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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겁고 까칠한 여성 예능이 나타났다

2017년 09월 08일(금) 제520호
김선영 (대중문화 평론가) webmast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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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방송가에서 ‘여성 예능’이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바디 액츄얼리> <뜨거운 사이다>는 억압당했던 여성의 경험을 적극적으로 드러내면서 추의 방향을 돌리려 한다.

ⓒ<바디 액츄얼리> 온스타일 갈무리
‘여성 건강 리얼리티 쇼’를 표방하는 예능 프로그램 <바디 액츄얼리>는 여성의 몸을 둘러싼 터부에 의문을 제기한다.

“당연한 걸 당당하게!” 온스타일의 새 예능 프로그램 <바디 액츄얼리>가 내건 슬로건이다. ‘여성 건강 리얼리티 쇼’를 표방하는 이 방송은 여성의 몸을 둘러싼 터부에 의문을 제기하며 이야기를 출발한다. 가령 남성 생식기를 가리키는 말은 친근한 단어만도 여럿인데 여성 생식기를 가리키는 말은 왜 거의 없는가, 생리혈이 묻은 옷을 보면 어째서 걱정보다 수치심이 먼저 드는가와 같은 질문들이 시작부터 쏟아진다. 그렇게 여성의 몸에 관한 자연스러운 발언을 “침묵과 수치심 속에” 가두며 드러내지 못하도록 만든 현실을 향한 문제의식이 반영되어 있다. 그리하여 ‘그날’ ‘그곳’ 등으로 우회 표현되던 여성의 신체 관련 금기 단어들을 방송에서 여성들이 직접 생리, 질 등으로 당당하게 호명하는 것부터가 터부를 깨는 쾌감을 전해준다.

이 슬로건은 최근 방송가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여성 예능’의 새로운 경향을 요약하는 말로도 손색이 없다. 새 여성 예능들은 기울어진 젠더 지형 안에서 지워지거나 억압당했던 여성의 경험을 적극적으로 드러냄으로써 추의 방향을 돌리려 한다. 선두 주자로 나선 프로그램은 EBS의 젠더 토크쇼 <까칠남녀>다. 방송은 데이트 폭력, 몰카 등과 같은 여성혐오 범죄에서 남성 역차별 문제까지 다양한 젠더 이슈를 다룬다. 패널 성비가 동수로 맞춰지고 공평한 발언 기회를 부여받은 것만으로도 여성들의 목소리가 활보할 공간은 상당히 넓어진다. 예컨대 자위를 소재로 한 ‘나 혼자 한다’ 편에서, 금기나 마찬가지였던 여성 자위 이야기는 “여성과 남성에게 대칭적이지 않은 성도덕”의 문제를 드러내고 여성 경험에 대한 인식을 확대하는 효과로 이어졌다.

온스타일의 또 다른 신규 예능 프로그램 <뜨거운 사이다>도 새 경향을 이끌고 있다. 정치·사회·문화 분야의 이슈들을 여성의 시선으로 분석하면서 그동안 패션·뷰티·스타일 등으로 제한되어왔던 여성 서사를 확장시킨 토크쇼다. 특히 방송인·배우· 언론인·경영인·변호사 등 다양한 분야에 종사하는 출연진의 풍부한 이야기를 통해 여성 예능이 도달할 수 있는 가장 폭넓은 지평으로 나아간다는 점에서 인상적이다. 이는 여성 예능 실종 현상을 분석하는 첫 회에서부터 잘 드러난다. 예능 남초화 현상이 심화되던 시기, JTBC <썰전>이나 <아는 형님> 같은 프로그램에서도 같은 주제를 다룬 바 있지만 여성 예능인의 고충에 초점이 맞춰진 것과 달리, <뜨거운 사이다>의 분석은 다각도로 이뤄진다. 남성 중심 예능의 여성 출연자로서 대상화된 경험부터 남성 예능인들의 네트워크, 제작진의 성비 불균형, 해외 선진국 방송법 사례 등 다층적 분석이 돋보인다.

ⓒ<까칠남녀> EBS 갈무리
ⓒ<뜨거운 사이다> 온스타일 갈무리
다양한 젠더 이슈를 다루는 EBS <까칠남녀>(위)와 남성 예능인의 네트워크, 제작진 성비 불균형 등 다층적 분석을 보여주는 온스타일 <뜨거운 사이다>(아래).

