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과 언론-기레기 저널리즘의 시대
박성제 지음, 창비 펴냄

“진보 언론의 독자들은 굉장히 까다로워요. 맛으로 따지면 미식가들이라, 음식을 대충 내놓으면 안 되는 거죠.”

2012년 공정방송을 위한 170일 파업을 벌이다 MBC에서 해고된 박성제씨가 책을 펴냈다. 박근혜가 탄핵되고 새 정권이 창출되리라는 기대감이 꽃핀 지난봄, 그는 저널리즘의 가치를 실현해온 언론인과 전문가를 만났다. 손석희 JTBC 보도부문 사장과 김언경 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처장, 민동기 〈미디어오늘〉 편집국장 등 아홉 명이다.
이 책의 부제는 ‘기레기 저널리즘의 시대’다. 이는 비단 조·중·동이나 종편, 공영방송사에 국한되지 않는다. 〈한겨레〉 〈경향신문〉 〈오마이뉴스〉 등 이른바 진보 언론도 수용자들의 비판에 몸살을 앓고 있다. 저자는 “새로운 시대의 언론 개혁에는 중요한 과제 하나가 더해질 것이다. 그것은 언론인 스스로 엘리트 의식을 내던지고 시민과 소통하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영속패전론
시라이 사토시 지음, 정선태 외 옮김, 이숲 펴냄

“문제의 본질을 파고들어가면 언제나 ‘대미 종속’ 구조로 귀결된다.”

70년 전에 패전국이 되었지만 여전히 패배를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전승국 미국에 복종하는 일본 지배층의 모순된 이념을 예리하게 분석했다.
주목받는 젊은 사회학자인 시라이 사토시는 그들 이념의 특징을 ‘영속 패전’으로 규정하고, 국수주의에 함몰된 일본 보수층의 왜곡된 역사 인식을 치밀하게 파헤친다. 영속 패전 이데올로기의 분열증적 징후들을 통해 아베 신조 집권 이후 점점 우경화하는 일본 정치세력의 성격뿐 아니라 주변국과 벌이는 영토분쟁의 기원도 대미 종속 구조에서 찾는 이 책은 독도 문제, 위안부 문제, 역사 왜곡 문제 등 가깝지만 먼 나라 일본을 제대로 이해할 단초를 제공한다. 기존 일본 사회정치학의 틀을 깨고 신기원을 이뤘다는 평가를 받는다.



비판철학의 비판
리쩌허우 지음, 피경훈 옮김, 문학동네 펴냄

“부정의 부정, 물질에서 정신으로, 다시 정신에서 물질로.”

마르크스주의가 청소년(홍위병)들을 선동해서 최고 지도자(마오쩌둥)의 정적들을 잔혹하게 숙청하도록 부추기는 ‘추악한 수단’으로 전락했던 시대에도 거장(巨匠)의 두뇌는 활동하고 있었다.
‘중국 사상계의 덩샤오핑’으로 불리는 리쩌허우가 문화혁명 막바지인 1976년, 농촌에 ‘하방’된 신분으로 지진 대피용 임시 막사에서 완성한 〈비판철학의 비판〉이 드디어 국역되었다. 중국 철학계에서는 ‘1980년대를 열어젖힌 책’으로 불린다.
칸트 철학의 전체 체계를 역사적 유물론으로 재해석하고 보충한 이 책은 마오쩌둥주의라는 사이비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비판은 물론이고 마르크스주의 자체의 복권과 진화를 위한 사상적 투쟁의 산물이다.


한국 경제, “경로를 재탐색합니다”
김태일 지음, 코난북스 펴냄

“인센티브 구조를 바꾸는 것이 정부가 해야 할 기본 역할이다.”

경제는 꾸준히 성장하는데 먹고살기는 왜 갈수록 어려워질까. 정부가 영혼이라도 팔아서 답을 구할 만한 질문이다. 저자는 한국 민생고의 본질을 저성장, 불평등, 생활의 고비용 구조, 삶의 불안정성 등 네 가지로 요약한다. 이 네 가지 고통의 원천이 어디에서 왔고, 이를 해결하려면 정부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답하는 것이 책의 목적이다.
이론적 깊이와 가독성을 동시에 잡는 책은 드물다. 재정학자이면서 이 책의 저자인 김태일 교수는 드문 예외다. 전작 〈국가는 내 돈을 어떻게 쓰는가〉와 〈재정은 어떻게 내 삶을 바꾸는가〉로 중앙과 지방 정부의 재정 이야기를 일반인 눈높이로 풀어낸 저자는, 이번 신간에서 민생고의 본질과 한국 경제의 미래로 주제를 넓혔다.


좀비 연대기
로버트 어빈 하워드 외 지음, 정진영 엮음, 책세상 펴냄

“악마는 좀비가 아니라 그들을 불러낸 인간의 사악함 속에 있다.”

한여름이다. 좀비물을 읽을 때다. 때마침 ‘호러 소설 덕후’인 번역가가 좀비를 소재로 한 단편 12편을 엮었다. 윌리엄 시브룩의 〈마법의 섬〉을 비롯해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전반 쓰인 좀비 클래식이다. 이들 단편은 이후 문화 콘텐츠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오랫동안 문화의 변방을 비척거리던 좀비가 어느새 뱀파이어·늑대인간 같은 ‘언데드’계의 강자들을 물리치고 자리를 잡았다.
죽음을 허락받지 못한 자, 변종, 인류 종말을 가속화할 괴물…. 다양한 모습으로 변주된, 낯설지만 매혹적이고, 섬뜩하면서도 우아한 좀비를 만날 기회다. 각 편을 쪼르륵 읽다 보면, 소소한 여름휴가가 따로 없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 존재하는 좀비가 주는 원초적 공포감 덕분이다.


반지하 앨리스
신현림 지음, 민음사 펴냄

“반지하 집에서 산 10년 시집도 10년만, 잠시 숨을 돌리니 시가 쏟아졌다.”

‘왕복 전철비 이백원/ 점심 라면값 이백원/ 커피값 백원/ 대학 때 하루 생활비는 오백원이었다/ 오백원만 더 달라고 어머니께 애원한 오백원 인생/ 정신의 빈곤은 죽음이라 여긴 오백원 인생’(〈오백원 대학생〉)이라며 한탄했던 시인은 어떻게 되었을까?
‘토끼 굴에 빠져든 백 년 전의 앨리스와/ 돈에 쫓겨 반지하로 꺼져든 앨리들과 만났다/ 생의 반을 꽃피우는 이들을 만나 목련 차를 마셨다/ 서로 마음에 등불을 켰다’(〈반지하 앨리스〉)라며 여전히 가난의 굴레를 노래하고 있다.
10년 동안 자신의 시가 아니라 ‘컴필레이션 시집’을 엮으며 살았던 시인이 10년 만에 시집을 냈다. 삶은 〈세기말 블루스〉에서 그리 나아지지 못했지만, 덕분에 시는 성숙할 수 있었다.

기자명 시사IN 편집국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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