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신선영

8월1일 부산경남 렛츠런파크(이하 경마공원)에서 일하던 마필관리사 이현준씨(36)가 차량에서 번개탄과 함께 숨진 채 발견됐다. 지난 5월27일 같은 곳에서 일하던 마필관리사 박경근씨(39)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채 발견된 지 두 달여 만이다. 2011년에도 이곳에서 마필관리사로 일하던 박용석씨(당시 35세)가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마사회가 운영하는 경마공원은 서울(과천), 부산경남, 제주 등 3곳이다. 2004년 부산경남 경마공원이 출범한 뒤 이곳에서만 마필관리사 3명이 목숨을 끊었다. 부산경남 경마공원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시사IN 이정현


마필관리사란 어린 말을 경주마로 만드는 사람이다. 훈련뿐 아니라 말이 생활하는 마방을 청소하고, 말을 먹이고 씻기며, 건강 상태를 확인하고 말발굽을 관리하는 등 경주에 나가기까지 말을 돌보고 훈련하는 모든 일이 마필관리사의 몫이다.

박경근씨는 2004년 부산경남 경마공원에 입사한 14년차 마필관리사였다. 대학에서 물리치료사 자격증과 스포츠마사지사 자격증을 취득한 경험을 바탕으로 말들의 근육을 풀어주며 ‘국내 1호 말 마사지사’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숨은 명인’ ‘이색 직업’으로 텔레비전 방송에도 수차례 나왔다. 텔레비전 방송 속 박씨는 컨디션이 좋지 않던 말을 마사지해 우승하게 만든 경험을 자랑스레 이야기했다.

그런 그가 5월27일 새벽 자신이 일하던 마구간에서 목을 매어 숨진 채 발견되었다. 흰 천 위에 누워 있는 아들을 어머니 주춘옥씨(59)가 보듬었을 때는 이미 싸늘하게 식어 있었다. 그에게는 아내와 열 살배기 쌍둥이 아들이 있다. 동료와 유가족에 따르면 전날인 5월26일 경마 경주에서 박씨가 관리하던 말이 앞발을 드는 사고가 일어났다. 그 일로 조교사에게 심한 욕설을 들었다고 아내에게 말했다. 조교사는 마필관리사의 ‘사장님’이다. 박경근씨가 남긴 유서는 세 줄. ‘X같은 마사회’라는 문구 외에는 알아볼 수 없었다. 박씨는 2008년 노동조합에 가입했고 2012년부터 5년간 노조 대의원으로 활동하며 마필관리사 처우 개선에 목소리를 냈다. 숨진 채 발견되기 열흘 전에는 은수미 전 국회의원에게 상담을 요청하기도 했다.

8월9일 만난 박씨의 어머니 주춘옥씨는 가슴을 치며 말했다. “우리 아들은 항상 ‘썩어빠진 마사회’라고 했어요. 우리 아들이 힘들어서 그만둔다는 소리를 몇 번을 했어요. 그래도 마사회라고 하면 최고의 공기업인데 그만두지 말라고, 쉰 살까지만 일하라고 내가 주저앉혔어요. 나는 우리 아들이 한국마사회 직원인 줄 알았지 비정규직인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이럴 줄 알았으면 ‘쌩빚’을 내서라도 내 아들 그만두게 했을 거예요.”

경마를 시행하는 한국마사회가 단일 마주(말의 주인)였던 1980년대까지 마필관리사는 마사회에 직접 고용된 직원이었다. 1993년 마사회가 대규모 경마 부정을 계기로 개인 마주제를 시행하면서 마주·조교사·기수·마필관리사 모두 마사회 소속이 아니게 되었다. 마주가 개인사업자인 조교사에게 말 관리를 위탁하면, 조교사가 마필관리사를 고용한다. 마필관리사는 마사회가 아닌 조교사와 고용계약을 맺는 것이다.

그나마 서울 경마공원의 마필관리사들은 조교사‘협회’에 고용되어 있다. 한국노총 전국경마장마필관리사노조가 조교사협회와 단체협약을 체결해 노동조건을 정한다. 2004년 출범한 부산경남 경마공원은 다르다. ‘선진 경마 시스템’을 도입한다는 명목으로 마필관리사 270명이 개인사업자인 조교사 33명에게 일대일로 개별 고용되도록 했다. 마필관리사들의 노동조합은 있지만 부산경남의 경우 조교사협회가 아닌, 조교사 개인이 고용주라 집단 교섭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마사회는 최근 부산경남의 시스템을 제주 경마공원에도 도입하려 한다(41쪽 상자 기사 참조).

