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ck 3d gpu
바로가기
왼쪽 메뉴로 이동
본문으로 이동

박성진 후보자의 창조과학 논란을 읽는 방법

2017년 08월 31일(목) 제520호
천관율 기자 yul@sisain.co.kr
공유하기

구글+구글+ 카카오톡카카오톡 카스카스 라인라인 밴드밴드 네이버블로그블로그 URL복사URL복사

URL 복사

아래의 URL을 길게 누르면 복사하실수 있습니다.

-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에 박성진 포항공대 교수가 지명되었다. 박 후보자가 한국창조과학회 이사를 역임한 창조과학 신봉자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논란이 가속화하고 있다.

8월24일 청와대는 마지막 공석이던 중소벤처기업부(중기부) 장관 후보자를 지명했다. 1968년생의 젊은 기계공학자로, 대학에서 창업 지원과 산학 협력 경험이 풍부한 박성진 포항공대 교수였다. 문재인 대통령이 의욕을 갖고 신설한 중기부에 나무랄 데 없는 경력으로 보였다.

ⓒ연합뉴스
박성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

논란은 엉뚱한 곳에서 터졌다. 박 후보자가 한국창조과학회 이사를 역임한 창조과학 신봉자라는 사실이 발표 당일 확인됐다. 한국창조과학회는 성경에 기반한 창조과학을 연구하는 학회다. 지질학, 진화론, 천문학 등 과학계의 축적된 연구 결과를 부정한다. 한국창조과학회 홈페이지 자료실을 둘러보면 다음과 같은 비과학적 주장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세계에는 성경이 가르치는 것처럼 지구 나이가 단지 1만 년 이내임을 믿는 수천명의 석박사 과학자들이 있다.” “나는 거의 어려움 없이 진화론적 자연주의를 거부하는 3000여 명의 학자 명단을 모을 수 있었다.” “우리는 물리적으로 관측되는 은하들의 가장 큰 초거대 구조의 중심에, 그리고 아마도 영적으로 하나님이 관심을 기울이시는 중심에 있다.” 

과학계는 창조과학을 유사과학으로 간주한다. 유사과학 신봉자가 국무회의 위원이 된다는 소식에 과학계는 들썩거렸다. 논란이 일자 청와대는 “개인의 종교관은 공직 검증 대상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양심과 종교의 자유는 헌법이 보장한 권한이다. 종교관을 이유로 공직자 자격을 판단할 수 없다는 말은 반론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이 해명이 과학자들의 분노에 기름을 부은 꼴이 되었다.

ⓒ한국창조과학회 홈페이지 갈무리
한국창조과학회 홈페이지에는 박성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가 쓴 글이 남아 있다.

과학자들이 문제 삼은 것은 박 후보자의 종교관이 아니라, 그가 창조과학이라는 이름으로 보여주는 반(反)과학이었다. 양자물리학자인 김상욱 교수(부산대 물리교육과)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렇게 썼다. “창조과학은 종교의 문제가 아니라 과학의 문제다. 우리는 박성진 교수가 ‘신에 의한 세상의 창조’를 ‘믿어서’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아니다. 그가 ‘신에 의한 세상의 창조’를 ‘과학’이라고 주장하기 때문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다.” 둘은 어떻게 다른가. 종교의 자유는 개인의 고유한 권리다. 이것은 개인의 양심을 수호하는 문제다. 하지만 특정 종교의 세계관에 ‘과학’ 이름을 붙이려는 시도는 의미가 다르다. 

과학은 특정한 지식 무더기라기보다는, ‘우리는 어떻게 사실·지식·진리를 확인하는가’라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인류가 찾아낸 방법론에 더 가깝다고 과학자들은 설명한다. 창조과학은 이 과학이라는 방법론을 특정 종교의 세계관으로 대체하려는 시도다. 창조과학은 특정한 과학적 지식에 대한 부정이 아니라 과학이라는 지적 문제해결 방법에 대한 부정이다. 과학자들은 이를 반(反)지성주의로 간주한다. 김 교수는 이렇게 쓴다. “신이 세상을 창조했다거나 생명이 윤회한다거나 세상이 거북이 등 위에 있다고 믿는 것은 자유다. 하지만 ‘신에 의한 세상의 창조’가 ‘과학적으로 옳은 것’이라면 이와 다른 과학은 틀린 과학, 사이비 과학이 된다.”

