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베이터 문이 닫힌 뒤 그가 말한다. 허공으로 한숨 한번 뱉어낸 뒤 그가 말한다. 조금 전까지 취재 대상에게 점잖게 질문하던 ‘언론인 최승호’가 그 순간, 만감이 교차하는 ‘해직자 최승호’로 돌아온다.
그를 일터에서 쫓아낸 자들은 정말 잘들 살고 있었다. 누구는 부사장으로, 누구는 사장으로, 저마다 한자리씩 꿰차고 잘들 살고 있었다. 잘들 사는 그들에게 물어볼 것이 많았지만 그들은 하나같이 잘 들으려 하지 않았다. 어쩌면 그들은, 잘 들어야 할 이야기를 잘 들으려 하지 않은 바로 그 노력 덕분에 지금처럼 잘들 살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잘들 산다, 잘들 살아. 엘리베이터 안 허공을 먼지처럼 떠다니는 착잡한 혼잣말이 영화 〈공범자들〉의 시작이다. 이명박 정권에서 시작된 언론 장악 프로젝트 9년의 기록이 이어진다. 권력의 공영방송 ‘점령’(1부)에 맞서 노조의 ‘반격’(2부)이 시작되었지만 결국 패배한 뒤 점차 ‘기레기’(3부)로 전락해가는 언론의 민낯을, 세 개의 장으로 나누어 성실하게 담았다.
하지만 〈공범자들〉에는 내가 모르는 이야기가 한가득이다. 어렴풋이 짐작만 했을 뿐 제대로 간파하지 못했던 사실이 수두룩하다. 언론을 망가뜨리고 나아가 나라를 망가뜨린 ‘공범자들’의 후안무치를 글로 아는 것과 눈으로 보는 건 확실히 달랐다. 샛길과 쪽문으로 도망친 그들을 끝까지 쫓아가 집요하게 질문을 던지는 최승호 PD의 인터뷰 활극을, 짧은 ‘영상’이 아니라 긴 ‘영화’의 빅 피처 안에서 만나는 기분은 완전히 달랐다.
잘들 산다, 잘들 살아. 최승호 PD의 혼잣말로 시작한 영화가 마침내, 전혀 잘 살고 있지 못한 한 사람을 카메라 앞에 불러내는 순간. 나는 결국 눈물을 쏟기 시작했다. 영화가 끝날 때까지 그대로 계속 흐느꼈다. 해직 기자 이용마. 직장 잃고 암을 얻은 전직 MBC 기자. 그의 수척한 얼굴이 그가 싸워온 9년의 시간을 말해주고 있었다. 그의 깡마른 육신이 그 오랜 싸움의 힘겨움을 증명하고 있었다.
응원할 거면 입장권을 사자
2012년의 어느 날, 당시 MBC FM 〈이주연의 영화음악〉 작가로 일하던 나는 나름의 방식으로 그들을 응원하며 이런 대본을 썼다. ‘공영방송 MBC의 정상화와 김재철 사장 퇴진을 위한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의 총파업’ 38일째 되는 날이었다.
“알래스카 추운 바다에 고래 세 마리가 갇혀 있습니다. 당장 누가 도와주지 않으면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 선뜻 도움의 손길을 내밀지 않고 망설이는 사람들을 환경운동가 레이철은 이런 말로 설득하죠. ‘그들은 우리와 똑같이 두려움을 느끼고 나약하고 또, 도움이 필요한 존재입니다. 그들이 약하기 때문에 돕는 게 아닙니다. 우리가 약하기 때문에 그들을 돕는 것입니다.’
지금 손을 내밀어야 하는 이유는 그들이 약하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약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언제든 그들처럼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영화 〈빅 미라클〉이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9년 동안 얼음에 갇힌 고래들. 마지막 힘을 그러모아 지금, 힘껏 몸부림치는 MBC와 KBS. 그들이 약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약하므로 다시 손을 내밀어야 한다. 그 손으로 먼저 〈공범자들〉 입장권부터 사야 한다. 보면 아니까. 보면 모를 수 없으니까. 왜 싸우는지, 그리고 왜 이겨야 하는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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