조교사와 맺는 개별 계약이기에 임금도 ‘조교사 마음대로’다. 서울의 경우 마사회가 경주 성적에 따라 마필관리사들에게 지급하는 순위상금의 비율이 정해져 있다(2017년 기준 마주 77.83%, 조교사 8.56%, 기수 5.18%, 마필관리사 8.43%). 반면 부산경남은 조교사에게 지급하는 상금 비율만 정해져 있다(2017년 기준 마주 79.30%, 조교사 16.26%, 기수 4.44%). 〈시사IN〉이 입수한 한 마필관리사의 근로계약서를 보면, ‘성과급은 갑의 경영성과에 따라 지급하되, 지급시기, 횟수 등은 갑이 정하는 바에 따른다’고 되어 있다.

조교사 1인 ‘사장님’에게 개별 고용되는 데다 성과급 지급 비율이 고정되어 있지 않다 보니, 부산경남의 마필관리사들은 고용안정과 임금체계, 노동시간 모두에서 극도로 취약한 조건에 놓인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부산경남 경마공원노조에 따르면, 이들은 주중 화요일 하루를 쉰다. 월요일은 오전 근무만 하지만 수요일·목요일·토요일은 오전 5시에서 오후 3시까지, 경마일(금·일요일)은 오전 5시에서 오후 6~7시까지, 야간 경마가 있는 날은 밤 10시 넘어서까지 근무한다. 이렇게 근무할 때 기본급(2016년 기준 월 126만270원, 2016년 최저임금에 월 소정근로시간 209시간을 곱한 금액)과 여러 수당을 합쳐 월 190만원을 받는다. 나머지는 상금이다.

경주 성적에 따라 월급뿐 아니라 일자리도 좌지우지된다. 1년에 한 번 경주 성적을 평가해 성적이 안 좋은 조는 ‘마방을 뺀다(관리하는 말의 수가 줄어든다는 뜻)’. 〈시사IN〉이 확인한 마필관리사 근로계약서에도 “갑이 관리 중인 경주마 두수가 급격히 감소되어 인원 감축이 불가피할 때” 계약 기간 중이라도 근로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고 되어 있다. 조교사가 비위 등으로 말 관리 계약이 끊겨도 재고용되기까지 임금 등 대책이 없다.

8월9일 찾은 부산경남 경마공원 2조는 말 18마리를 관리하고 있었다. 한때 40마리 넘게 관리했던 조다. 마방 24개가 있는 건물 한가운데 2011년 2조가 대상경주(성적이 좋은 말들만 모아 치르는 경주)에서 우승했을 때 찍은 사진을 걸어놓은 액자에는 거미줄이 쳐져 있었다. 14년차 마필관리사 고광용 공공운수노조 부산경남 경마공원 노조 조직국장은 “여기는 무한경쟁 체제다. 옆에서 망하면 내가 웃는다. 마사회는 필요할 땐 ‘가장 땀 흘리는 게 마필관리사’라고 말하면서 사람 죽으니 자기네랑 관련 없다고 한다. 우리는 비정규직에도 못 낀다”라고 말했다.

산업재해도 고용 불안 때문에 은폐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관리사들이 말을 훈련시키는 주로(走路) 앞뒤로 앰뷸런스가 대기하고 있었다. 한 7년차 마필관리사는 다쳐도 뼈가 부러지지 않는 이상 앰뷸런스 타고 다시 마방으로 간다고 했다. “마사회에서 마방을 빌려주는데 산재나 월급 등 문제가 생기면 점수를 낮게 줘서 마방을 빼게 한다. 그럼 사람이 필요 없어지니 웬만한 건 자기 돈으로 처리한다. 마사회가 모르는 산재가 엄청나게 많다. 아니, 마사회도 다 알면서 모른 체한다.”

