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부터 장혜영씨(31·왼쪽)의 한쪽 손은 늘 동생 혜정씨(30)의 손목을 붙들고 있었다. 동생은 돌아다니고 싶었다. 언니가 다른 곳에 정신이 팔려 손힘을 뺄 때가 기회였다. 혜정씨가 손에서 벗어나면 그날 혜영씨는 집집마다 문을 두드리며 동생을 찾아야 했다. 동생 혜정씨는 중증 발달 장애인이다.

 

ⓒ시사IN 이명익

혜영씨는 어머니와 함께 동생을 돌봤다. 그녀가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더 이상의 돌봄이 불가능해졌다. 맡길 곳은 장애인 시설뿐이었다. 언니는 중학교에, 동생은 장애인 거주 시설에 들어갔다. 동생이 시설에 들어가면서 점차 멀어지기 시작했다. 혜영씨가 대학생 무렵이 되자 생일·명절·방학 때만 동생을 만났다. 그러다가 2012년, 혜정씨가 있던 장애인 시설에서 인권침해 사건이 벌어졌다. 내부고발을 통해 시설 내에서의 폭언과 징벌 성격의 격리 조치 등 실태가 드러났다. 혜영씨는 학부모 대표를 맡아 싸웠다. 하지만 학부모들의 이해관계가 얽히면서 싸움은 오래가지 못했다. 동생은 다시 시설에 머물렀다. 


혜정씨는 지난 6월, 18년 만에 시설에서 나왔다. 동생의 자립을 돕기로 한 혜영씨의 결심 때문이었다. 주변에서 힘들 거라고 모두 만류했지만 그녀의 생각은 달랐다. “필요한 도움을 적시에 줄 수 있는 사회 시스템이 있다면 장애인도 격리되지 않고 얼마든지 살아갈 수 있다. 그런 사회는 장애인뿐만 아니라 비장애인에게도 좋을 거라고 생각한다.” 동생 혜정씨에게 처음으로 자신만의 방이 생겼다. 혜정씨는 언니에게 “내 방에서 나가”라고도 말한다. 시설 밖으로 나온 뒤 “싫어”라는 말도 자주 한다. 혜영씨는 긍정적으로 받아들인다. ‘나가’라거나 ‘싫다’ 같은 간단한 거부의 말이라도 자기 의사가 명확해졌기 때문이다.

혜영씨는 온라인 펀딩 플랫폼 ‘텀블벅’에서 자신과 동생의 사정을 알리고 펀딩을 시작했다. 장애인인 동생이 시설 밖으로 나와 자립하는 과정을 영상으로 기록하는 프로젝트다. 프로젝트 이름은 혜정씨가 시설 안에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 ‘어른이 되면’이다. 인권 문제가 발생한 그 시설에서 혜정씨는 무언가를 할 때마다 “지금 말고 나중에 어른이 되면 하세요”라는 말을 자주 들었다. 펀딩 목표액이 차면 다큐멘터리를 만들어 내년 2월에 상영할 계획이다. 지금도 유튜브 채널에 ‘생각 많은 둘째 언니’라는 이름으로 동생과 자신의 이야기를 올리고 있다. 〈어른이 되면〉 프로젝트(tumblbug.com/grown_up)에는 8월15일까지 후원할 수 있다.

 

기자명 최진렬 (〈시사IN〉 교육생)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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