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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전 광고로 본 중산층 가족의 하루

2017년 09월 22일(금) 제522호
고영 (음식문헌 연구자) webmast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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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전 현대 신사의 하루가 이랬다. 1922년 5월 어느 날 정릉물산(井菱物産)에서 일하는 선임 사원 운야호삼(運野好三)은 전날 벌어진 회식 탓에 늦잠을 잤다. 일어나 세수하러 달려간 운야는 양치질부터 시작한다. 급한 중에도 치약은 외제 치약 콜게이트(Colgate)가 아니라 국산 라이온이다. 오해 말자. 1922년이면 아직 제국 시대 아닌가. 여기서 국산은 일본제다.

출근길의 애프터셰이브는 1914년 발매된 일본 화장품 레이트푸드 (Laitfood·レートフード)다. 면도만으로 신사의 체면이 서겠는가. 아내 애자(愛子)는 오리지널 향수로 출근하는 남편의 머리 다듬기를 마무리한다. 이제 본격 출근이다. 운야는 동경와사(도쿄가스)전기주식회사의 특제 승용차를 타고 사무실에 도착한다. 업무상 만남은 간장약 헬프(Help)와 구강 청결제 카올(Kaol)을 손님과 나누는 가운데 이루어지고, 책상에서는 스완(Swan) 만년필을 벗 삼아 일한다. 이 만년필 덕분에 번잡한 사무는 ‘원활, 신속, 유쾌’하게 이루어진다.

조선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 1922년 5월22일자 4면에 실린 전면 광고.
신사는 곧 한 집안의 가장이기도 하다. 퇴근한 운야가 가정으로 돌아오자 부인은 1920년 요코하마에 양조장을 두고 발매된 고급 맥주 캐스케이드(Cascade)를 가장에게 따라주고 손수 저녁 요리를 시작한다. 당연히 아지노모토를 써야 한다. 남편과 아내 사이에 이런 대화가 흐른다. “아지노모토를 곁에 놓고 남편 옆에서 열심히….” “이것이 참말 다정한 살림인걸.” “참말 그래요.”

저녁을 먹고 온 가족이 한곳에 모여 쉰다. 이 집에는 ‘오락실’이라는 공간이 따로 있다. 부부는 오락실에서 여성지 <부인구락부>를 나누어 읽는다. 부인은 남편에게 웃음을 섞어 주문한다. “이 <부인구락부>를 읽으시고 여자란 것을 잘 이해해주면 좋겠는걸요. 아핫.” 이 사이에 하녀는 부인에게 부인약, 오늘날로 치면 건강기능식품인 중장액을 올린다. 남편이 보기에 아내는 중장액 덕분에 혼인 당시보다 건강해졌다. 하루의 마무리에는 아이가 있다. 아이는 어디서 얻은 판촉물인지 ‘모리나가 밀크 캐러멜(森永 ミルクキャラメル)’이라는 글자가 쓰인 깃발을 흔들며 외친다. “캐러멜 주세요, 이 깃발에 쓴 모리나가 밀크 캐러멜을…. 네, 어머님!”

단편 만화가 아니다. 조선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 1922년 5월22일자 4면을 온통 차지한 전면 광고다. 치약, 애프터셰이브, 향수, 승용차, 간장약, 구강청결제, 만년필, 맥주, 양산 조미료, 대중 잡지, 건강기능식품, 캐러멜을 한창 판매 중인 회사들이 연합해서 광고를 실었다.

‘홈, 스위트 홈’에 사는 중산층 부부와 자녀

남편은 자기 사무 공간을 따로 쓰는 선임 직원이자 당당한 가장이다. 아내는 출근길 조발 마무리를 빠뜨리지 않는 미모의 여성이다. 이들 사이에 아이가 한껏 웃으며 과자를 달라고 어머니를 조른다. 중산층 부부와 자녀로 이루어진 ‘홈, 스위트 홈’. 부르주아 문화가 퍼뜨린 정상 가족의 전형이다.

완벽한 하루의 마무리는 음식이다. 맥주와 양산 조미료가 가장을 기다리고, 부인약이 주부의 노고를 위로하는 가운데 아이가 먹을 캐러멜이 마침표를 찍는다. 서민 대중이 선망하는 저녁과 밤이다. 20세기 이전 음식 문화사란 인류가 살아남자고 발버둥친 기술의 역사, 제왕과 귀족만 누린 사치의 역사, 서민대중의 가난을 증명한 역사였다. 없이 사는 가운데 자원을 선용하기 위해 무진 애를 쓴 역사였다. 그러다 최근 100년 음식 문화사가 새로이 태어났다. 음식이 대중매체, 광고, 만화, 중산층 가정의 형상과 손잡고 대중을 유혹하는 데 이르렀다. 오늘날 우리네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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