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전날, 나르의 부모는 병든 할머니를 모시고 병원에 가야 합니다. 아버지는 나르에게 동물들을 잘 돌보라고 신신당부합니다. 다음날 아침, 나르는 아버지의 당부를 까맣게 잊어버리고 눈사람을 만들기 시작합니다. 눈사람을 만든 나르는 이제 눈사람을 장식합니다. 눈에는 양파를, 코에는 당근을, 입에는 수박 껍질을, 그리고 귀에는 감자를 착 붙입니다.

눈사람을 만드느라 지친 나르는 집에 들어가 잠이 듭니다. 마당에서는 동물들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집니다. 배가 고프다고, 목이 마르다고 울어댑니다. 피곤한 나르는 쿨쿨 잠만 잡니다. 그때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나르가 만든 눈사람이 눈을 깜빡이더니 살아 움직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제 ‘살아난 눈사람’은 어떤 일을 겪게 될까요? 나르와 동물들에게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글에 있는 이야기를 그림으로 표현한 것을 삽화라고 합니다. 그림책의 그림은 글에 없는 이야기를 그림으로 창작합니다. 이것이 바로 그림책이 예술로서 독자들에게 사랑받는 이유입니다. 그림책 작가는 문학을 바탕으로 자신의 미술 세계를 창작하는 예술가입니다.


‘나르와 눈사람’이라는 옛이야기로 어떤 작가가 그림책을 만드느냐에 따라 그림책은 천차만별입니다. 재미 삼아 만든 ‘눈사람’이 살아 움직인다고 생각해보세요. 만약 여러분이 작가라면 이 이야기에 어떤 그림을 그릴까요?

독자의 상상력 자극하는 그림

‘새해 하루 전, 나르의 부모는 할머니를 모시고 병원에 갔습니다. 아버지는 나르에게 동물들을 잘 돌보라고 당부했지요.’ 이 장면을 삽화로 그린다면 어머니는 할머니를 부축하고 아버지는 나르에게 당부의 말을 건네고 있을 것입니다. 정진호 작가는 그림책 작가이기에 글이 없는 이야기를 그림으로 창작합니다. 글이 묻는 이야기를 그림으로 그려냅니다.

작가는 아버지가 나르에게 이야기하는 모습을 왼쪽 구석에 놓고, 바로 오른쪽에는 창문 사진을 붙이고, 창문 밖에는 소와 양과 오리를 그려 넣었습니다. 오른쪽 지면에는 여물통, 우유 통, 밧줄, 삽, 양동이, 손수레 등 가축을 돌보는 데 필요한 도구들 사진을 붙여놓았습니다.


‘동물을 잘 돌보는’ 방법을 상상해서 그려 넣은 것입니다. 그렇다고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저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합니다. 도구만 제시하고 그것으로 무엇을 할지는 독자가 스스로 상상하고 즐길 수 있게 배려합니다. 정진호 작가는 아버지가 나르에게 한 ‘당부’의 궁금증을 해소시키면서 다른 한편으로 ‘도구’에 대한 더 큰 궁금증을 자아냅니다.

옛이야기에는 문학적 깊이와 매력이 충분히 담겨 있습니다. 옛이야기를 그림책으로 새롭게 만드는 일은 언제나 재미있습니다. 물론 옛이야기를 현대적인 시각으로 각색하면 더 많은 공감을 얻을 것입니다. 옛이야기를 그대로 가져온다 해도 그 이야기는 새롭게 읽힐 수밖에 없습니다. 독자인 우리가 현재를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르와 눈사람〉 역시 과거에는 ‘살아난 눈사람’을 통해 게으른 인간을 훈계하고 위대한 자연의 사랑과 지혜를 이야기하는 작품이었을 것입니다. 오늘 저는 게으른 ‘나르’가 바로 그 ‘위대한 눈사람’을 만들었다는 사실에 주목합니다.


눈을 좋아하는 아이가 눈사람을 만들고, 눈사람이 살아나서 동물들을 살리고, 동물들이 고마워서 다시 눈사람을 살리는 과정이 들어 있습니다. 누군가를 좋아하고 사랑하는 일을 고스란히 담았습니다. 그림책 〈나르와 눈사람〉이 전하는 지혜입니다.

기자명 이루리 (작가∙북극곰 편집장)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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