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주장이’와 ‘맥알못(맥주를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이 만났다. 류강하씨는 독일에서 7년 동안 맥주를 공부하고 ‘맥주 양조 책임자 과정’까지 졸업한 내로라하는 맥주 전문가다. 프리랜서 작가인 윤동교씨는 휴일이면 마트 맥주 코너에서 선택 장애를 겪는 맥주 문외한이었다. 둘은 지난해 의기투합했다. 라거가 뭔지, 상면발효가 뭔지 몰라도 어깨에 힘 빼고 시원한 맥주 한잔 마시듯 읽을 수 있는 맥주 책 〈언니는 맥주를 마신다〉(레드우드 펴냄, 2016)를 펴냈다. 윤씨가 글과 그림을, 류씨가 감수를 맡았다. 둘의 만남은 퍽 성공적이었다. 책은 ‘맥주 입문서’에 목말라 있던 이들에게 적잖은 호응을 얻었다. 무더위가 절정을 향해 치닫는 7월의 마지막 목요일, 서울 중림동 한 맥줏집에서 둘을 만났다.

ⓒ시사IN 조남진류강하씨(왼쪽)는 2003년 독일에서 유학하며 맥주를 공부했다. 윤동교씨는 구글 번역기를 돌려가며 맥주에 파고들었다.

두 사람이 맥주에 눈을 뜬 때는 언제인가요?

류강하:원래 IT 분야에서 일했어요. 2000년대 초반쯤 유행하던 세계맥줏집에서 프란치스카너(독일 밀 맥주)를 맛보고 감탄했어요. 이런 맛의 맥주가 존재하는구나. 그게 계기가 되어 독일 맥주에 대한 동경을 품었죠. 그러다 2003년 맥주를 공부하러 독일로 갔어요.윤동교:저는 평범한 맥주 소비자였어요. 어느 날 갑자기 마트에 맥주 종류가 늘어났는데, 아무리 봐도 모르겠더라고요. 구글 번역기를 돌려가며 파고들었어요. 공부를 하다 보니 나 같은 사람들에게 알려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책을 내기로 했죠.

여러 술 가운데 맥주만의 매력이 뭘까요?

류강하:함무라비 법전에 맥주 이야기가 처음 나와요. 4000년 전이죠. 거기에 맥주는 곡물로만 교환할 수 있다거나 잘못된 맥주를 팔면 처벌하는 법령이 있었죠. 그 뒤로 이집트로 넘어가서 맥주가 피라미드 건설 노동자를 위한 월급이 돼요.  독일 맥주 순수령을 흔히 세계 최초의 식품위생법이라고 부르는데, 핵심은 이거예요. ‘4월부터 9월까지는 2페니히, 9월부터 4월까지는 1페니히로 팔아야 한다’는 문구. 여름이라고 가격을 마구 올리면 안 된다는 거죠.

윤동교:가볍고, 낮에 마셔도 멀쩡하게 일상생활이 가능하고 간식처럼 먹을 수 있잖아요. 막걸리는 무겁고 소주는 취할 것 같고, 양주나 와인은 좀 비싸고 부담스럽죠. 문헌에 보면 우리나라도 일제강점기부터 맥주를 먹기 시작했다고 나오는데, 어쩌다 우리 맥주가 맛없다는 평가를 듣게 된 걸까요?

