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까지 서울 연남동에서 살았다. 햇수로 6년. 인심 좋은 집주인을 만났다.
6년 동안 전세 보증금을 올리지 않았다. 근처에 걸어서 통학 가능한 초등학교가 없어 다른 곳으로 이사했지만 정감 있는 동네로 기억에 남았다.

연희동의 남쪽에 있다고 해서 ‘연남동’이다. 몇 년 전만 해도 연남동을 모르는 이가 많았다. 조용한 주택가였다. 화교가 많이 살고, 덕분에 특색 있는 몇몇 중국 음식점이 있었다. 연남동 기사식당 골목에서 식사를 하는 기사들이 많았기 때문에 야간에 택시를 잡기도 쉬웠다.

ⓒ시사IN 양한모

언제부터인가 연남동 맛집을 소개하는 기사가 눈에 띄게 늘어났다. 이따금 편하게 들렀던 타이 음식점 앞에는 손님들이 줄을 지어 있었다. 점점 ‘뜨는 동네’가 되었고, 뭔가 얼떨떨했다.


‘두리반’ 싸움과 홍대 음악 신을 담은 다큐멘터리 〈파티 51〉을 연출한 정용택 감독은 이따금 마주치는 동네 주민이었다. 그의 페이스북에서 달라지는 연남동 풍경을 읽을 수 있다. 오랜만에 연남동 미용실에 갔더니 ‘미용실 개업 10년 만에 처음으로 매출이 떨어졌다’고 하소연하더란다. 유동 인구는 늘어났는데 동네 주민이 너무 빠져나가서 손님이 줄었다. 정 감독은 미용실 주인에게서 ‘연예인 ㄱ씨와 한 스포츠 스타의 아버지가 연남동 일대에 20억원대 건물이 나오면 줍고 다닌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연남동 기사식당 골목에 있던 슈퍼마켓은 늘어나는 월세를 감당하지 못해 문을 닫았다. 그 자리에 편의점이 들어섰다. 근처에 있던 태권도학원은 아이들이 줄어 폐업했다. 지하 태권도장은 음식점으로 바뀌었다. 정용택 감독은 “2007∼2008년만 해도 동네 골목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이 많았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라고 말했다. 기사식당도 거의 없어졌다. 그 정도 가격의 음식을 팔아서는 월세를 맞출 수가 없어서다. ‘기사식당 골목’이라는 이름만 남았다.

연남동에서 ‘굴다리’로 가는 골목에는 그늘에 의자 몇 개가 놓여 있었다. 여름이면 그 의자에서 동네 노인들이 더위를 식혔다. 동네에서 ‘반장 할아버지’라고 불리던 노인에게 오가며 인사를 하곤 했다. 어느 날, 우연히 들렀더니 그 의자들이 안 보였다. 반장 할아버지도 집을 팔고 이사를 갔다고 했다. 동네가 뜨니, 주민이 뜨고 어느새 ‘핫 플레이스’만 남았다. 이쯤 되니 ‘맛집 소개 프로그램’ 보는 게 불편해졌다. 저 음식점 동네는 또 어떻게 변하려나 싶어서.

기자명 차형석 기자 다른기사 보기 ch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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