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미술관 한 곳 가본 적 없어도 서방 국가를 여행하게 되면 무슨 무슨 그림이 걸려 있다는 미술관을 루트에 넣어보게 된다. 한국인들의 짤막한 휴가에 꼭 맞춘 패키지 상품에도 르네상스며 바로크가 느껴지는 루브르, 프라도 같은 곳이 단단히 자리하고 있다. 서구 문화의 유산이 한가득 소장된 그 웅장한 공간에서도 우리는 ‘하이라이트’ 꼬리표를 따라 먼발치에서 까치발로 그 유명한 그림들과 스치듯 ‘안녕’ 한다.

이번 여름에도 짤막한 방학이며 휴가를 이용해 이국의 미술관을 한붓그리기하고 다녀온 사람들을 위한 애프터서비스를 추천한다. 복습이 중요하다지 않던가. 유수의 저술과 강연을 통해 독자들을 만나온 미술사가 이연식이 미술을 좋아하고픈 당신을 위해 스키마를 쫀쫀하게 짜주었다. 눈썹 없는 여인의 초상에서 시작하는 미술사는 미디어에서 쉽게 접했던 바로크며 인상주의의 친숙한 그림들로 이어진다. 이내 현대미술의 첨단까지 흘러갔다가 생전 볼 일 없는 동굴 벽화 이야기로 돌아가도 집중할 수 있는 내공을 보여준다.

미술은 찰나의 인상에서 시작하기에 작품을 안다고 주워섬기기 쉽다. 웅장한 스케일로 전쟁터를 담아낸 바로크 화가의 수년에 걸친 노력이 무색하게도, 감상하는 건 문자 그대로 순식간이니까. 지휘자의 손이 내려가거나 엔딩크레디트가 올라가는 것을 기다리지 않아도 저마다의 호흡에 맞추면 된다.

하지만 파고들자면 얼마든지 깊어지는 것이 또 미술이다. 캔버스에 들어찬 사물과 인물들에서 시대상을 엿볼 수 있고, 그 색감이며 붓 터치에서는 당시 예술가들의 미학적 조류를 가늠할 수 있다. 한 폭의 이미지에, 한 아름의 오브제에 깃든 기의들 틈에서 역사며 미학이며 철학을 읽어보자. 괜히 미술사를 두고 인문학의 꽃이라던가. 공부하기 좋아하는 한국인들이 부득불 미술관에 가는 이유가 바로 이것 아닐까.

〈이연식의 서양 미술사 산책〉
이연식 지음, 은행나무 펴냄


기자명 윤이든 (은행나무 인문교양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