한정된 금액을 나눠주는 구조이다 보니 조교사들은 마필관리사 인력을 충분히 충원하지 않는다. 마필관리사 1인당 3마리가 적정 관리 인원이지만 부산경남의 경우 한 사람이 4.5~5마리를 관리한다. 8월1일 숨진 이현준씨가 속한 조 역시 6명이 27마리를 돌봤다. 이씨는 6개월 병가를 낸 팀장을 대신해 팀장 구실까지 해야 했다. 이현준씨의 아버지 이복근씨(62)는 “마방에서 당직을 서느라 일주일에 사흘 들어오면 자주 들어오는 편이었다. 집에 와서도 컴퓨터로 뭘 두드리고 말 혈통이 빽빽이 적힌 A4 용지를 들고 왔다. 그러고 새벽에 바로 튀어나갔다”라고 말했다.

이현준씨는 박경근씨 사망 이후 진행돼온 노사 교섭이 결렬된 7월30일, 아직 장례를 치르지 못한 박경근씨 빈소 당직을 섰다. 이틀 뒤 자신의 차량 안에서 번개탄을 피웠다.

ⓒ시사IN 신선영
ⓒ시사IN 신선영8월11일 현재 박경근·이현준 두 마필관리사의 장례는 치러지지 않았다.
박씨와 이씨의 빈소(아래·위)는 경남 김해의 한 장례식장에 나란히 자리해 있다.

지난 5월 박경근씨 사망 이후 실시된 노동부 근로감독에서 부산경남 경마공원의 근로기준법 등 법 위반 270건이 적발되었다. 마사회와 부산경남 경마공원 노조가 속한 공공운수노조 사이에 재개된 교섭은 8월11일 오후 현재까지 타결되지 않았다. 8월11일 현재 박경근·이현준 두 마필관리사의 시신은 냉동고에 있다. 유가족과 노조는 이들의 명예회복과 마필관리사 처우 개선을 약속받아야 장례를 치를 수 있다는 입장이다.


국민을 대상으로 사행성 산업을 해 거액을 벌어들이는 마사회가 공기업으로서 책임 의식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2011년 숨진 박용석씨는 유서에 썼다. ‘왜! 보고만 계십니까. 다 시행체(마사회)는 알고 있으면서. (…) 이 자그만 목숨 하나하나 바치다 보면 조금씩 나아지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그의 죽음 뒤에도 상황은 개선되지 않았다.

“다단계 착취 구조 정점에 있는 마사회”

박경근씨가 숨진 채 발견된 지 이틀 만인 5월29일 마사회는 “마필관리사 고용 방식은 정규직·비정규직의 문제가 아닌 경마 고유의 특성이 반영된 전 세계적인 공통된 고용체계”라며 적극적으로 대응했다. 마사회는 “평균 연봉이 높은 편이며 간접고용에 해당하지 않는다”라고도 말했다.

박경근씨 자살로 시작된 교섭이 결렬된 이틀 뒤인 8월1일 이현준씨가 연이어 사망하자 마사회는 향후 재발 방지 대책을 논의하겠다며 한발 물러섰다. 마사회의 연매출은 7조7000억원 수준. 비정규직 비율은 2017년 기준 81.9%에 달한다. 정부가 상시·지속 업무에 종사하는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 드라이브를 걸고 있지만, 마필관리사들은 마사회의 비정규직 통계 자체에도 잡히지 않는다. 고용노동부 공공기관 노사관계과 관계자는 “개인사업자인 조교사에 고용돼 있어 원칙상 공공부문 정규직화 가이드라인 대상에 해당하지는 않지만, 사회적 문제가 된 만큼 전략기관으로 선정해 중앙 컨설팅팀 전문가들에게 논의를 부탁한 상태다”라고 말했다. 조현주 공공운수노조 법률원 변호사는 “전형적인 간접고용 형태는 아니지만 마사회가 마필관리사 채용과 임금에 가진 권한이 상당하다. 마사회가 마필관리사 적합성을 판단하고 사후에 부적합자를 조치한다. 관리사에게 지급할 상금 비율을 정하는 것도 마사회다. 마필관리사들의 근로로 수익을 가장 많이 얻는다는 점에서 마사회가 다단계 착취 구조 정점에 있다. 기본급 비중을 높이고 개별 고용 구조를 개선하는 등 해결책을 찾을 필요가 있다.”라고 지적했다. 공공운수노조와 한국마사회, 조교사는 8월16일 직접고용 구조개선 협의체 구성과 고용안정, 노조활동 보장, 명예회복 및 유족보상 등에 대해 합의했다. 두 마필관리사의 장례는 전국민주노동자 장으로 8월19일 거행된다.

취재 도움·최진렬 〈시사IN〉 교육생

 

기자명 전혜원 기자 다른기사 보기 won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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