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9월9일, 미국 HBO에서 제작한 드라마 〈밴드 오브 브라더스〉의 첫 에피소드인 ‘커래히(Currahee)’가 방영되었을 때 사람들이 가장 먼저 열광한 부분은 전쟁 묘사였다. 고전 전쟁 영화들처럼 항공 전투 장면을 자료 화면으로 채우지 않았다. 그렇다고 비현실적으로 재현하지도 않았다. 소품은 철저한 고증을 거쳤고, 전투 중 떨어진 박격포에 사지가 날아가는 상황을 ‘리얼하게’ 재현했다. 〈밴드 오브 브라더스〉는 ‘이게 진짜 전쟁이다’라는 평가와 찬사를 받았다.

드라마가 방영되면서 사람들이 강한 인상을 받은 부분은 실감나게 그려진 전쟁의 실상이 아니었다. 전장 속에서 동료를 믿고 의지하는 제101사단 506연대 2대대인 이지(Easy) 중대원들의 모습이었다. 전쟁에 참전한 이 젊은이들은 처음에는 서로를 잘 알지 못했다. 미국 전역에서 나라를 위해 모인 이들은 각자 다른 사연을 가지고 참전했다. 각기 처한 상황도 모두 달랐다. 그들 중에는 하버드 대학생도 있었고, 고향에 약혼자를 두고 온 이도 있었으며, 아버지 대신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가장도 있었다.

ⓒ이우일 그림

자기가 속한 곳에서 여생을 살았다면 평생 만나지 않았을 중대원들이 생사를 함께 넘나들며 동료를 알게 되고 우정을 쌓는다. 이 모습은 시청자들에게 재미를 주기도 했지만, 시청자들에게 드라마 안에서 같이 웃고 함께 슬퍼하는 동료가 된 듯한 경험을 하게 해주었다. 제목부터가 ‘전우(band of brothers)’임을 생각하면 일면 당연해 보인다. 

〈밴드 오브 브라더스〉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독특한 공통점이 있다. 드라마가 종영된 뒤에도 이들은 드라마 속에 나왔던 이야기들 가운데 잘못 묘사된 부분이 실제로 어떠했는지 사실 관계를 바로잡았다. 드라마가 창작한 일화를 두고 실제 전후 사정에 대해 꾸준히 연구하고 설명했다. 〈밴드 오브 브라더스〉가 여전히 방영 중인 것처럼, 이지 중대원들은 현역이고 자신과 동기인 것처럼 함께 호흡했다.

드라마에 출연했던 배우들은 이제 각자의 커리어를 이어나가고 있다. 주연배우 위치에 올라선 이도 있고, 제작진의 페르소나가 되어 계속 작업을 같이하는 이도 있으며, 본진이었던 연극 무대로 돌아간 이도 있다. 하지만 팬들은 시간이 흐르고 배우의 대표작이 바뀌어도 〈밴드 오브 브라더스〉에 나왔고 이지 중대원이었던 사실을 잊지 않는다. IMDB(인터넷 영화 데이터 베이스)에서 배우의 필모그래피를 뒤져보고, 생사고락을 같이한 동료가 지금은 어디서 무엇을 하며 살고 있는지 검색해본다.

팬들은 한발 더 나아가 현실 세계에서도 특징을 보이기 시작했다. 초면이거나 잘 모르는 사람이라도 대화를 나누다가 〈밴드 오브 브라더스〉 이야기가 나오면, 반색을 하고 질문했다. “그 드라마를 보셨군요?” 이 질문은 ‘당신도 그 드라마를 좋아하시는군요!’라는 뜻이 아니다. “당신도 그곳에 계셨군요!”라는 의미로 통했다. 사람들은 ‘나와 같은 경험을 했군요’라며 옛 동료를 만난 것처럼 반가워하곤 했다.

“당신도 그곳에 계셨군요!”

드라마 속 등장인물에게 실제 지인처럼 친밀감을 느끼는 경우는 다른 드라마 팬덤에도 있다. 하지만 같은 드라마를 봤다는 이유로 현실에서 만난 사람과 동료가 된 듯한 공감대를 이룬 것은 매우 드물다. 이런 현상을 뭐라고 해야 할지 한마디로 설명하기는 힘들다. 아니, 사실은 무엇 때문에 생기는 건지 얼추 알 것 같지만 객관적으로 분석해서 정의 내리고 싶지는 않다. 나도 마찬가지로 이지 중대원들과 함께 그곳에 있었으니까.

〈밴드 오브 브라더스〉 방영이 끝난 후 한정판으로 나왔던 DVD를 구하려 중고 거래를 한 적이 있었다. 직거래 장소에서 만난 판매자들은 신기하게도 모두 반가운 친구를 만난 듯한 표정이었다. 그중 한 명은 ‘제대한 후에도 종종 직장에서 점심으로 먹는다’라고 쓴 편지와 함께 군용 즉석 비빔밥을 건넸다. ‘비록 모르는 사람이라 해도 우리는 같은 드라마를 겪었다’라는 동질감의 표현이었다. 한 번도 만난 적 없고, 이름 석 자 알 수 없는 사람이라도 〈밴드 오브 브라더스〉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우리는 모두 형제다”.

기자명 중림로 새우젓 (팀명)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