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은선 제공중국 인터넷 쇼핑몰에 한국 면세점 쇼핑백 묶음이 팔리고 있다.

중국 최대 쇼핑몰 타오바오에 한국 면세점 쇼핑백 묶음이 10위안(약 1700원)도 안 되는 가격에 올라와 있었다. 아무리 한류가 대세라지만 별걸 다 판다 싶었다. 신기한 마음에 화면을 갈무리해 SNS에 올렸다. 중국 친구들은 “정말 이해를 못한 거냐”라며 나를 오히려 이상하게 여겼다. “한국에서 직접 사온 물건이라고 원산지를 속일 수 있잖아.” 진실은 알 수 없으나 ‘쇼핑백이 예뻐서 팔리나 보다’라는 막연한 추측보다는 설득력 있게 들렸다. 한 친구는 미국 화장품 브랜드의 공병을 2위안(약 340원)에 파는 타오바오 상점 화면을 갈무리해 보내주며 말했다. “순진한 한국 친구야. 이 공병이 과연 예뻐서 팔린다고 생각해?”

2015년 가을, 중국으로 어학연수를 떠나면서 내심 무서웠던 건 다름 아닌 ‘짝퉁’이었다. 특히 몸에 닿거나 들어가는 식품·의약품·화장품 등에 대한 공포를 지울 수 없었다. 가짜 달걀을 먹고 탈이 나면 어쩌나. 가짜 화장품을 바르고 두드러기라도 나면 어쩌나…. ‘나라가 크니 가짜도 많지만 진짜는 더 많겠지’라고 마인드 컨트롤을 하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중국 현지에서 나를 더 피곤하게 한 건 ‘짝퉁’이 아니라 이미 현지인들에게 일상화된 ‘짝퉁에 대한 공포’였다. 막상 외국인인 나는 아무거나 잘 사먹고 잘 바르는데, 중국 친구들은 오히려 이런 나를 걱정했다. 게다가 시도 때도 없이 본인이 갖고 있는 한국 제품을 사진으로 보내며 진품 여부를 가려달라고 하니, 내가 중국어를 배우러 온 건지 〈TV쇼 진품명품〉 감정 출장을 온 건지 헷갈리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들의 공포는 예상을 뛰어넘었다. 제품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이 제품 별로다’란 소리보다 ‘이거 가짜인가 보다’라는 말이 먼저 나왔다. 한번은 타오바오에 입점한 화웨이 공식 쇼핑몰에서 휴대전화를 하나 샀다가 중국 친구에게 크게 핀잔을 들었다. 공식 쇼핑몰에서도 가짜를 파는데 무슨 자신감으로 휴대전화를 덜컥 샀냐는 것이다. 친구에게 혼나는 사이 때마침 전화가 울렸다. ‘통화’ 버튼 누르는 법을 몰라 당황하는 나를 보며 친구는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짝퉁이라 안 눌리잖아. 환불해.” 알고 보니 우리가 작동법을 몰랐을 뿐, 휴대전화는 진품이었다. 이 친구는 얼마 전에도 위챗으로 소고기덮밥 사진을 보내며 이렇게 말했다. “진짜 맛없다. 가짜 고기 쓴 것 같아.”

이제는 중국 회사들이 역으로 카피를 당하기도

짝퉁이라고 다 같은 짝퉁이 아니었다. 중국의 짝퉁은 크게 ‘구짝퉁’과 ‘신짝퉁’으로 나뉘었다. 구짝퉁은 진품으로 둔갑한 가품, 신짝퉁은 모방으로 시작했다가 결국 진짜를 넘어서는 제품을 말한다. 구짝퉁은 중국인들에게도 골칫거리이지만 신짝퉁은 애국심을 고취시키는 요소 중 하나다. 신짝퉁의 대표적인 예 중 하나가 ‘애플 짝퉁’ 샤오미다. ‘중국판 우버’라고 불리던 디디추싱이 2016년 우버차이나를 인수한다는 소식에 깜짝 놀라는 내게 친구가 해준 말이 있다. “양쯔강의 악어가 바다에서 싸우면 지지만 강에서 싸우면 이기지.”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인 알리바바 마윈 회장이 10여 년 전 이베이에 던진 말을 인용한 것이다. 실제로 이베이는 중국 진출에 실패했다.

중국 신짝퉁은 더 이상 모조품이 아니다. ‘중국산 짝퉁’을 의미하는 ‘산자이(shanzhai)가 영어 신조어로 등장했을 정도다. 이제는 중국 회사들이 역으로 카피를 당한다. ‘역-산자이(reverse shanzhai)’다. 미국의 라임바이크는 중국의 자전거 공유 업체인 오포(Ofo)를, 애플은 중국 인터넷 회사인 텐센트를 벤치마킹하고 있다. 한국 기업들에게 신짝퉁과의 전쟁이 만만치 않으리라 보인다.

기자명 허은선 (캐리어를끄는소녀 대표)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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