류강하:사실 19세기 말 개화기 때부터 무역상이나 양반은 맥주를 마셨어요. 그 이후 한때 맥주가 고급술로 취급받던 시절이 있었죠. 과거 크라운이나 동양맥주 시절 맥주는 맥아 향을 잘 살린 맥주였어요. 그런데 1970~1980년대 대중화되기 시작하면서 맥주가 2차 문화를 대표하는 술이 되었어요. 사람들이 2차 때는 맛을 음미하거나, 음식과의 조화를 크게 신경 쓰진 않거든요. 이게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같은 문제라고 보는데, 맥주 회사가 맥주를 그렇게 만들어서 사람들 입맛이 바뀐 건지, 사람들 입맛에 맞추느라 맥주가 바뀐 건지 알 수 없어요. 윤동교:‘소맥’과 ‘치맥’이라고 하지, ‘맥소’나 ‘맥치’라고 안 하잖아요. 소주를 섞거나 치킨과 같이 먹으면서 맥주가 베이스로 깔리는 거예요. 치킨 맛은 자극적인데, 향이 강하고 독특한 맛이 있는 라거 맥주랑 먹으면 맥주도 죽고 치킨도 죽잖아요. 우리나라 맥주는 치킨에 어울리면서 입안을 개운하게 해주는 특징이 있죠. 사실 외국 맥주랑 국내 맥주랑 블라인드 테스트를 해보면 뜻밖의 결과가 많이 나와요. 몇 년 전엔 OB 골든라거가 세계 맥주 품평회에서 좋은 평가를 받은 적도 있었죠. 지금은 제품 생산이 중단됐지만.한국 맥주에 대한 비판이 계속되자 맥주 대기업들이 ‘한국인은 워터리한(밍밍한) 맥주를 좋아한다’라고 변명한다는 이야기도 있었죠.

류강하:맥주는 음식이에요. 음식은 그 나라 기후, 문화와 같이 자라오거든요. 우리나라 맥주 스타일 자체가 동남아 스타일이에요. 여름에 날 더울 때, 마치 〈쇼생크 탈출〉의 한 장면처럼 일 끝난 뒤 한잔하는 것. 그게 우리 맥주 문화란 말이에요. 그러다 보니 탄산이 세고, 시원한 맛이 강조되는 맥주가 인기를 끌었죠. 또 ‘카스’를 누가 만들었죠? 진로그룹이 만들었어요. 소주 회사가 만든 맥주란 말이에요. 소맥 문화가 나올 수밖에 없는 구조죠. 롯데가 결국 소맥용 맥주 ‘피츠’를 내놓은 것 보세요. 어떤 기업이 그 나라 문화에 맞춰서 상품을 내놓겠다는데 그걸 어떻게 비난해요. 그리고 이걸 비난하는 그룹이 우리나라 맥주 소비 인구의 몇 %나 되겠어요. SNS에서 목소리 큰 사람들일 뿐이지. 실제로 맥주 소비하는 사람은 다른 취향을 가지고 있어요.

ⓒ김흥구문헌을 보면 우리나라도 19세기 개화기 때부터 무역상이나 양반이 맥주를 마셨다고 나온다.그때 맥주는 고급술로 취급받았다.
윤동교:무조건 외국 맥주를 찬양하는 사람들이 있죠. 심지어 산토리나 스텔라처럼 대중적인 외국 맥주를 비판하면서 자신이 좋아하는 맥주만 최고라는 사람들 정말 많아요. 그런 시선이 우리 맥주 문화가 나아지는 데 도움이 될까요?

필라이트(하이트진로가 출시한 발포주)에 대한 평가도 완전히 극단적으로 갈리는 것 같더군요.

