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나라는 천년 전에도 똑같았고, 지금도 똑같으며, 앞으로 천년 후에도 똑같을 거야.’ 1996년 첫 해외여행을 인도로 떠난 스물네 살의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개 두세 마리와 짝을 이뤄 태평스럽게 도로를 점거하고 있는 소들이 가득했던 당시 인도에서 이 말은 쉽게 납득이 갔다. 이 특이한 나라를 여행하는 잔재미를 위해 영원히 이 나라가 개발되지 않기를 바랐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이 나라도 변해갔다. 유선전화 하나 놓는 데 대기 시간 1년, 뇌물 200달러를 얹으면 6개월쯤 단축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어안이 벙벙했는데, 그로부터 2년쯤 지나니 모바일 폰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2000년대 초반 인도뿐만 아니라 동남아 많은 나라가 그랬다. 지지부진했던, 국가 주도의 유선전화망 설치를 포기하고 민간기업들이 모바일용 중계기를 깔기 시작하더니 정말 순식간에 전국적 모바일망이 건설됐다.

56K 모뎀 한 대에 컴퓨터 20대 물려놓던 시절이 있었는데…

그즈음 캄보디아는 인터넷 1분에 1달러라는 어마어마한 가격을 요구했다. 그게 1시간에 1달러가 되는 데 채 2년이 걸리지 않았다. 당시 인도는 56K 모뎀 한 대에 컴퓨터 20대가량을 물려놓은 인터넷 카페가 흔했다. ISDN(종합정보통신망)이 들어오는 데는 그로부터 5년이 걸렸고, XDSL(디지털 가입자 회선) 서비스는 대도시에만 제한적으로 들어왔다. 이때만 해도 인도를 여행하는 많은 한국인에게 우리나라가 세계 제일의 IT 강국이라는 자부심이 가득했다.

ⓒReuter인도는 노점에서도 페이티엠 결제가 가능했다.

물론 인터넷 속도는 지금도 한국이 가장 빠른 수준에 속한다. 인도에서 머무는 동안 내 노트북 프로그램을 업데이트하려면 다운로드를 클릭한 뒤 하룻밤 자야 하는 느려터진 상황은 여전하다.


그런데도 IT 강국을 향한 인도의 변화는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지난해 11월 군사작전을 펼치듯 이루어진 인도의 화폐개혁은 막대한 후속조치와 사회적 변화를 이끌어냈다. 그중 하나가 스마트폰을 이용한 ‘간편 결제’ 도입이다. 중국의 위챗처럼 노점상에서 과일을 살 때도, 동네 가게에서 생수 한 병을 살 때도 스마트폰으로 QR 코드를 스캔하면 결제가 끝나는, ‘현금 없는 사회’를 목표로 했다.

인도는 지난해 12월25일 크리스마스를 기점으로 100일간 간편 결제를 이용해 물건을 구입한 사람을 매일 1000명씩 추첨해 1000루피(약 1만8000원)를 주는 전국적인 행사를 가졌다. 매주 한 명을 뽑아서는 1랙, 즉 10만 루피를 줬다. 캠페인 마지막 날인 지난 4월14일에는 100일간 간편 결제를 이용한 사람 중 한 명을 뽑아 1크로, 즉 1000만 루피(약 1억8000만원)를 쏴버렸다. 인도인들로서는 100일간 매일 크고 작은 로또 발표가 이어진 셈이다. 올 2~3월 인도에 머물던 내게 인도에서 벌어지는 이 ‘대사건’들은 하나같이 놀라웠다.

갠지스 강의 성지, 바라나시 뒷골목 벵갈리 토라의 구멍가게들조차 하나씩 인도 간편 결제 시스템인 페이티엠(Paytm)에 가입했다. 이곳에 있는 찬단 씨의 구멍가게는 내 단골인데, 3월의 어느 날 나와 함께 끙끙거렸다. 환타 한 병을 페이티엠으로 결제하기 위해서였다.

찬단 씨는 이날 막 이 서비스에 가입했다. 찢어진 종이 박스에 ‘Paytm Available(페이티엠이 갖추어짐)’이라 적어놓았고, 지나가다 그걸 우연히 본 내가 결제를 시도했다.
한 5분 정도 헤맨 끝에 결제는 성공적으로 이루어졌다. 나는 나대로, 그는 그대로 감개무량해했다. 딱 21년 전, 갠지스 강을 바라보며 결코 변하지 않으리라 생각했던 이 나라의 극적인
변화가 믿기지 않았다.

기자명 환타 (여행작가·<환타지 없는 여행> 저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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