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 Photo5월30일 남수단에 파견된 육상 자위대의 귀환 행사에 참석한 아베 신조 총리(왼쪽)와 이나다 도모미 전 방위장관.

지난 7월28일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하자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두 차례나 카메라 앞에 섰다. 아베 총리는 “일본 안전에 대한 위협”이라고 강조한 뒤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주재했다. 하지만 2012년 12월 집권 이후 늘 먹히던 ‘북풍’이 이번에는 신통치 않았다. 고작 몇 시간 전 그의 ‘복심’이던 이나다 도모미 전 방위장관의 사임 뉴스가 더 크게 보도되었다. 그녀의 사임을 두고 아베는 언제나처럼 “각료의 임명 책임은 모두 총리인 내게 있다”라고 원론적으로 언급했다. 하지만 이 발언은 단순히 도의적 책임을 인정하는 의미만으로 받아들여질 수 없다. 그는 이나다를 중용했을 뿐만 아니라 그녀를 비호해온 책임도 컸기 때문이다(〈시사IN〉 제512호 ‘한·일 대표 여성 장관 수 싸움의 승자는?’ 기사 참조). 


‘극우파’ 이나다를 정권 실세 자리에서 내려오게 만든 결정적 계기는 유엔 평화유지활동(PKO)을 위해 남수단에 파견된 육상 자위대의 ‘일일보고 은폐 사건’이다. 자위대 남수단 파견부대는 2012년 1월11일부터 지난 5월27일까지 총 5년4개월 동안 주둔했다. 남수단에 파견된 자위대는 직접 공격을 받지 않아도 무력을 사용할 수 있는 ‘출동 경호’를 처음 부여받은 부대였다. 예를 들면 외국군이나 비정부기구 구성원 등이 무장집단의 습격을 받은 경우 자위대가 출동해 무기를 사용해 경호할 수 있었다. 출동 경호는 지난해 3월 안보법제가 제·개정되면서 가능해졌다. 이전에는 일본 함선이나 항공기 등이 공격받았을 경우 자위적 차원에서 무력 사용이 허용됐다.

일본 정부는 지난해 11월 남수단 자위대에게 ‘출동 경호’ 임무를 부여했다. 공격을 받지 않아도 무력을 사용할 수 있게 되면서 군국주의 움직임에 대한 비판이 일본 안에서 나왔다.

지난해 7월 남수단 수도 주바에서 살바 키르 대통령 지지파와 리크 마차르 부통령 지지파 간의 대규모 전투가 벌어졌다. 한 독립 언론인이 지난해 7~12월 자위대 일일보고에 대해 정보공개 청구를 했다. 파견 기간에 육상 자위대는 현지 치안 정보와 활동 내용, 대원 상황 등에 대한 일일보고를 했다. 이 기록을 보면, 현지 치안 상황과 자위대의 출동 경호 수행 가능성 등을 파악할 수 있었다. 하지만 방위성은 지난해 12월 해당 문서가 파기됐다고 밝혔다. 육상 자위대의 문서 보존 기간은 원칙적으로 3년이라서 곧장 파문이 일었다. 한 국회의원이 ‘일일보고가 전자 정보 형태로 남아 있다’고 폭로했다. 방위성은 지난 2월 “다시 찾아보니 전자문서로는 남아 있었다”라고 말을 바꾸었다. 일본 정부가 출동 경호 임무와 관련해 의도적으로 불리한 정보를 숨기려 했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방위성이 은폐하려던 일일보고의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보고서에는 연일 ‘전투’라는 단어가 등장했다. 특히 지난 7월9~12일의 일일보고에는 “주바 시내의 전투 상황”이 실시간으로 기록되어 있었다. 숙영지 주변에서 총격전이나 대전차 헬기의 대통령궁 상공 출현 등 긴박한 전투 모습도 기록되어 있었다. 방위성은 이런 사태를 ‘발포 사안’이라는 애매한 표현으로 얼버무렸지만 일일보고에는 분명히 ‘전투’로 기록되어 있었다. 그런데도 국회에서 “전투가 발생하지 않았다”는 허위 답변을 반복했다. 한 전직 육상 자위대원은 이 문제와 관련해 일본 최대 진보 매체인 〈신문 아카하타〉에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남수단에 육상 자위대를 파견한 것 자체가 무리였다. 사실상 내전 상태인 상황에서 자위대는 어떻게든 사망자를 내지 않기 위해 엄청난 스트레스에 시달려야 했다. 하지만 필사적으로 올려 보낸 위험 정보가 제대로 받아들여지지 못하고 묵살되자 결국 ‘반란’이 일어난 것이다.” 여기서 ‘반란’이란 육상 자위대 내부에서 제기된 일일보고 은폐에 대한 폭로를 말한다.

