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에노 지즈코 지음
나일등 옮김
마음산책 펴냄
그런 밤이 있다. 종일 지쳐 터벅터벅 집에 도착했을 때, 맥주 캔이 담긴 비닐봉지를 흔들며 도착한 그곳에 고요함이 가득한 순간. 

그때 맞닥뜨리는 침묵이 종일 빨아들인 소음을 씻어 내린다. 영화나 드라마의 클리셰는 이 장면을 공허하고 외로운 모습으로 그리지만, 사실 하루 중 이때를 가장 편안하고 안락하게 여기는 사람들도 있다. 혼자 사는 삶을 향한 갖은 오해와 편견에도 불구하고, ‘그런 밤’은 오롯이 자립을 돕는다. 1인 가구의 증가는 단순히 ‘인구 절벽의 비극’만으로 해석할 일이 아니다.

먼저 살아본 선배의 조언이 도움이 되곤 한다. 우에노 지즈코는 이 책에서 ‘혼자 살기’에 대해 다정한 격려를 전한다. 사실 우에노 지즈코가 이런 글을 썼다는 게 조금은 믿기지 않았다. 비교적 한국에 잘 알려진 일본 학자이자, 늘 강직하고 단단한 논리로 젠더와 사회와 삶을 얘기하는 지식인 아니었던가. 그녀가 어머니의 죽음과 어머니가 남긴 제비꽃 향수를, 일본 과자 모나카를, 욕조에서 목욕하는 시간을 조곤조곤 풀어내는 모습은 무척 낯설면서도 신선하다. 〈경계에서 말한다〉 〈여성혐오를 혐오한다〉처럼 ‘생각을 파는’ 글쓰기로 유명했지만, 이 책에서는 지식 대신 생활을, 생각 대신 ‘느낌’을 판다. 일흔 가까운 여성 지식인이 생활에서 체득한 ‘홀로 잘 사는 법’은 사사롭지만, 때로는 길 잃기 쉬운 혼자 살기를 응원한다.

기승전결이 뚜렷하고 감정표현이 센 에세이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조금은 싱겁고 무던한 책일 수도 있다. 가족과 부모에 대해, 취향에 대해, 혼자 늙어감에 대해 저자가 풀어내는 담담한 어조는 오히려 생각할 거리를 전해준다. 이 책의 일본어 원제는 ‘싱글의 오후에’다. 생의 ‘오후’에 다다라 어느덧 ‘명예교수’ 직함을 단 대선배의 글이지만, 절제된 문장에서 오히려 에너지가 넘친다. 어느 젊은이가 풀어놓은 글보다 더 ‘킨포크 스타일’에 어울리는 책이다. 홀로 괜찮게 늙는다는 것이 무엇일지 궁금할 때, 이 책을 펼쳐보자.

기자명 김동인 기자 다른기사 보기 astori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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