그러니 문제는 박 후보자의 창조과학 활동이 ‘방어적인 종교활동’과 ‘공격적인 방법론 대체 운동’ 중 어느 쪽이었느냐다. 청와대는 전자라고 강조한다. 박 후보자의 전공인 기계공학이나 스타트업 지원 활동에서는 종교적 편향성이 드러나지 않으며, 창조과학회 활동은 순전히 사적인 종교 활동 차원이었다는 설명이다.

창조과학이라는 이름으로 보여주는 반(反)과학

이에 대한 가장 강력한 반론은 박 후보자 본인이 내놓았다. 2007년 한국창조과학회 학술대회에서 박성진 교수의 강연 내용을, 한국창조과학회는 이렇게 요약하고 있다(아래 사진 참조). “오늘날 자연과학뿐만 아니라 모든 분야가 진화론의 노예가 되었다. 이 사회에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서는 교육, 연구, 언론, 법률, 기업, 행정, 정치 등 모든 분야에 성경적 창조론으로 무장된 사람들의 배치가 필요하다.” 어떤 의미로도 ‘방어적’이라고 보기는 어려운 발언이다.

ⓒ한국창조과학회 홈페이지 갈무리
2007년 한국창조과학회 학술대회에서 박성진 교수는 “이 사회에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서는 성경적 창조론으로 무장된 사람들의 배치가 필요하다”라고 발언했다.

이 대목에서, 신의 창조를 믿는 것과 창조과학을 하는 것의 차이도 근본적으로 드러난다. 신의 창조를 믿는 것은 개인의 믿음 영역이다. 하지만 창조과학을 한다는 것은 공격적인 세계관 대체 시도에 더 가깝다. 과학계는 박 후보자가 ‘창조과학 신봉자’여서 문제를 제기하는데, 청와대는 그가 ‘창조론자’인 것은 종교의 자유라고 답한 셈이다. 이 동문서답이 과학자들을 분노하게 만들었다.

논란거리는 남는다. 박 후보자가 장관 후보로 지명된 중기부는 과학기술 주무부처는 분명 아니고, 주요 유관부처라고 보기도 어렵다. 주 업무는 중소기업 지원과 창업 생태계 조성이다. 과학정책 관련 의사결정은 거의 다루지 않는다. 사실상 과학과 무관한 부처의 인사에 과학자들이 발언하는 것이 적절할까? 박기영 과학기술혁신본부장 임명 반대 서명을 주도했던 ‘변화를 꿈꾸는 과학기술인 네트워크(ESC)’ 내부에서도 의견이 엇갈렸다. ESC는 단체 차원의 공식 견해는 표명하지 않기로 했다.

이에 반대하는 소수 의견도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공학자는 ‘불관용에 대한 불관용 원칙’을 강조했다. 그는 “창조과학이 논의 가능한 대상으로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신호를 줘서는 곤란하다”라고 말했다. 창조과학이 과학에 대한 불관용적 대체 시도인 이상, 이런 태도가 용인되는 것처럼 보여서는 안 된다는 의미다.

박성진 후보자 지명은 여러 차원에서 한국 사회에 미묘한 질문을 던졌다. 창조과학 신봉자는 고위 공직에 임명되는 데 결격사유인가 아닌가? 그 자리가 과학기술 정책과 사실상 무관할 경우에는 어떤가? 인사 검증은 창조과학 신봉과 같은 신념의 문제에 어디까지 개입해야 하는가? 

공은 인사청문회로 넘어갔다. 박 후보자가 창조과학 논란에 대해 “개인의 종교적 신념일 뿐 학문이나 공적 활동과 무관하다”라고 선을 긋는다면 별다른 논란이 일지 않을 것이라고 청와대는 기대한다. 유사역사학 논란이 일었던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 창조과학 논란에 휘말렸던 유영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후보자 등이 이런 ‘엎드리기 전략’으로 청문회를 통과한 선례가 있다. 하지만 독실한 종교인으로 알려진 박 후보자가 청문회 과정에서 청와대의 기대와 달리 창조과학적 신념을 강하게 표할 가능성도 남아 있다. 이 경우 한국 사회는, 지금껏 한 번도 제대로 부딪혀보지 않았던 질문을 만나게 될지 모른다.

전체선택후 복사하여 주세요.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