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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의 민낯을 기록한 일본인 작가 고이 잠들다

2017년 09월 13일(수) 제522호
도쿄·이령경 편집위원 webmast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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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월1일 기록작가 하야시 에이다이 씨가 타계했다. 그는 평생에 걸쳐 조선인 강제연행 등 일본이 드러내기 꺼려하는 기록물을 남겼다. 이령경 편집위원이 그에게 쓴 편지를 보내왔다.

9월1일 하야시 에이다이 씨가 돌아가셨습니다. 지난 3월 <시사IN>을 통해 하야시 에이다이 씨의 삶과 영화 <기록작가 하야시 에이다이의 저항>이 소개되면서 많은 분들이 감사와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주셨습니다(<시사IN> 제493호 ‘하야시 에이다이가 일본인에게 묻다’ 기사 참조). 이 지면을 빌려 마지막으로 <시사IN> 독자들과 하야시 에이다이 씨 사이에 메신저 구실을 하겠습니다.

ⓒRKB 매일방송 제공
기록작가 하야시 에이다이 씨의 생전 모습.

하야시 에이다이 선생님께

8월10일 병실로 찾아뵈었을 때 선생님이 절필을 언급했습니다. 이제 선생님을 잃겠구나 싶어 안타까웠는데 막상 그 일을 겪으려니 난데없이 열이 나고 오한에 떨고만 있습니다. 저는 기록작가인 선생님의 이야기를 더 듣고 싶었습니다.

선생님은 그저 호기심이 많고 운이 좋았을 뿐이라고 하셨지요. 아닙니다. 일주일 내내 걸어 다니며 사쿠라탄기가 추락했다는 마을의 400가구를 탐문하는 선생님의 근성, 탄광회사의 거짓말을 뒤집기 위해 탄광에 들어가 1년 동안 살면서 자료를 찾아낸 선생님의 집념, 인터뷰를 거절하는 사람을 설득해 그 집에서 일주일 동안 먹고 자면서 인터뷰한 뒤 6개월에 걸쳐 녹음을 풀고 듣고, 다시 묻기 위해 방문하는 선생님의 성실함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테이프가 비싸 녹취가 끝나면 재활용하셨다고요. 그 많은 녹음테이프라도 남아 있다면 선생님이 어떻게 취재를 했는지 되짚어볼 수 있을 텐데 아쉽습니다.

민족을 배반했다는 죄책감에 괴로워하던 조선인 특공대의 기록은 책으로 엮지 않다가 자신의 마지막을 앞두고 집필을 시작한 선생님께 인간에 대한 배려를 배웁니다.

8월28일 서울에서 열린 EBS 국제다큐멘터리 영화제(EIDF)를 마치고 바로 병원으로 찾아간 이들로부터 관객 반응을 전해 듣고 스케치 사진을 보며 기뻐하셨습니다. 영화제가 무사히 끝나는 것을 지켜봐주셔서 고맙습니다. 지난 7월 제 손을 꼭 잡고 “잊지 않겠다. 고맙다”라고 말씀하신 것은 선생님이 한국 관객들에게 보낸 진심이었습니다.

지난 3월 <시사IN>의 기사를 보고 편지와 선물을 보낸 독자들이 영화관을 찾았고, EBS의 <지식채널e>와 영화를 본 이들이 당신께 감사하며 건강하시라는 소망을 댓글로 남겼습니다. 산책하다 우연히 들어와 영화를 봤다는 한 관객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며 한국의 관련 시민단체를 알려달라고 했습니다. 여기에 여러 사람이 당신께 드리는 인사를 전합니다.

“선생님의 카메라, 펜과 종이, 스카치테이프를 잊지 않겠습니다. 그 사소한 물품들에 깃든 고귀한 의지까지도(이종기).”

“전 생애, 기나긴 저항을 멈추지 않으셨던 하야시 에이다이 씨의 마지막을 함께하시는 많은 분들, 주변에 많이 알리고 얘기 나누겠습니다(황성원).”

“지식채널 만드는 동안 (그런 생각을 하면 안 되지만) 시간이 많지 않겠다는 생각이 자꾸 들어서 잘 만들어야 된다고 다짐했습니다. 왜 좀 더 일찍 이런 이야기를 전하지 못했을까 안타까운 마음도 컸고. 토크 콘서트 때 관객들과 패널 분들 이야기를 들으면서 EIDF가 끝이 아니라 시작인 느낌이 들어 좋았습니다(김연실).”

두 손 모아 빕니다. 편히 잠드소서. 선생님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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