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오고 있다(Winter is Coming).’ 피와 섹스가 난무하는 작품을 만들기로 유명한 미국 케이블방송사 HBO가 막대한 제작비를 쏟아부은 작품 〈왕좌의 게임〉이 돌아왔다. 최근 시즌 7에 돌입했고, 국내 영화 채널 스크린(SCREEN)에서 방영하기 시작하면서 더욱 큰 관심을 모으고 있다.

중세를 배경으로 한 판타지 소설 〈얼음과 불의 노래〉가 원작인데, 드라마 제목 〈왕좌의 게임〉은 이 책 1부의 부제에 해당한다. 책이나 드라마를 보지 않았다면 엘프와 절대반지가 없는 〈반지의 제왕〉을 떠올리면 된다. 물론 다르다. 국내 판타지 작가 중 ‘본좌’로 통하는 이영도씨는 “이 책의 미국적 액션 및 속도감은 〈반지의 제왕〉의 영국적 유머 및 고색창연함과 분명히 구분된다”라고 평한 바 있다. 한마디로 〈왕좌의 게임〉이 더 잔인하고, 더 야하다.

드라마는 보통 진짜 겨울이 가고 난 직후에 왔는데, 올해는 제작 기간 때문인지 숫제 한여름에 돌아와버렸다. 제작진이 조금만 더 센스가 있었더라면 매년 겨울에 방영하도록 맞췄을 텐데, 이 작품의 배경인 ‘알려진 세계’도 이례적으로 길고 긴 ‘여름’을 겪는 중이었다. 무주택 전세 계약자인 필자의 집에는 에어컨도 없어서 자다가 횡사할 지경인데, 드라마 배경은 온통 눈밭이다.

ⓒGoogle 갈무리

원작을 독파한 후 6년째 드라마가 한 편 나올 때마다 지인들을 부여잡고 책 먼저 읽은 사람의 특권을 오남용하던 필자이지만, 시즌 6에서 이야기가 드디어 크게 움직였을 땐 전율했다. 드라마는 원작과 확연히 달랐다. 모두가 다 아는 이 드라마의 진정한 남자 주인공 존 스노우는 말 그대로 ‘죽다가 살아나’ 새로운 북부의 왕이 됐고, 진정한 여자 주인공 타르가르옌은 강철군도의 탈주남매를 만나 마침내 협해를 건넌다. 마지막 화를 장식한 바리스의 시시한 명대사에는 화가 났지만(그 장면은 책에서 볼 때 훨씬 더 전율이 인다), 세르세이의 역전 만루 홈런 앞에선 여지없이 환호가 터져나왔다. ‘와! 제작진 니들, 원작자가 인정한 또라이들 맞구나!’ 


하지만 탄핵 정국이 지나고 문득 그 장면을 다시 봤더니 모처럼 등골이 서늘했다(박사모가 뜨거운 박수를 보낼 만한 장면이다). 무엇보다 “문 잡아, 문 잡아, 문 잡아!” 장면도 압권이었다. ‘원작만 한 드라마 없다’는 말은 〈왕좌의 게임〉 앞에선 안 통한다.

섭섭할 틈도 없이 쏟아지는 캐릭터들

물론 드라마의 모든 대목이 다 좋았던 건 아니다. 재작년 시즌 5를 보다가는 ‘뿜었다’. 드래곤스톤의 강철군대가 ‘개자식’ 램지에게 탈탈 ‘털리는’ 것도 어이없는데 내가 개인적으로 검을 바쳤던 스타니스 전하는 심지어 노상에서 객사로 삶을 마감하는 게 아닌가! 목 놓아 외쳤다. “이게 과연 칠왕국의 왕에게 어울리는 죽음인가요? 이게 정말 최선입니까!”