ⓒAP Photo2016년 유엔 평화유지활동(PKO)을 위해 아프리카 남수단에 도착한 일본 육상 자위대원들.

지난 7월24일 육상 자위대의 일일보고 은폐 의혹과 관련해 아베는 “(은폐) 보고를 받지 않았다”라고 답변했다. 그러나 이 발언도 곧장 거짓 답변 논란에 휩싸였다. 사퇴 기자회견에서 이나다는 “관리 책임자로서 책임을 면할 수 없겠다는 솔직한 심정으로 총리와 상담해왔다”라고 털어놓았다. 아베 총리의 책임론이 대두되는 순간이었다.


이나다가 아베의 복심으로 불린 데는 이유가 있다. 아베는 안보법제의 제·개정을 통해 미·일 군사동맹을 강화하고, 궁극적으로 일본국 헌법 제9조(평화헌법)를 바꾸려 했다. 아베는 그동안 ‘전쟁이 가능한 나라 만들기’를 노골적으로 추진한 것이다. 이 야망을 실현하는 데 핵심 인물이 일본 최대 극우 조직인 일본회의와 가교 구실을 하던 이나다였다. 아베는 매년 8월15일 야스쿠니 신사 경내에서 이루어지는 일본회의 집회에서 이나다와 교류해왔다. 모리토모 학원·가케 학원에 특혜를 준 이른바 사학 스캔들에 이어 이나다의 낙마까지 더해지며 현재 아베 정권의 지지율은 ‘마지노선’으로 불리는 30%조차 무너진 상태다. 〈마이니치신문〉의 7월22~23일 여론조사에서 아베 지지율은 26%를 기록했다. 한 달 전에 비해 10%포인트 떨어진 것이다.

‘국정 안정’ 강조하려 개각 단행해도 민심 싸늘

물론 그사이 아베가 손을 놓고 있지만은 않았다. 지난 7월23일 아베는 일본청년회의 회합에 참석해 “자민당은 정권 여당으로서 책임감을 가지고 헌법 논의를 심화시킬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8월3일에는 개헌 추진보다 ‘국정 안정’에 초점을 맞추는 인상을 심어주기 위해 개각도 단행했다.

하지만 이런 해법이 효과를 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연립 여당인 공명당의 야마구치 나쓰오 대표는 도쿄 도의원 선거 사흘 뒤인 7월5일 기자회견에서 “(개헌은) 정권이 매달려야 할 과제가 아니다. 정권의 과제는 경제 재생이다”라며 개헌과 관련해 선을 그었다. 경제단체연합회(경단련)의 사카키바라 사다유키 회장도 7월21일 기자회견에서 “개헌을 위해서는 국민의 이해와 지지를 얻는 것이 중요하다. 개헌도 중요하지만 지금은 경제 재생에 집중해주기 바란다는 것이 경제계의 생각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5월3일까지만 해도 “올해 안에 개헌 제언을 정리하겠다”라고 아베의 개헌 행보와 보조를 맞춘 바 있다.

개헌을 목표로 ‘시장 보수’와 ‘이념 보수’라는 두 마리 토끼를 좇다 수렁에 빠진 아베는 과연 난국을 타개할 수 있을까. 이와 관련해서 자민당의 도쿄 도의원 선거 참패의 원인을 분석한 도쿄 대학 사회과학연구소의 우노 시게키 교수(정치학)의 진단은 경청할 만하다. “아베 정권은 헌법 개정에만 관심이 많다. 개헌을 위해 지지율을 유지하고, 주가와 엔저도 개헌을 위해 관리한다. 저출산·고령화로 집약되는 일본 사회의 문제점이나 일본 사회의 미래 같은 것에는 관심이 없다. 그런 아베식 정치에 대한 불안감, 앞날의 불확실성 등에 대해 근본적 분노가 이번 선거에서 터져 나왔다.”

지난 7월2일 도쿄 도의원 선거에서 고이케 유리코 현 도쿄 도지사가 이끄는 도민퍼스트회가 압승했다. 아베 총리의 자민당은 기존 57석에서 23석으로 줄어들었다. 1965년, 2009년의 최저 의석(38석)을 밑도는 역사적인 참패였다. 일본에서 도쿄 도의원 선거는 민심의 잣대로 통한다.

기자명 홍상현 (〈게이자이〉 한국 특파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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