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중순, 타이완 소녀들이 한국의 한 케이블 방송 페이스북에 몰려들었다. 그들은 아이돌 걸그룹 지망생들을 뽑는 프로그램의 공식 페이지에 단체로 “우리는 중국인이 아닙니다”라고 댓글을 남기기 시작했다.

발단은 타이완 참가자의 안티 팬들이 남긴 댓글이었다. 타이완 참가자의 자기소개 영상 게시물 아래에 “넌 실력도 부족하고 성격도 안 좋잖아! 한국 가서 뭐 하냐!”라는 내용의 중국어 댓글이 줄줄이 달렸다. 한국 시청자들은 친구들을 태그하면서 “여기 좀 봐! 이 참가자는 중국에 안티가 많나 봐!”라고 술렁였다. 이에 한국어를 알아본 타이완 누리꾼들이 참가자 비난은 잠시 뒤로한 채 ‘우리는 중국이 아닌 타이완 사람이다’라며 진지하게 반박하기 시작한 것이다.

두어 달 전에는 한국 친구들과 타이완 친구들이 언어와 문화를 교류하는 온라인 커뮤니티에 ‘한·중 교류’ 모임 홍보 글이 올라와 그룹 안이 뒤집히기도 했다. “한국 사람들 모인 곳에 북한 모임 선전하면 기분 좋겠냐” “번지수 잘못 찾아오셨다”라며 타이완 회원들이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

이런 해프닝들을 볼 때마다 중국 친구들에게 가끔 받는 ‘답정너(답은 정해져 있고 너는 대답만 하면 돼)’ 질문이 떠오른다. 그들은 한국인인 내게 ‘OX 퀴즈’를 낸다. “타이완은 독립국가인가?” 정말 뜬금없다. 밥 먹다가도 물어보고, 택시 안에서도 물어보고, 마작을 하다가도 물어보고, 거의 불심검문 수준이다. 그러면서 정색하며 나를 가르친다. “타이완은 중국이야.” 평소에는 다정했던 친구들도 이 순간만은 단호하다.

타이완 소녀들이 방송사 페이스북에 남긴 댓글.

일부 중국 친구들은 타이완이란 단어만 들으면 “타이완은 중국이다”를 자동으로 응답한다. 가령 이런 식이다. “이 타이완 과자 진짜 맛있다.” “응, 타이완은 중국이지.” “이 타이완 드라마 진짜 재밌어.” “응, 타이완도 중국이지.” “요즘 타이완과 홍콩에 업무 파트너가 생겼어.” “응, 타이완과 홍콩도 중국이지.” 생뚱맞은 대화 흐름에 처음엔 당황했으나, 이제는 대꾸하지 않고 자연스레 주제를 전환해버리는 요령이 생겼다.


타이완 친구들로부터 해당 주제에 대한 의견 표명을 요구받은 적은 한 번도 없다. 다만 해당 주제의 대화를 회피하는 타이완 사람도 본 적이 없다. 주변 타이완 10~30대 친구들은 “설명하긴 복잡하나 결론적으로 타이완은 독립국가다”라는 분위기다.

중국 친구에게 무슨 말을 해도, “타이완은 중국이지”

하지만 이러한 생각이 타이완 독립을 추구하는 차이잉원 총통에 대한 지지로 이어진다고 생각하면 오해다. 한 20대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차이잉원은 정말 바보 같아. 우리가 중국으로부터 독립을 한다니 뭔 소리야. 우리가 ‘진짜 중국’인데.” 대화를 지켜보던 홍콩 친구도 옆에서 거들었다. “어휴, 혈통으로 따지면 타이완 사람들이 진짜 중국인이지.” 내가 물었다. “중국 사람들은 너희가 차이잉원한테 물들었다고 하던데?” 타이완 친구들은 발끈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우리는 우리만의 신분증, 의료보험, 여권, 군대가 있어. 우리는 그냥 원래부터 독립국가라니까.” “이게 다 장중정(장제스 전 총통의 본명)이 져서 그런 거야….”

말없이 대화를 지켜보던 타이완 친구가 의미심장한 농담을 던지면서 대화는 끝이 났다. “그냥 휴대전화를 열고 페이스북 화면을 보여줘. 페이스북을 어색해하면 중국 사람이고, 익숙해하면 타이완 사람이야.”

기자명 허은선 (캐리어를끄는소녀 대표)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