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박종필 감독의 유작 다큐멘터리 〈버스를 타자!〉를 봤다. 영화는 수작(秀作)이었다. “버스와 지하철을 안전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평범하고 당연한 권리를 보장받기 위해 장애인들이 얼마나 처절하고 과격하게 투쟁해야 했는지를 영화는 생생하게, 그리고 감동적으로 전달하고 있었다.
영화를 보면서 몇 차례 울컥할 만큼 슬프고 안타깝고 감동적인 장면도 많았는데 마지막 자막이 올라간 뒤에 분노 같은 게 슬그머니 치밀어 올랐다. 영화가 제작된 것은 2002년. 15년 전 일인데 그때나 지금이나 별반 달라진 게 없는 것 같아서다.
물론 장애인의 이동 환경은 제법 나아졌다. 엘리베이터가 설치된 지하철 역사가 많아졌고 저상버스 운행도 잦아졌다. 오래 기다려서 그렇지 전화하면 오긴 오는 장애인 콜택시도 있다. 그때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은 것은 장애인을 대하는 관청의 태도다. 점잖게 말하면 관계 당국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책임자 면담을 요청하면 감감무소식이요, 기다리다 지쳐 찾아가면 문전박대했다.
장애인들이 극렬한 투쟁을 선포한 것은 2001년 이후부터다. 그해 지하철 오이도역에서 리프트 고장으로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추락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관계 당국의 사과와 재발 방지를 요구했지만 수개월이 지나도 돌아온 것은 “검토하겠다”라는 공무원들의 무성의한 답변뿐이었다.
결국 장애인들은 지하철 선로를 점거하기로 했다. 지하철이 다니는 선로에 길게 줄지어 주저앉은 뒤 알루미늄 사다리를 옆으로 눕혀 목에 걸었다. 강제로 끌어내는 경찰에 저항하기 위해 서로의 몸을 쇠사슬로 묶었다. 저상버스 도입을 요구할 때는 비장애인들이 장애인이 탄 휠체어를 들고 버스에 탄 뒤 쇠사슬로 버스에 몸을 묶었다. 법률에 이동권이란 조항을 넣기 위해 장애인 수백명이 기어서 마포대교를 건넜다. 노숙도 불사했다.
관계 당국은 어떻게 대처했을까?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다. 경찰이 출동해 장애인들을 무자비하게 끌고 갔고 입을 막았다. 이유는 단 하나. “불법”이란다. 이동권 투쟁에 앞장섰던 박경석 노들야학 교장은 영화에서 소리 높이 외친다. “장애인이 안전하게 다닐 수 있는 권리는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이다. 이를 지키지 않는 국가가, 관계 당국이, 그리고 정당한 권리를 요구하는 집회와 시위를 막는 경찰이 불법을 운운할 수 있나!”
비슷한 상황은 이후에도 지속되고 있다. 일상을 돌보는 활동보조인 제도를 도입하기 위해 장애인들은 한강대교를 기어서 건넜다. 활동보조인이 없어 한 장애인이 동사(凍死)하고, 또 다른 장애인이 화재로 사망하는 참사가 생긴 뒤였다. 장애인 등급제 폐지, 부양의무제 폐지, 장애인 수용시설 폐지를 요구하며 지하철 광화문역사에서 벌여온 농성은 만 5년을 넘기고 있다.
나라 살림이 어려워서 연행하는 대신 벌금을 물리나
그동안 총리실을 방문하고 장관을 만나기 위해 행사장을 찾아갔지만 돌아온 답변은 한결같다. “정상적으로 절차를 밟아 면담을 요청하고 기다리라”는 것. 그리고 겨우 만난 고위 관계자는 앵무새처럼 되풀이했다. “나라 살림이 어려우니 참고 기다려라.” 한 장애인 활동가는 “그 ‘나중에’라는 말에 진저리가 난다”라고 했다.
최근 수년간 변한 게 좀 있긴 하다. 장애인들이 무자비하게 연행되는 모습을 시민들이 지켜보면서 나쁜 정부, 나쁜 경찰이란 이미지가 만들어지자 연행 대신 수백만원에서 수천만원의 벌금을 물리는 것이다. 돈으로 장애인 인권운동 자체를 억압하겠다는 심사이니 더 고약해졌다고 할 수 있다.
어느 장애인 활동가와 영화 소감을 나누는 중에 그녀가 불쑥 물었다. “혹 빗물 반, 짜장면 반이라는 말을 들어보셨나요?” 장시간 노숙 투쟁을 하다 배가 고파 짜장면을 시켜 먹는데 비가 쏟아졌다는 것이다. “빗물 들어간 짜장면을 먹어보지 않은 이는 과격 투쟁, 불법 투쟁 이런 말 입에 올리지도 말라고 우리들끼리 말하곤 해요.”
두 가지를 꼭 말하고 싶다. 앞으로 저상버스 도입, 활동보조인 제도 도입 등을 역대 정권의 복지 업적이라고 홍보하지 말라. 그건 엄연히 쇠사슬과 빗물 젖은 짜장면으로 쟁취한 장애인 인권운동의 결실이다. 그리고 촛불 주권으로 탄생한 이 정부는 제발 다시는 장애인 활동가들에게 빗물 젖은 짜장면을 먹게 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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