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미안해. 앞으로 살면서 무엇 하나 이겨낼 자신이 없어. 매일 눈을 뜨는데 괴롭고 매 순간 모든 게 끝나길 바랄 뿐이야. 편히 쉬고 싶어.”

7월19일 고필주 일병(21)이 스스로 생을 마감하며 남긴 글이다. 입대한 지 4개월 만이었다. 고 일병이 남긴 휴대용 수첩에는 병장 1명과 상병 2명 등 선임으로부터 폭언과 희롱에 시달렸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선임병들의 실명과 함께 그들이 고 일병에게 한 말로 추정되는 기록도 담겼다. “훈련 중에 임무에 미숙하다는 이유로 폭언·욕설을 듣거나, 갑작스럽게 ‘개새끼’라며 욕을 먹기도 하였고, 멱살을 잡힌 적도 있었다. 훈련 중 부상으로 앞니가 빠진 상태였는데 선임병들은 이를 놀리며 ‘강냉이 하나 더 뽑히고 싶냐? 하나 더 뽑히면 부모님이 얼마나 슬퍼하겠냐?’라고 폭언을 하기도 하였다. 불침번 근무 중에는 목을 만지고 얼굴을 밀착해 쳐다보며 왜 대답을 안 하냐고 괴롭힌 적도 있었다.” 고인의 유품을 확인하던 과정에서 발견된 수첩이었다. 하지만 유족들은 수첩을 가져올 수 없었다. 군 측이 수사 자료라는 이유로 사진 촬영조차 허용하지 않았다.

고 일병은 홍익대 국어국문학과 2학년을 마치고 지난 3월20일 22사단 신병교육대에 입대했다. 4월27일 22사단 56연대로 자대 배치를 받았다. 강원도 고성군 토성리에 위치한 부대로, 3개 대대가 번갈아가며 GOP 근무를 서는 곳이다. 그가 속했던 3대대는 후방대대에서 훈련을 받다 7월 말 GOP에 투입될 예정이었다. 고필주 일병은 7월14일 부소대장에게 면담을 신청해 피해 사실을 보고했다. 면담 후 그는 GOP 투입을 비롯해, 투입 전 교육에서 배제되었다. 이 외에 다른 조치는 없었다. 면담 후에도 가해자와 분리되지 못한 채 부대에서 함께 지내야 했다. 22사단 측은 그가 면담을 신청했다는 사실을 다른 병사들은 몰랐을 거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GOP 출신 병사들의 말은 달랐다. 2015년에 제대한 22사단 출신 한 예비역은 “GOP 투입에서 제외되고, 투입 전 훈련에서 열외 조치됐다는 사실은 GOP 소대의 폐쇄적인 특성상 소대원 모두가 알게 됐을 것이다. (고 일병이) 후방대대에 주둔하고 있었더라도, 당연히 면담을 신청한 것까지 추측할 수 있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7월18일 고 일병은 ‘배려병사’로 지정됐다. 다음 날 그는 신병훈련소에서 다친 이를 진료받기 위해 성남국군수도병원을 찾았다. 치과 치료가 끝난 오후 3시30분 그는 1층으로 내려왔다가 놓고 온 것이 있다며 7층 도서관으로 올라가 투신했다. 배려병사로 지정된 고 일병의 치료에 동행한 인솔 간부는 없었다. 그는 소속 부대 동료와 함께 동료 아버지의 차를 타고 병원으로 이동했다. 군인권센터 김형남 상담지원팀장은 “특별한 보호와 관찰이 필요한 배려병사로 지정해놓고 부대 밖에 인솔 간부 하나 없이 내보낸 것은 직무를 유기한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규정이 없다’며 가해자와 분리 안 해

ⓒ조소진 교육생7월24일 서울 홍익대학교 정문 앞에서 육군 22사단 고 고필주 학우를 추모하며 학교 친구들과 교수진들이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시사IN〉은 육군본부에 서면으로 인솔 간부가 동행하지 않는 이유를 물었다. 육군 본부는 “배려병사가 군 병원 진료 시 간부가 반드시 인솔하라는 규정은 없다”라고 답변했다. ‘규정이 없다’는 육군본부의 해명은 가해자와 고 일병을 분리하지 않은 점을 묻는 답변에서도 반복되었다. 유족과 군인권센터는 고 일병의 피해 사실 보고 이후 가해자와 분리만 시켰어도 자살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육군 규정(병영생활규정 제37조 2)에 따르면, ‘고충처리 신고 시 신고자의 보호를 위해 가해자와 분리 조치하고 필요 시 신고자 보호를 위한 별도의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는 조항이 있다. 임재성 법무법인 해마루 변호사는 “피해자가 신고했는지를 가해자가 알지 못하게 해야 한다. 이번 사건에서도 고인은 분명 구제받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손을 내민 것인데, 그 손을 잡아주지 않은 것이다. 내부고발자를 드러나게 하는 것은 최악의 조치이다”라고 지적했다.

육군 측은 고 일병이 자살한 뒤에야 바쁘게 움직였다. 군인권센터가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7월21일 육군참모차장 주관 ‘현안업무 점검회의’ 이후 회의 결과를 육군 지휘관 및 참모에게 문자 메시지로 전달했다. ‘언론 매체와 SNS상 확산 소지는 없다고 판단됨’ ‘공보 대응 측면에서 문제점은 없었는지 확인하고 유가족에 대한 관리를 철저히 해야 함’ 등 고 일병 사건의 파장을 줄이기 위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다. 육군본부는 “투명한 공보 활동을 당부한 것이며 유가족이 불편함이 없도록 지원할 것과 사건에 대해 엄정하게 수사를 하고 있음과 재발 방지를 위한 육군의 노력도 알려드리라는 취지의 당부였다”라고 해명했다.

이번 사건이 일어난 22사단은 ‘참으면 윤 일병, 터지면 임 병장’으로 알려진 ‘임 병장 사건’이 벌어진 부대다. 2014년, 전역을 3개월 앞둔 임 아무개 병장이 총기를 난사해 5명이 사망하고 7명이 부상을 입었다. 지난 1월26일에는 22사단의 형 아무개 일병이 휴가 복귀 당일 자살했다. 당시 그의 눈가 6곳에 상처가 발견됐고, “미안하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라고 쓰인 유서가 발견됐다.

고 일병은 7월24일 장례를 치렀다. 화장된 고 일병의 유골은 대전 시립공원묘지에 임시 봉안되어 있다. 유가족은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 그리고 순직 처리를 바란다. 군 측은 이 사건에 대해 수사 중이다.

기자명 조소진 (〈시사IN〉 교육생)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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