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잡화점 구옥상전이 〈황성신문〉에 낸 광고.

“可飮可飮可飮麥酒. 不飮麥酒者非開化之人.” 1903년 3월30일 충무로의 잡화점 구옥상전이 〈황성신문〉에 낸 광고 문안의 시작이 이렇다. “마시기 좋고, 좋고, 또 좋은 맥주. 맥주를 마시지 않는 사람은 개화한 사람이 아니다.” 여기에 더해 ‘대한제국 궁내부 조달, 일본제국 궁내성 조달’이라며 한국 황제와 일본 황제가 마시는 맥주임을 강조한다.

오늘날이라면 인기 높은 연예인이 한 모금 꿀꺽하고 “아, 시원해!”라며 내뱉음직한 자리에 ‘개화’라든지 ‘제국’ 같은 말이 들어앉았다. 왕조의 시대 아닌가. 정치적 위력이 연예인의 매력에 맞먹던 시대의 광고이다. 그 도입이 순한문인 점이 오히려 자연스럽고, 한 시대를 지배한 개화라는 말의 등장 또한 자연스럽다. 맥주를 마시지 않으면 개화한 사람이 아니다! 시대정신을 내세운 한마디로 광고는 이미 완결되었다.

구옥상전이 내세운 제국의 맥주, 개화의 맥주는 일본산 에비스(恵比寿, Yebisu)다. 1890년 발매된 에비스는 일찌감치 대한해협을 건너 조선에 들어왔다. 에비스는 물고기가 잘 잡히고 장사 잘되는 복을 내리는 신으로 한껏 웃는 아저씨의 모습을 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에비스는 조선에서 ‘인물표 혜비수(人物標 惠比壽)’로 불렸다. 광고는 이렇게 이어진다. “세상에 주류는 여러 백 가지가 있으나 맥주같이 몸에 해롭지 않고 도리어 효험이 많은 것이 없고, 맥주 중에 이 인물표 혜비수 맥주가 제일이며 세계 각국인이 매우 칭찬”한다고.

19세기 이래 일본인 또는 구미인이 경영하는 잡화점이란, 오늘날로 치면 해외의 상사와 거래하는 백화점 또는 사치품 매장이라고 할 수 있다. 그 가운데 구옥상전은 19세기 말부터 한국인을 향해 서양 거울, 화장품, 안경, 시계, 목도리, 장갑 등 패션 잡화를 팔던 곳이다. 먹을거리로는 조선 능금과 종이 다른 서양 능금, 곧 사과가 ‘보기에도 좋고 맛도 좋으니’ 선물용·제수용으로 제격이라는 광고를 하기도 했다. 와인, 커피, 분유, 설탕, 통조림 판매에도 열심이었다. 맥주가 빠지겠는가. 구옥상전은 에비스 맥주 단 한 품목만으로, 〈황성신문〉에 꾸준히 광고를 집행했다. 구옥상전의 에비스 광고가 불붙을 즈음 상류층 여성을 대상으로 한 부인박람회에 입장한 이들에게 일본산 맥주를 무료로 뿌리는 판촉 활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몸에 해롭지 않고 도리어 효험이 많은…”

1883년 이후 조선 정부는 중국주, 일본주, 위스키, 브랜디, 럼, 진, 와인에 이르는 해외 주류에 제대로 관세를 물리려 했다. 맥주에는 레드와인·화이트와인과 함께 10%의 관세율이 적용되었다. 영국 찰스 1세의 주세 정책, 그 이후 구미의 맥주 산업 현황과 주세 변동은 조선 관리들에게도 중요한 관심사였다. 조선 관리들은 맥주를 ‘상주(常酒)’라고 불렀다. 일상생활에서 음료 대용이 될 만한 술이라는 뜻이다. 이는 곧 대중적인 술에 세금을 매겨 세원을 확보하고, 보건의 지렛대로 활용하자는 논리로 뻗었다. 담뱃값 인상이 국민 건강 정책이라는 논리와 다르지 않다. 곁다리로 ‘품질은 벨기에 맥주가 최고’ 소리도 나왔으니, 개화를 가져다 붙인 광고 문안이 아주 허황하지는 않다.

일본은 1869년 맥주 양산에 들어갔다. 중국 맥주의 효시 하얼빈 맥주는 1900년생이다. 황금빛 몸에 하얀 거품, 입속과 목구멍을 간질이며 퍼지는 청량감을 아우른 풍미는 금세 동아시아 사람들을 사로잡았다. 조선에서도 그랬다. 단, 일본을 경유해서였다. 일본이 구미 맥주 제법을, 중국이 러시아 맥주 제법을 배워 자립한 데 견주어 조선은 일본을 통해 맥주를 익혔다. 당시 김옥균·박영효 등을 중심으로 탄생했던 개화당이 일본이라는 창으로 서양을 익히고 서양을 상상한 것과 비슷한 꼴이었다.

기자명 고영 (음식문헌 연구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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