최근 여성 예능의 경향은 분명 2015년 ‘나는 페미니스트입니다’ 해시태그 운동에서 시작된 온라인 중심의 새로운 페미니즘 운동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이 운동은 주로 미디어의 여성혐오에 대한 비판 운동으로 이어졌고, 사회 전반의 여성혐오 반대 운동으로 확대되었다. 특히 이 단계에서 단순히 예능 남초화를 경계하기 위한 여성 예능의 필요성을 넘어 진지하게 여성의 목소리를 대변해줄 여성주의 예능에 대한 요구가 커졌다. 올해 등장한 세 여성 예능은 이에 대한 응답과도 같다. 실제로 <까칠남녀>와 <뜨거운 사이다>의 PD는 모두 쇼 론칭 계기로 강남역 살인 사건을 언급하고 있다.


여성 중심 예능의 전통적 계보 되살려

더 중요한 것은 이 여성 예능들이 한동안 명맥이 끊겼던 여성 중심 예능의 전통적 계보를 되살린다는 점이다. 1990년대 정치사회적 민주화의 한 축을 이룬 여성주의 문화는 방송에도 영향을 미치며 진취적 여성상을 내세운 전문직 드라마의 유행과 SBS <이승연의 세이세이세이> <김혜수의 플러스 유>처럼 여성 MC가 이끌어가는 토크쇼의 등장을 이끌었다. 2000년대 들어서는 자기계발 서사와 결합하고 여성들의 적극적인 자기표현이 돋보이는 예능들이 쏟아져 나왔다. EBS는 페미니즘을 전면에 내세운 <삼색토크 여자>를 선보였고, KBS는 최초의 여성 집단 버라이어티 <여걸 파이브>를 방영했다. MBC 에브리원 <무한걸스>는 예능인·배우·가수 등 다양한 분야 여성들의 수평적 연대가 중심이었고, 이 연대의 테마는 SBS <골드미스가 간다>, KBS <청춘불패> 등 여성 집단예능으로 계속해서 이어진다.

하지만 다양한 주제로 분화하던 여성 예능은 2010년대 이후 성장이 멈췄다. 다매체 시대의 도래와 함께 더욱 치열해진 시청률 경쟁으로 한층 독하거나 날것의 예능들이 주류가 되면서 거기에 더 적합하다고 여겨지는 남성들의 예능 독식 현상이 심화되었기 때문이다. SBS <정글의 법칙>, MBC <진짜 사나이>로 대표되는 생고생 예능과 MBC <아빠 어디 가>의 사생활 관찰 예능이 인기를 끌면서 유사 포맷 프로그램들이 줄줄이 이어졌다. 남성들은 전문 예능인뿐 아니라 가수·배우·운동선수·만화가까지 예능에 동원되는 사례가 늘었다. 설 자리가 축소된 여성 예능인은 종합편성채널로 이동하거나 남성 예능의 홍일점으로 생존을 모색했고, 여성 예능은 남성 예능의 ‘스핀오프’ 버전으로 겨우 명맥을 유지했다.

2015년 이후 새로운 페미니즘 운동과 함께 예능계의 남성 독점 현상 비판과 여성 예능 필요성에 대한 공론화가 이뤄지고, KBS <언니들의 슬램덩크>와 <하숙집 딸들>, MBC 에브리원 <비디오 스타> 등이 등장했다. 올해 등장한 새로운 여성 예능은 여기서 더 나아간다. 여성 출연자 비중만 높인 것이 아니라 성차별적 현실에 적극 도전한다는 점에서 페미니즘 문화 급부상 시절의 여성 예능 정신을 잇고 있다. <까칠남녀>는 <삼색토크 여자>를 참고했음을 공공연히 밝히고 있고, 온스타일의 두 예능 역시 개국 시절의 여성 중심 시선을 회복하겠다고 선언한 프로그램이다. 계보는 선배들이 고민하고 성장하던 길 위에서 후배들이 그 질문을 더 발전시켜나갈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남성 예능이 특유의 인맥을 통해 아무 단절 없이 계보를 이어갈 때, 오랜 단절을 극복해야 하는 여성 예능 계보 잇기는 그 난이도만큼 더 과대평가받아도 좋을 것이다. 여성 시청자들은 그 수직적 연대에 동참할 준비가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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