잠깐, 그래서 역시 ‘몰살의 마틴 옹 (원작자 조지 R. R. 마틴의 별명)’, 그 맛에 〈왕좌의 게임〉 보는 거 아니냐고? 그게 아니다. 눈보라를 헤치며 (마지막 책이 출간된 지) 6년째 윈터펠로 진군하고 있기는 하지만 원작에선 쌩쌩하게 살아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책의 4부인 〈까마귀의 향연〉(드라마로는 시즌 4~6에 해당) 최고의 멋을 선사했던 도란 왕자는 원작과 달리 어처구니없는 죽음을 맞는다. 책에서는 필자의 ‘최애캐(최고로 아끼고 사랑하는 캐릭터)’인 아리안느 마르텔이 드라마에서 아예 존재조차 삭제되었다.

ⓒGoogle 갈무리7월16일 〈왕좌의 게임〉 시즌 7이 시작했다. 〈왕좌의 게임〉은 가상의 대륙을 무대로 칠왕국의 철왕좌를 차지하기 위한 음모와 암투, 전쟁을 그린다.

물론 필자가 섭섭할 틈도 없게 괜찮은 캐릭터들이 〈삼국지〉보다 많이 쏟아지는 게 이 작품의 매력이다. ‘아, 얘가 주인공인가 보다’ 싶은 인물이 여럿 죽어나가는 게, 온몸을 부들부들 떨게 만드는 이 작품의 진짜 매력이다. 인간은 반드시 죽는다. 고대 발라리어로 말하자면, ‘발라 모르굴리스’. 물론 원작은 솜씨 좋은 도살자인지라 피를 오래 빼지 않는다. 왕자와 서자, 기사와 ‘불구자’, 현자와 마구간지기, 귀부인과 ‘창녀’의 운명이 죽음 앞에 평등하다. 위대한 에다드 스타크가 죽었고, 그를 죽인 조프리가 그렇게 갔다. 잘생겼던 조젠 리드, 도망치지 않는 ‘브라보스의 제일검’ 시리오 포렐, 불세출의 전쟁왕 롭 스타크, 오베린이 그렇게 죽을 줄 또 누가 알았을까. 들것에 실려 나가는 시체의 얼굴은 어찌 그리 하나같이 정의로운지.

그러나 왜일까? 〈왕좌의 게임〉 주인공들은 실패하고 좌절하고 신체가 잘려나가고 명예를 잃고 가족을 잃고 혼자가 될수록 더 사랑스러워진다. 오른손이 잘리면 왼손으로 검을 연마하고, ‘난쟁이’로 태어나면 지식을 갈고닦으며, 세력이 약하면 음모를 꾸미고, 정략결혼을 강요당하면 방중술을 익힌다. 원했든 원치 않았든 참여하게 된 왕좌를 둘러싼 게임에서 그들 모두가 실수하고 반드시 그 대가를 치르지만 누구도 포기하지 않는다. 포기할 수 없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권력을 (그게 아무리 오랜 인내를 요구할지라도), 누군가는 사랑을 (그 상대가 설령 근친일지라도), 누군가는 명예를 (그 결과 내가 사랑하는 모든 사람이 나를 떠날지라도) 치열하게 다투며 모두가 불행해져간다. 그 와중에 시시각각 다가오는 외부의 위협이, 마침내 이번 시즌에서 본격적으로 그들 모두를 덮칠 것이다. 드라마의 주인공 격인 스타크 가문에는 겨울이 왔을 때 오직 무리 지은 늑대만이 살아남는다는 말이 전해진다.

이번 시즌은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을 벌이고 있는 우리가 미증유의 위기 앞에 ‘무리 지어 살아남을 줄 아는가’를 물을 것이다. 긴 겨울을 보낸 한국 사회가 한 번쯤 받아들 법한 시험 문제다. 그러니 올여름 이렇게 말하며 이 작품을 받아들여도 좋겠다. “난 이런 일이 너무 재미있어(The things I do for love).”

기자명 황대훈 (EBS 기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