도한 책임을 부과해 미술품 시장을 고사시킨다”라며 이 법안을 폐기해달라고 요청했다. 문체부는 법안을 8월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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