윤동교:비판하는 댓글이 엄청 많더라고요. 그런데 저는 다양해지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일본에는 이미 필라이트 같은 제3맥주가 많잖아요. 사실 그걸 부러워하는 사람도 많았어요. 솔직히 제 입맛에는 별 감흥은 없었지만. 뭐, 값싸게 부담 없이 접할 수 있는 맥주가 한 가지 생겼다 정도?류강하:필라이트는 맥주가 아니에요. ‘기타 주류’에 속하죠. 맥주가 아닌데 왜 이런 맥주가 나왔느냐 비판하는 건 중요하지 않은 것 같아요. 현행법상 기타 주류가 되려면 맥아 함량이 10% 이하여야 해요. 비싼 맥아가 적게 들어가니까 값이 싸지겠죠? 더욱이 밀가루가 들어가 있어요. 미국산도 아니고 러시아산 밀가루. 가격이 떨어질 수밖에 없어요. 우리나라 주세법상 원가가 싸지니 세금도 떨어지죠. 필라이트 같은 제3맥주가 인기를 끄는 반면 크래프트 맥주(수제 맥주)도 크게 성장하는 추세입니다. 크래프트 맥주를 즐기는 분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까요?류강하:품질관리가 잘 안 되는 부분이 많아요. 맛이 들쑥날쑥하고. 그럼에도 비판은 잘 안 하죠. 저는 크래프트 맥주 심사위원으로도 활동하는데, 어떤 맥주에 상을 주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는데 다른 분들이 점수를 줘서 상을 받더군요. 이분들이 저더러 동업자 의식이 있어야 한대요. 저는 그런 식이면 발전이 없을 거라고 봐요. 윤동교:서울 압구정동 유명한 크래프트 맥주점은 갈 때마다 맥주 맛이 다르더군요. 이걸 늘 새롭다고 좋아해야 할지(웃음). 하이네켄은 전 세계 각 공장에서 그 나라의 물로 맥주를 만드는데 맛이 다 일정하다더군요. 그게 엄청난 기술이래요. 네덜란드 본사에서 대규모로 사람을 파견해서 관리하는 거라고. 벨기에 호가든과 오비맥주에서 만드는 호가든이 맛이 달라서 말이 많았잖아요. 류강하:그런데 저는 ‘오가든(오비맥주에서 만드는 호가든 맥주)’이 입맛에 맞아요. 벨기에 호가든은 좀 자극적이더라고요. 국내산 호가든을 광주광역시에서 만들어요. 그래서 전 강의에서 “호가든이 벨기에 광주시에서 만들어지는 거 아시죠?” 하고 우스갯소리도 해요.

우리나라도 ‘맥덕(맥주 마니아)’이 크게 늘어났습니다. 그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는?

윤동교:어떤 맥덕분이 저더러 좋아하는 맥주가 뭐냐고 묻더군요. ‘사무엘 아담스’ 좋아한다고 하니까 맥주 책 쓴다는 사람이 고작 그런 거 좋아하느냐는 거예요. 굉장히 충격받았어요. 자기는 IPA만 좋아한다면서, 쓴맛이 나는 맥주를 어디까지 먹어봤냐고 묻는 사람도 많았어요. 다 자기 입맛이고 취향인데, 그렇게까지 말해야 하는 걸까요?류강하:예를 들어 매운 떡볶이를 안 먹으면 떡볶이를 싫어하는 건가요? 몇 년 전부터 이태원을 중심으로 IPA, 페일에일이 유행하면서 맥덕들이 ‘필바둔(필스너·바이젠·둔켈)’을 비난하기 시작했어요. 한국은 필바둔만 만든다고. 저는 필바둔부터 제대로 만든 걸 먹어보고 이야기하라고 하고 싶어요. 그래서 전 맥덕들 만나면 맥주 이야기를 안 해요. 그냥 카스 좋아한다고 그러죠. 실제로도 좋아하고. 제가 늘 강조하는 이야기지만, 맥주는 그냥 생필품이에요.

‘좋은 맥주’란 뭘까요?

류강하:누군가에게 파는 상업 맥주는 우선 한결같아야 해요. 그리고 재료의 특질을 잘 살린 맥주죠. 맥아면 맥아, 홉이면 홉, 각기 다른 재료의 특징을 잘 살린 게 좋은 맥주예요.

윤동교:친구들이 괜찮은 맥주 좀 소개해달라고 할 때 저는 이렇게 되물어요. 너는 어떤 스타일이 좋아? 너는 보통 뭘 먹어? 어디 특출한 유명 맥주가 아니라, 내 입맛에 맞고 내가 평소에 먹기 편한 게 좋은 맥주예요. 좋은 맥주는 맥주의 종류만큼 다양하고, 모든 맥주는 존중받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녹취 도움:김남영 〈시사IN〉 교육생

기자명 이오성 기자 다른기사 보기 dodash@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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